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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쪽지'로 다시 불거진 문재인 북한인권결의안 논란의 핵심은 그게 아니다

  • 김수빈
  • 입력 2017.04.21 14:05
  • 수정 2017.04.21 14:30
송민순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21일 서울 종로구 북한대학원대학교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송민순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21일 서울 종로구 북한대학원대학교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청와대 비서실장이던 2007년, 노무현 정부가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에서 기권할 때 북한의 의견을 물었다는 의혹에 다시 불이 붙었다.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이 당시 작성됐다는 '청와대 메모'를 중앙일보에 공개했기 때문.

문재인 후보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2012년 대선 당시의 NLL 대화록 논란에 빗대면서 "비열하고 새로운 색깔론이자 북풍공작"이라고 송 전 장관의 주장을 비난했으며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고도 덧붙였다.

송 전 장관이 무려 '청와대의 문건'을 공개함으로써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새로 나온 것처럼 여겨질 수 있겠지만 논란의 본질과는 사실 커다란 연관을 갖는다고 보기 어렵다. 문제의 '쪽지'는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쪽지가 진짜라면 이것은 분명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에 대해 북한의 의사를 물어본 것이 사실임을 입증한다.

그러나 이것이 보수 측에서 부단히 제기하고 있는 '노무현 정부의 비서실장 문재인이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에 대해 북한에게 물어보고 나서야 기권했다'는 주장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문 후보의 오늘 해명을 다시 상기해보자:

문 후보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이 문제의 핵심은 송 전 장관이 주장하는 11월 16일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기권이라는 방침이 먼저 결정됐느냐, 아니면 결정되지 않고 북한에 먼저 물어본 후 결정했느냐라는 것"이라며 "분명히 말하는데 16일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기권방침이 결정됐다"고 말했다. (허핑턴포스트 4월 21일)

사실 이 부분은 송민순 전 장관의 회고록을 읽어보아도 알 수 있다. 송 전 장관은 회고록에서 문제의 11월 16일 회의에서 "결론을 낼 수 없었다"고 썼지만 문재인 후보를 비롯하여 이재정 당시 통일부 장관이나 모두 이미 이때 회의에서 '기권' 방침을 결정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송 전 장관의 회고록에서도 다들 '이미 기권'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송 전 장관이 손수 호소문을 써서 보내자 노무현 전 대통령이 11월 18일 다시 회의를 열였을 때의 일이다:

노 대통령은 주무기관인 외교장관이 그토록 찬성하자고 하니 비서실장이 다시 회의를 열어 의논해보라고 지시한 것이다. 저녁 늦게 청와대 서별관에 도착하니 다른 네 사람은 미리 와 있었다. 이구동성으로 왜 이미 결정된 사항을 자꾸 문제 삼느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나는 다시, 인권결의안에도 찬성 못하면서 어떻게 북한 핵과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우리의 방안에 협력해달라고 다른 나라들을 설득할 수 있겠느냐면서, 내가 장관 자리에 있는 한 기권할 수 없다고 했다. (송민순, '빙하는 움직인다')

허핑턴포스트는 회고록 논란이 불거졌을 당시 위 대목을 두고 이렇게 해설한 바 있다:

여기까지 읽으면 사실 송 전 장관과 다른 관계자들의 증언에 큰 차이가 있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각자의 상황에 대한 '인식'에만 차이가 있는 것이다. 유일하게 북한인권결의안에 끝까지 찬성 의견을 보였던 송 전 장관은 계속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키기 위해 '결론이 나지 않았다'고 인식한 반면, 통일부 장관 등을 비롯한 다른 회의 참석자들은 '이미 결론이 났다'고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허핑턴포스트 2016년 10월 18일)

송민순 전 장관이 "전직 고위 공직자가 공무와 관련한 메모와 ‘정부 내부 문서’를 관련 법규에 정해진 절차를 밟지 않고 일방적으로 공개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무릅쓰고 '청와대 쪽지'를 공개한 까닭은 문제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다.

왜냐면 송 전 장관의 문건 공개가 바로 13일과 19일에 있었던 대선 토론회에서의 문재인 후보의 발언에 대한 반응이기 때문이다.

문 후보는 지난 13일 1차 TV 토론에서 '북한에 물어보고 (기권)한 게 사실이냐'는 홍준표 한국당 후보의 질문에 "아니다"고 했다. 문 후보는 2차 TV 토론에서 같은 질문을 받자 "(북한에 물어봤다는 건) 정확한 말이 아니고 국정원 정보망을 통해 북이 어떤 태도를 취할지 반응을 파악해본 거다"라고 했다. 문 후보는 '그럼 누구한테 파악했다는 것이냐'는 유 후보 질문에 "여러 가지 해외 정보망이나 휴민트 정보망, 국정원 정보망 다 있다"고 했다. 정보망을 통해 북측의 태도를 간접 파악한 것이지 북한 당국과 접촉해서 파악한 것은 아니란 취지다. (조선일보 4월 21일)

송 전 장관이 공개한 '청와대 메모'와 그 내용이 온전히 진짜라면 문재인 후보가 토론회에서 '북한에 물어본 게 아니라 북한의 반응을 간접적으로 파악했다'고 한 말은 잘못된 것이다. '직접적'으로 북한의 반응을 파악한 것은 분명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인 '북한에게 물어보기 전부터 이미 노무현 정부에서는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에 대해 기권하기로 정했다'는 것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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