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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프대선] 장애인들이 투표일에 겪는 어려움은 사실 이들이 평생 동안 매일 겪는 어려움이다(영상)

  • 박수진
  • 입력 2017.05.02 09:51
  • 수정 2017.05.08 05:55

장애인들의 투표 환경은 점점 나아지고 있지만, 선거 때마다 장애인의 투표 접근권 문제가 반복해 제기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장애인유권자들은 이 모든 불편은 궁극적으로 '사회 전체가 장애인을 고려하지 않고 설계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래 4명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질문 1. 선거일에 겪는 가장 큰 어려움

"투표소가 매번 같은 장소가 아니라 선거 때마다 새로 알아봐야 하는데, 정보를 담은 웹사이트의 접근성이 보장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혼자 투표소를 찾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던 적이 많아요.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다가 링크를 열었는데 약도를 그림 파일로 넣어놓은 거예요. 그러면 제가 (스크린 리더기를 이용해서) 읽을 수가 없으니까 아무 쓸모 없는 정보가 되는 거예요."

"선거 공보물이 오긴 하는데 점자 오타가 난 경우도 있고요. 무엇보다 공보물을 점자로 하면 양이 늘어나니까, 그러면 원래 내용을 요약해서 줘야 하는데 1페이지만 쭉 써서 보내주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런 게 반복되다보니 점자 공보물에 대한 신뢰가 많이 떨어졌죠. 후보의 어린 시절을 읽고 있는데 내용이 뚝 끊기면 이게 뭔가 싶고요. 공약도 정치, 경제, 사회, 이렇게 쭉 있어야 하는데 서론만 나오고 잘린 경우도 있고."

"투표 보조용구가 질적으로 좋아진 건 사실인데, 그래도 투표소에서 겪는 어려움의 종류는 같아요. 안내하는 분들이 시각장애 보조용구에 대해 한번에 알아듣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보조용구를 요청하면 '그냥 도와줄테니까 몇번 찍을지 말해라' 이렇게 저의 직접투표권을 침해하는 제안을 하시는 분도 있었어요. 거절하면 제가 '유난스러운 사람' 되고요. 물론 실제로 도와주겠다는 마음으로 하는 말이지만 선거관리원에 대한 체계적 교육이 없구나, 그런 생각이 들죠."

"(점자가 있는) 보조용구를 쓴다고 해도 혹시 안내원이 미숙해서 설치를 잘못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늘 있죠. 제가 맞는 칸에 인주를 찍었는지 확인할 수 없으니까 내가 행사한 표가 정말 행사된 건가 하는 의문." (*위 사진)

"사실 선거 관리하는 분들이 제게 용구 제공하고, 사용법 알려주고, 조립해주고, 제가 나올 때까지 안내해주는 게 당연한 건데 그 과정이 편했던 경험이 적다보니까 그렇게 해주신 분들을 만나서 감동 받은 아이러니한 상황이 몇번 있었죠. 관리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경험이 달라져서 다들 의견이 다른 것 같은데, 제가 페이스북에 불편했다는 글을 올렸더니 동의하는 시각장애인들이 많았던 거 보면 아직은 원활하기보다 불편한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아요."

- 안승준, 전맹 시각장애, 수학교사 37세

[안승준]

"일단 투표소 찾는 게 어려워요. 투표소에 도착해서 화살표가 잘 안 보이기도 하고, '제0투표소'라고 쓴 안내문에서 손으로 얇게 쓴 글씨는 안 보이기도 하고요."

"보조용구 달라면 주시는데 탁상용 확대 독서기가 배치가 안돼있거나 배율이 충분하지 않을 때가 있어서 전 투표 때마다 확대경을 준비해서 가요. 현장 상황을 미리 알 수가 없으니까요. 투표소에 따라서 저희한테는 조명이 너무 어두울 때가 있어요. 어두울 때는 개인 휴대폰 플래시 이용하는데, 그것도 준비되면 좋을 것 같아요. 물론 이번 대선 때도 확대경을 챙겨갈 생각이에요."

- 김찬홍, 저시력장애, 컴퓨터 교사 42세

"집 밖으로 나올 때 집 앞 환경이 어떠냐에 따라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기도 하죠. 어떤 장애인들에게는 (높이를 조정한 투표소도) 굉장히 높아서 도움 받아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어떤 경우든 본인이 직접 기표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있어야죠."

"(현장에서 계단이 많다는 불편한 점을 말해도) 자기 소관이 아닌 경우가 많으니까 답을 듣기가 어려워요. 사실 거기 있는 사람들 중에 장애인 안내가 자기 소관 아닌 사람이 많죠. 개표하러 왔지 안내하러 온 건 아니라면서 저기 물어보세요, 저기 물어보세요, 그런 식으로도 여러번 돌리는데 지나가는 사람들 붙잡고 이렇게 한다는 게 굉장히 불편하죠."

- 박경석, 하반신 장애, 57세, 장애인 인권 운동가

"거동 불편한 사람 많은 시설에 투표소를 설치해서 거기서 했고요, 그게 안될 때는 (선관위에서) 차를 보내줘서 시설에서 다같이 투표하러 갔어요. 투표장에 갈 때마다 계단이 많은 게 불편했어요."

"9년 전에 시설 안에서 투표할 때 내 마음대로 못 찍게 한 적 있어요. 난 이 사람을 찍고 싶은데, 시설장이 저 사람을 찍으라고. 투표함이 시설로 오는데 다 보이는 데서 투표해야 할 때도 있어요. 감독하는 사람이 자리를 비울 때가 있어서. (시설장이 누구 찍으라고 시키면) 다들 불만 있죠. 나도 주관이 있는데, 그런데 뭐 저녁밥 없다, 밥 없다고 하니까. (어떤 시설장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굉장히 달라져요."

- 장애경, 뇌병변, 49세, 야학 학생

질문 2. 직접 만들고 싶은 법과 정책

[장애경]

"국회의원이 된다면, 나같은 사람이 편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들고 싶어요. 어디 갈 때마다 불편해요. 내가 어딘가에 몇시까지 가야하는데 (콜택시나 저상버스 상황에 따라서) 어쩔 수 없이 늦을 때가 있고, 빨리 올 때가 있고."

- 장애경

"저시력자들이 좀더 선거 공보물이나 공공 소식지를 편하게 볼 수 있도록 시각장애인들의 미디어 접근에 관한 법을 만들고 싶어요. 선거 공보물이 점자로 제작되는데, 시각장애인 중에 점자를 읽을 줄 아는 사람보다 못 읽는 사람이 훨씬 많거든요. 저시력자들은 글자를 확대하는 보조용구를 많이 사용하니까.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많이 보고, 저같은 저시력자들은 태블릿PC를 많이 보는데 앱이나 온라인으로 공공 정보를 보여주는 걸 강화하는 법을 만들고 싶어요."

- 김찬홍

[김찬홍]

"시각장애인들이 겪는 어려움은 단순한 거 같아요. 정보접근에 대한 어려움. 점자 같은 매체로 한번 더 가공하거나, 음성 리더기를 준비하는 절차를 본인이 복지관 같은 곳을 통해서 하지 않으면,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양은 다른 사람들에 비교할 수 없을만큼 턱없이 적죠. 또 낯선 곳으로 이동할 때 거리가 설계된 게, 시각장애인들에게 복잡하고 일반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위험한 경우가 많아요."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법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는데요. 저는 모든 생산품에 장애를 고려한 장치를 의무화하라는 법을 만들고 싶어요. 우리가 왼손잡이용 기타를 만드는 건, 만드는 사람 머리에 왼손 쓰는 사람은 불편하겠다는 생각이 있어서예요. 알약에 여러가지 색을 넣는 것도 나이 드신 분들이 좀더 잘 볼 수 있게 하는 거예요. 비슷한 건데, 장애에 대한 고려를 하는 부분은 아직 너무도 부족한 거 같아요."

"사이트를 만들 때도 도시를 건축할 때도 과자를 만들 때조차도 시각장애인들이 어떻게 구별할까, 어떻게 찾아올까,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고 만드는 제품은 아주 극소수에 불과하거든요. 그러니까 그것들만 모든 제품, 모든 디자인에 의무화된다면 시각장애인에게 덕지덕지 붙은 누더기 같은 복지는 많이 사라져도 돼요. 스스로 할 수 있는 부분들을 의무로 만들어준다면 그 다음에는 시각장애인들에게 여타의 복지가 필요 없을 수 있거든요. 예를 들면 대학 특례입학제도 같은 것이요. 교육 현장에서 시각장애 없는 학생들과 같은 교육 받을 수 있게 만든다면 특례입학은 필요 없는 거죠. 장애인들 핸드폰 요금 깎아주는데 모든 통신사 서비스에 대해 시각장애인도 동등하게 쓸 수 있게 만들면 할인 필요 없고, 기차나 버스, 전기요금, 가스요금 할인도 다 마찬가지죠."

"제가 대학교 다닐 때 장애인 장학금이라고 100만원씩 받았는데요. 어떻게 보면 '복지 대단하네' 할 수도 있지만, 저는 학교 시설 중에 반도 사용 못했거든요. 장학금으로 보상받는 대신 도서관이나 여태 부대시설에 대한 사용권이 저한테 똑같이 주어져서, 똑같은 등록금 내고 똑같은 권리 누리면서 다니는 게 사실은 가장 이상적이죠."

- 안승준

"장애인들의 이동 경로를 미리 예측을 해서 접근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게 가장 최선이죠. 그런데 선관위는 수백 수천 투표소를 장애인들이 물리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들기가 원천적으로 힘들다, 학교를 몇 년에 한번 있는 투표를 위해서 뜯어고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 않느냐고 말하죠."

"그런데 기본적으로 투표소는 다 공공장소잖습니까? 가정집에 하진 않잖아요. 그래서 원천적으로 생각하면 공공의 모든 장소는 애초부터 접근이 가능하도록 해야하는 원리가 있는 거잖습니까. 그런데 그런 것들 다 무시하고 있다가 투표 때 그런 얘기하고, 반복되고. 개선하겠다고 하지만 결국 돈이 들어가는 문제에서는 회피하고 있죠."

- 박경석

[박경석]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지난 총선에 이어 이번 대선에서도 '이동에 불편을 겪는 장애인들을 위해 1층에도 투표소와 임시경사로가 설치되고, 우편으로 할 수 있는 거소투표와 장애인 콜택시가 운영되며, 시각장애인을 위해서는 점자형 투표 안내문이 발송된다'는 등의 투표편의 제도를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제도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아직 부족하다는 것이 장애인유권자들의 말이다. 편의제도가 필요한 당사자들에게 충분히 홍보가 되지 않거나, 현장에서 안내가 제대로 되지 않는 일이 너무나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선관위에서는 마찬가지로 지난 총선에 이어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선거 안내 영상도 제작했다.(사전투표 안내 영상을 보려면 클릭, 선거일투표 안내 영상을 보려면 클릭)

그러나 박경석 장애인 인권 운동가는 발달장애인들의 투표 접근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투표용지에 정당 로고와 후보자의 사진 등 이미지 기호를 삽입하는 한편, 각 당들의 참여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투표 방법만 알면 뭐합니까, 그 사람이 누군지 알아야죠. 대선 후보들이 '나'를 위해 어떤 약속을 하는지 알아야 할 거 아닙니까. 각 당은 발달장애인들도 유권자라고 생각하고 내 후보를 어떻게 알려서 지지를 받을 건가에 대한 고민을 해야죠."

오는 9일 치러질 19대 대선에 출마한 후보자들은 발달장애인을 위한 별도의 인쇄 공보물을 제작하지 않았다. 발달장애 2급 장애인을 감수위원으로 두고 제작된 '발달장애인을 위한 쉬운 공약집'은 민간단체 피치마켓에서 제작해 선거일을 일주일 앞둔 2일 현재 법리 검토를 기다리고 있다.

관련 기사: 장애인들의 선거권 문제를 우리가 몰랐던 이유

사진, 영상/ 이윤섭 비디오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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