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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위험한 도박

트럼프가 선거 때 공언했던 대로 법인세율을 대폭 인하하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현행 35%의 법인세율을 그 절반도 안 되는 15%로 낮추겠다니 어안이 벙벙할 따름입니다. 하여튼 트럼프의 도박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자못 흥미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경제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제일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은 실험이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더군다나 이번 경우처럼 법인세율을 그 정도로 대폭 인하한 사례가 없기 때문에 과연 투자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아무도 자신 있게 예측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가 미국 국민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겠다고 나선 형국입니다. 경제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트럼프가 고맙기 짝이 없는 일이지요.

ⓒCarlos Barria / Reuters

트럼프가 선거 때 공언했던 대로 법인세율을 대폭 인하하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현행 35%의 법인세율을 그 절반도 안 되는 15%로 낮추겠다니 어안이 벙벙할 따름입니다.

법인세율뿐 아니라 소득세율도 대폭 낮출 조짐을 보이고 있어 미국 역사상 최대의 감세 퍼레이드가 펼쳐질 모양입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감세정책으로 인해 투자와 일자리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조세수입이 오히려 늘어날 것이라는 믿기 어려운 말까지 하고 있습니다.

레이거노믹스의 실험 결과, 세율을 내리면 조세수입이 늘어난다는 래퍼곡선(Laffer curve)은 한낱 허구에 지나지 않음이 명백히 드러난 바 있습니다.

그런데도 트럼프 행정부는 이 래퍼곡선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레이건 행정부와 부시 행정부의 감세정책은 투자의 획기적 증가를 가져오는 데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의 감세정책은 차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감세폭이 워낙 크기 때문에 기업들이 종전과는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법인세율을 내려 주어 투자를 촉진시킬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이 정도로 과격한 세율 인하라면 게임의 양상이 달라질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설사 트럼프의 도박이 투자와 일자리의 증가를 가져오는 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공짜로 이루어지는 성과가 아닙니다.

이를 위해 미국 국민이 치러야 할 대가는 실로 엄청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우선 지적할 수 있는 문제점은 감세정책이 엄청난 크기의 재정적자를 초래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전문가들은 이 감세정책으로 인해 앞으로 10년 동안의 기간에 걸쳐 1조 달러 이상의 세수 결손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미국의 국가부채 규모는 지금도 GDP의 100%를 넘어 상당히 높은 수준에 있습니다.

그와 같은 누적적자로 인해 국가부채의 규모가 감당하지 못할 수준으로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레이건 행정부, 부시 행정부도 그랬지만, 트럼프 행정부도 정부지출을 줄여 조세수입 감소에 대응하면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입만 열면 '작은 정부'를 부르짖는 공화당 행정부가 정말로 정부지출을 줄인 건 결코 아닙니다.

레이건 행정부의 스타워즈, 부시 행정부의 중동전쟁은 엄청난 규모의 지출 증가를 가져왔고, 그 결과 미국정부의 재정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도 조세수입 감소에 대응하는 정부지출 감축을 실행에 옮길 가능성은 매우 작아 보입니다.

벌써부터 국방비의 대폭 증가를 공언하고 있는 것을 보면 커다란 규모의 재정적자 발생은 거의 필연적인 사실일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의 행적을 보면 공화당 행정부는 교육이나 환경, 사회복지 등의 지출만 줄였을 뿐, 정부지출을 실제로 줄인 건 아니었습니다.

그 결과 공화당 행정부의 감세정책은 번번이 엄청난 규모의 재정적자를 가져왔습니다.

미국의 높은 국가채무 비율은 주로 레이건 행정부와 부시 행정부의 작품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공화당 행정부 시절의 국가채무 증가속도가 트럼프 행정부하에서 또다시 반복된다면 얼마 가지 않아 미국 정부의 신용도는 일본 정부 못지않은 수준으로 추락할지 모릅니다.

감세정책의 또다른 불행한 귀결은 양극화의 심화입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정책에 '부자감세' 혹은 '셀프감세'라는 별명이 붙었듯, 이 감세정책이 부유층에게 직접적이고 압도적인 혜택을 가져오리라는 것을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신자유주의자들이 즐겨 부르짖는 '낙수효과'(trickle-down)가 양극화 현상을 어느 정도 완화시켜줄지 모르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낙수효과에 그리 큰 기대를 걸 수 없습니다.

지금 미국 사회는 거의 중남미의 불공평한 사회에 버금갈 정도로 소득의 편중현상이 심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중산층은 몰락하고 빈곤층이 눈더미처럼 불어나는 와중에 성장의 과실은 거의 모두 최상위 0.1% 혹은 1%의 수중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만약 레이건 행정부와 부시 행정부의 감세정책이 성공을 거두었고 낙수효과가 실제로 작용했다면 지금과 같이 불공평한 사회가 되지 않았을 겁니다.

법인세율을 절반도 안 되는 수준으로 낮추려는 트럼프의 도박도 자본가의 배만 불리는 것으로 끝날 가능성이 큽니다.

하여튼 트럼프의 도박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자못 흥미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경제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제일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은 실험이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자연과학에서는 실험이 가능하기 때문에 어떤 가설이 현실과 부합하는지를 바로 검증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나날의 생활을 영위하는 현실의 경제를 실험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기 때문에 경제학의 많은 주장은 검증되지 못한 채 그저 주장으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법인세율을 인하함으로써 투자를 촉진할 수 있다는 주장도 지금까지 충분한 검증이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내가 쓴 논문에서 그 동안의 연구 결과를 종합해 보면 법인세상의 투자촉진책이 투자 증가를 가져왔다는 증거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법인세와 투자가 아무런 관계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결론을 내릴 증거도 없는 상황입니다.

더군다나 이번 경우처럼 법인세율을 그 정도로 대폭 인하한 사례가 없기 때문에 과연 투자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아무도 자신 있게 예측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가 미국 국민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겠다고 나선 형국입니다.

말하자면 미국 국민을 실험쥐(guinea pig)로 삼아 과연 법인세율의 대폭 인하가 투자를 획기적으로 증가시키는지의 여부를 실험해 보겠다는 뜻입니다.

경제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트럼프가 고맙기 짝이 없는 일이지요.

앞으로 이걸 소재로 한 연구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올 겁니다.

그리고 법인세와 투자 사이의 관계가 좀 더 명확해지게 되는 결과가 빚어지리라고 예상합니다.

우리 국민이 아닌 미국 국민을 실험 대상으로 삼은 것도 트럼프에 감사해야 할 일이구요.

트럼프의 감세정책이 발표되자마자 우리의 보수언론은 신이 나서 대서특필하고 있습니다.

이걸 빌미로 평소에 마뜩지 않게 생각해 왔던 대선후보들의 법인세율 인상 공약을 간접적으로 비판하고 있구요.

그러나 보수언론들이 트럼프의 감세정책에 갈채를 보내는 건 시기상조입니다.

앞으로 그 감세정책이 미국의 사회와 경제에 어떤 귀결을 가져오는지 예의 주시한 후에야 그것의 공과를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흥미로운 실험의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그 동안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기업가가 정치지도자로 변신한 경우 성공한 사례가 지극히 드뭅니다.

기업을 경영하는 것과 나라를 경영하는 것은 천양지판으로 차이가 나는 일인데, 그걸 모르고 정치에 뛰어드니 문제가 생기는 거죠.

가까이는 우리나라의 MB가 그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고, 멀리는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Silvio Berlusconi)가 또 다른 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제 트럼프가 또 다른 실험대상으로 도마 위에 올려졌습니다.

트럼프는 과거 부동산왕국을 경영했을 때의 성공에 도취해 있을지 모르지만, 국가를 경영하는 일은 그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낄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하여튼 여러분과 함께 트럼프 감세정책의 성패, 그리고 트럼프 자신의 정치적 성패를 흥미롭게 지켜 보려고 합니다.

* 이 글은 필자의 홈페이지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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