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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쫓겨난 트랜스젠더 이주노동자 '미셸'이 보내온 이야기

  • 박세회
  • 입력 2017.04.19 13:12
  • 수정 2017.04.19 13:16

한국 정부가 이주노조의 위원장이자 트랜스젠더로 동성애자 인권단체에서 활동했던 미셸 카투이라를 필리핀으로 내쫓은 건 우리 사회의 폐쇄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선명한 사건이었다.

아주 쉽게 조금 멀리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한국이 이주 노동자들에게도 노동 삼권이 있다는 걸 인정하기까지는 10년이 걸렸다. 우리나라 법률상 '이주 노동자'의 대부분은 불법체류자다. 그래서 해고를 당해도, 월급을 못 받아도 호소할 곳이 없다. 자르기 쉽고, 싸게 쓸 수 있는 인력이 바로 불법체류자다. 산업재해를 당해도, 차별을 당해도 참아야 한다.

이주 노동자들은 그래서 자신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들만의 노조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들의 권리를 그리 쉽게 인정해주지 않았다. 한국 최초의 이주 노조인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은 노조 신고필증을 받기 위해 지난 2005년 4월부터 2015년 6월까지 10년 동안 싸웠다.

그간의 부침은 지난 2015년 이주노조를 인정하는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난 후 이들의 법률대리를 맡은 권영국 변호사가 한 말속에 잘 드러나 있다.

"이주노조가 설립될 때 저를 찾아왔는데, 당연히 노조 설립신고증이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반려가 되면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다. 전직 임원들이 추방될 때마다 집행정치 신청, 강제출국처분취소소송 다 대리했는데 계속 패소했다. 그 끝이 오늘이라 생각한다. 초대 위원장 아노아르 후세인, 2대 까지만 위원장, 라쥬 부위원장, 마숨 사무국장, 3대 토르너 위원장, 소부르 부위원장, 4대 미셸 카투이라 위원장... 이런 분들의 끊임없는 희생 덕분에 오늘 다행스러운 판결이 나왔다." -권영국/오마이뉴스(2015년 6월 25일)

미셸 카투이라 역시 이 10년 동안의 싸움 중 본국으로 쫓겨난 이주노조의 위원장 중 하나다. 그리고 얼마 전 소원하던 그에게서 기쁜 소식이 들렸다. 그가 이제는 '마이클'이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유방제거 수술을 받을 예정이라는 소식이다.

마이클은 가정사로 매우 바쁜 상황에서 허핑턴포스트와 이메일로 짧은 대화를 나눴다.

트랜스젠더를 대하는 데 필리핀 사회와 한국 사이에 차이가 있나요?

차별이라는 게 한국에서는 폭력적인 공격을 뜻하고, 필리핀에서는 좀 더 '패시브 어그레시브'한 의미로 쓰이는 것 같아요. 여기서도 폭력적인 공격이 벌어지곤 합니다.

한국에서 트랜스젠더 남성 노동자로서 힘든 점이 있었나요?

그럼요. 스스로도 자신을 괴물처럼 보기도 하고, 무조건 순응해야 하기도 하죠. 밖에 나가면 우리를 정신병자로 보는 사람들도 많고, 한국에 질병을 가져오는 사람, 나중에 지옥에 갈 사람으로 봤어요. 성소수자들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정말 드물어요.

이번에 수술을 결정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은 뭐였나요?

결심은 오래전에 했지만, 방법이 없어서 힘들었어요. 혼자 힘으로는 할 수 없었죠. 후원자들의 지원을 요청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수가 없었죠. 이 수술은 제정신 건강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지만, 필리핀에서 어떤 움직임을 만드는 데도 중요해요.

여성으로서도 남성으로서도' 유방'이라는 게 장애물로 느껴진다고 얘기한 걸 들었어요.

여성에게 유방이 장애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남성에게는 심리적 트라우마가 될 수 있으며, 심지어 폭력적일 때도 있어요.

이 수술이 필리핀에서 일반적인 수입에 비해 매우 큰 부담이라고 들었어요.

트랜스젠더 중에서도 극히 일부분만 이 수술을 받는데, 우리나라 경제가 극단적으로 양극화 되어있어서 아마 대부분이 받기 힘들 거예요.

필리핀에서만 있는 특별한 상황인가요?

각 나라가 다들 나름대로 어려움이 있지요. 태국이나 일본은 트랜스젠더 의료분야의 기술 발달로 비용이 낮아졌죠. 또 방글라데시의 경우엔 제3의 성을 인정하는 승리의 순간이 있었고요. 필리핀은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인도 등 남아시아에서는 신체 조건과 다른 성적 정체성을 느끼는 트랜스젠더나 여장 남자인 크로스드레서, 거세한 남성 등 다양한 성적 정체성을 가진 성적 소수자들을 일반적으로 ‘히즈라’라고 이른다. 네팔이 2007년에, 방글라데시가 2013년에 '히즈라' 즉 제3의 성을 공식 인정했다. 인도 역시 지난 2014년 히즈라’ 집단을 ‘제3의 성’으로 인정하는 최고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한겨레 편집(2014년 4월)

한국에서 어떻게 쫓겨났는지 짧게 설명해주세요.

저는 한국에서 탄압의 대상이었던 이주노조의 위원장이었어요. 그런데, 정치적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비자가 취소됐죠. 우리는 한국의 불공평한 법과 차별적인 정책에 대해 시위를 하고 캠페인을 벌였거든요. 그 사람들이 비행기에서 저를 끌어내서 필리핀으로 송환시켰을 때 전 비자가 있었던 상태였어요.

카투이라는 2011년 3월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가 “카투이라가 일한다는 공장은 실재하지 않고, 외국인 근로자로서 근로 활동에 종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출국명령을 내리자, 이에 불복해 서울행정법원에 행정처분 취소소송을 내 지난해 9월 승소했다. 당시 재판부는 “부정한 방법 등으로 체류허가를 받았다거나 출입국관리법을 위반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출국명령은) 노조 활동을 이유로 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이 든다”고 판결 취지를 밝혔다.

그러나 1심 결과에 불복한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가 항소했고, 카투이라는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지-1 비자를 받아 국내에 체류하고 있다가, 지난 1월 가족을 돌보기 위해 필리핀으로 돌아갔다.

이후 카투이라는 2012년 5월 7일 만료 예정인 지(G)-1(인도적 사유에 의한 체류허가) 비자를 갱신하고, 국내에서 진행중인 출국명령 등 행정처분 취소소송 항소심 재판을 준비하기 위해 입국하던 중 출입국 심사 과정에서 ‘입국 거부자 명단에 포함됐다’는 이유로 출국 조처가 내려졌다.

당시 정영섭 이주노동자운동후원회 사무국장은 “카투이라는 오는 7일이 되면 비자가 만료돼 재판에 참여할 수도 없고 소송이 각하될 수도 있는 상황”이라며 “재판을 받기 위해서는 입국해야 하는데, 확정판결 전까지 입국을 거부한다면 어떻게 재판을 받을 수 있겠느냐”고 밝힌 바 있다. -한겨레(2012년 5월 2일 기사 편집)

그 과정에서 젠더 이슈가 연관이 있었을 거로 생각하나요?

어쩌면요. 저는 '동성애자인권연대'에서도 활동 했는데, 우린 당시에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기 위해 로비 중이었거든요. 이것도 (그들이 말하는) 제 '정치적 활동'에 들어갔다고 봅니다.

불공평한 대접을 받았다고 생각하나요?

그럼요. 성소수자 커뮤니티인 걸 떠나서 우선적으로 저는 노동자고, 이주자였어요. 한국 사회에서 가장 억압받는 계층으로우리에게 가해지는 모든 압박에 일어서고 싸워야 할 의무를 느꼈어요. 하지만 우린 너무 수가 적었고 상대방에겐 권력이 있었죠. 법은 그 사람들을 위해 움직이고 우리에겐 항상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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