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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프 셀프디펜스]우리가 '자기방어 훈련'을 그만둘 수 없는 이유

허핑턴포스트에서는 'Self-Defense' 코너를 통해 여성들이 스스로의 강인함을 단련할 수 있도록 '자기방어'를 소개했습니다. 이번에는 평소 '힘이 약하고, 근력이라곤 하나도 없던' 허핑턴포스트의 여성 에디터 두 사람이 직접 '자기방어' 훈련에 도전했습니다.

'셀프디펜스 기획'의 하이라이트, 스파링이 다가오고 있었다.

첫 스파링 후, 우리의 스파링까지 남은 시간은 일주일 정도. 그러고 나면 '셀프디펜스 기획'도 끝이었다.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스파링에 초점을 두고 연습했고, 연습 시간도 늘렸다.

- 김현유 에디터

생애 처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맞고 다른 사람을 때려본 뒤에야 나는 내가 의외로 강골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약간 자신이 생겼다. 맞으면 아플까봐, 그게 무서워서 스파링을 꺼렸다. 그러나 2년 가까이 복싱을 해 오신 분께 맞은 아픔이 이 정도라면... 나와 같이 시작한 윤인경 에디터라면 2라운드 동안 그냥 맞고만 있어도 되겠다는 게으른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2라운드 내내 맞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좀 아플 것 같긴 하다. 스파링에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결심했다.

- 윤인경 에디터

끝이 보인다는 사실에 힘이 났다. 한번 너덜너덜 맞아봐서 그런지 링 위에서의 6분이 두렵지 않았다.

설레고 기대되는 그런 피날레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마지막이라는 것에 힘이 났다.

동료와 스파링을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었다. 내가 김현유 에디터를 병원에 보낼 일은 당연히 없었으니까…

'셀프디펜스 기획'의 마지막 날, 우리 두 사람의 스파링 디데이이기도 한 그 날이 밝았다.

- 김현유 에디터

윤인경 에디터와 함께 사람이 없을 시간인 오후 1시쯤 체육관으로 향했다. 스트레칭을 하고, 줄넘기를 3라운드 뛴 뒤 쉐도우를 살짝 했다.

그리고 우리의 에디터들이 체육관에 입성했다.

갑자기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그래, 한 달 간 그 좋아하는 술도 끊고 연습했는데 배운 것만이라도 활용해서 제대로 해야지! 헤드기어를 쓰고 글러브를 낀 뒤 윤인경 에디터와 함께 회사 동료들이 에워싸고 있는 링 위로 올라갔다.

관장님은 우리 의견은 듣지도 않은 채 "원래 여자는 2분씩 2라운드인데, 그냥 3분씩 할게요"했다. 우리가 대답하기도 전에 종이 쳤고 관장님은 "박스"를 외쳤다. 우리는 글러브를 맞대 인사를 했다. 쨉, 투, 슥빵! 위 아래, 더킹, 다시 쨉 투, 쨉쨉 투, 원 투 쨉, 엇, 또 가드 풀어졌네. 정신 차리고 가드 올리고.

한참 주먹을 주고받다 1라운드가 끝났다. 마우스피스에 침이 고였다. 땀이 범벅이 됐고 숨이 찼다.

- 윤인경 에디터

짧은 휴식이 끝나고 2라운드가 시작됐다.

어느 순간부터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어렸을 때 공황발작이 왔었다.

너무 많이 우는 바람에 숨 쉬는 법을 까먹은 적이 있었는데, (표현은 웃길지 모르지만) 그 순간의 공포는 겪어본 사람만 알 것이다.

가슴에서 통증이 느껴졌고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계속 하나 둘, 숨을 쉬어야 한다.’

얼마나 맞았는지 몇 대나 때렸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고통의 2라운드가 끝났다.

난 링 위에 오르기 전에 김현유 에디터와 약속했다.

종이 울리면 감격의 포옹을 나누자고...

우리가 얼마나 쿨한 여자들인지 링 위에서 보여주자고.

하지만 헤드기어를 벗는 순간 김현유 에디터를 똑바로 볼 수 없었다.

스파링이 끝나고도 한참 숨을 고르게 쉬지 못했다.

동기와 스파링을 해서 그런 것도 아니었고 몇 대 맞아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 순간 세상에 나 혼자인 듯 외로웠고 서러웠다.

톡 건드리면 눈물샘이 팡 터질 것만 같았다.

김현유 에디터의 걱정 어린 얼굴을 보니 너무 미안했다.

나름 괜찮은 척을 하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능력 부족이었다.

다행히 링에서 내려온 뒤 윤인경 에디터는 곧 괜찮아졌다.

우리는 한 달 간의 이 기획을 마치는 기념으로 한 달간 참았던 맥주 축배를 들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우리, 정말 앞으로는 스파링 같은 거 하지 말아요.

셀프 디펜스 기획 그 후, 우리는 이렇게 달라졌다.

- 김현유 에디터

한 달 간의 셀프디펜스 기획을 통해 나는 정말 많이 바뀌었다. 당연히 나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한 윗몸일으키기라든지, 푸시업 같은 웨이트 동작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됐다. 희미하지만 복근이 생겼으며 한참 동안 앉아 있다가 일어날 때도 엉덩이가 무겁지 않다.

가장 중요한 건, 위기에 처했을 때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겠다는 점이었다.

나는 "내가 몸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전혀 몰랐다. 그저 맞으면 엄청 아플 것이고 내가 때려봐야 얼마나 아프겠어, 정도의 생각만 했다. 한 번도 맞아본 적도 때려본 적도 없었으니까.

그러나 이제는 안다. 맞아도 고통은 크게 오래가지 않으니 두려워할 필요 없고, 내가 때리는 것도 충분히 위협적일 수 있다는 점을 말이다.

때리고 맞지 않아도 안전한 세상이라면 참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회에 살고 있는 여성이라면 정말이지 한 번쯤은 '셀프디펜스'를 목적으로 어떤 운동이든 도전해봤으면 한다.

아, 그리고 복싱하고 살 엄청 빠졌다.

- 윤인경 에디터

한 달 간의 트레이닝 기간 동안 몸도 마음도 많이 변화했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했다는 것이 뿌듯했다. 중간에 포기하지도 않았다.

맞아봤고 때려봤다.

맞고 때릴 때 육체적 고통보다 정신적 고통이 더 크다는 것을 배웠다.

어디 가서 바보같이 맞기만 하다 올 것 같지는 않다.

가장 확실한 건… 복싱하면 살 빠진다.

셀프 디펜스 기획, 그 후에도 우리가 계속 '자기방어'를 훈련하기로 한 이유

2월 24일에 마지막 스파링을 치렀다. 체육관에는 한 달치의 비용을 지불했기 때문에 남은 2월 동안은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할 수 있었다.

"현유씨, 더 다닐 거에요?"

"글쎄요, 인경씨는요?"

"모르겠어요. 운동은 돼서 좋은데."

"저도."

그래서 우리는 일단 남은 이틀만 더 다녀 보기로 했다. 하지만 이틀만에 판가름할 문제는 아니었고, 우리는 2월의 마지막 날까지 결정을 하지 못했다. 그 날 낮, 운동을 마치고 나온 우리는 길 건너 카페에서 빵과 커피를 먹으며 결정하기로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깔깔대면서 지하 보도로 들어갔는데, 건너편에 웬 아저씨가 들어왔다. 눈동자를 가만히 두지 못하던 아저씨는 우리를 곁눈질로 보며 갑자기 자신의 바지춤에 손을 주섬주섬 갖다댔다.

저건...!

여자 중학교, 여자 고등학교를 졸업한 김현유 에디터는 정확히 알 수 있었다. 한두 번 본 꼴도 아니었다. 아니나다를까 불안한 눈빛의 아저씨는 바지를 주섬주섬 풀어헤치고 자신의 그것(...)을 만졌다.

김현유 에디터는 눈을 똑바로 뜨고 그 아저씨를 째려봤다. 그러나 차마 여고시절 친구들과 다 같이 있을 때처럼 깔깔대며 "X나 작다!"하고 소리치지는 못했다. 우리는 지하보도에 단 둘 뿐이었고, 혹시나 그렇게 했는데 저 아저씨가 갑자기 칼이라도 꺼내들면... 그나마 할 수 있는 건 똑바로 째려보는 것뿐이었다. 윤인경 에디터는 아예 아저씨 쪽으로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우리가 지하보도를 거의 나설 무렵, 그 아저씨가 입을 열었다.

"야, 너네 휴지 있어?"

징그럽게도 목소리에 숨이 차 있었다. 윤인경 에디터가 깜짝 놀라 뒤돌았다. 아저씨는 지하보도 한 중간에 서서 여전히 자신의 그 것을 붙들고 있었다.

안경을 가져오지 않은 탓에(덕인지도 모른다) 윤인경 에디터는 아저씨가 걷다가 갑자기 그곳이 가려워져서 긁는 줄 알았던 것. 사실 잘 안 보이기도 했고... 그 이유는...

물론 바로 경찰에 신고했으나 순식간에 도망쳤는지 잡을 수 없었다. 어쨌든 그래도 그 변태 아저씨 덕분에 우리의 '셀프디펜스' 열망엔 불이 붙었다.

"우리 셀프디펜스, 여기서 끝내면 안 될 것 같죠?"

"네. 100퍼, 111퍼,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떻게 딱 이렇게 기획이 끝나는 날 우리 앞에 나타날 수가 있죠?"

"혹시 여성들의 셀프디펜스를 장려하는 '셀프디펜스의 요정'이 아닐까요?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타이밍 적절하게..."

덕분에 우리는 지금까지도 복싱을 하고 있다.

아직 혼자 걷는 밤길은 두렵다. 100퍼센트 안전하게 밤길을 걸을 수 있는 날이 쉽게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전보다는 덜 불안하다. 적어도 위협을 당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고 있기에.

공격도, 방어도 하지 않고 살기엔 위험한 세상이라는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만 말이다.

[허프 셀프디펜스 기획]

#1 우리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링에 오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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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잠자던 근육이 천천히 깨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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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생애 처음으로 때리고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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