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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군이 나치 유대인 학살을 2년 반 전에 알고도 외면했다는 증거가 공개됐다

  • 허완
  • 입력 2017.04.18 14:09
  • 수정 2017.04.18 14:16
Soviet red army soldiers of the first ukrainian front with liberated prisoners of the auschwitz concentration camp in oswiecim, poland, 1945. (Photo by: Sovfoto/UIG via Getty Images)
Soviet red army soldiers of the first ukrainian front with liberated prisoners of the auschwitz concentration camp in oswiecim, poland, 1945. (Photo by: Sovfoto/UIG via Getty Images) ⓒSovfoto via Getty Images

해마다 1월27일이면 폴란드 아우슈비츠수용소에서는 1945년 이날 소련군이 수용소를 해방시킨 것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린다. 이 행사는 피 흘리며 진군한 연합군이 극악한 나치의 손아귀에서 아직 독가스실로 보내지지 않은 유대인들을 구출했다는 이미지를 퍼뜨린다. 하지만 과연 연합군이 수용소에 당도한 뒤에야 참상을 발견했는지, 사전에 구출 노력을 할 수 없었는지 등의 의문을 일으키는 문서들이 햇빛을 보게 됐다.

영국 <인디펜던트>는 연합군 쪽이 2차대전이 끝나기 2년6개월 전에 나치의 유대인 인종청소가 한창 진행중인 것을 파악하고도 사실상 외면한 점을 보여주는 유엔 전범위원회(UN WCC) 문서가 공개됐다고 18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미 1942년 12월에 미국·영국·소련 정부가 나치가 유대인 200만명을 학살하고 또다른 500만명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사실을 파악했다는 사실이 문건을 통해 드러났다고 전했다. 하지만 연합군 쪽은 유대인들을 구출하거나 이들에게 피란처를 제공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당시 영국 각료 비스카운트 크랜본은 ‘유대인들이라고 해서 특별히 고려할 수는 없으며, 대영제국은 이미 난민들로 가득 차 더는 피란처를 제공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수만 건의 유엔 전범위원회 문서를 토대로 <히틀러 이후의 인권>이라는 책을 쓴 영국 교수 댄 플레시는 “연합군은 집단수용소를 발견하고서야 홀로코스트를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미 1942년 12월부터 이 문제를 언급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유엔 전범위원회의 미국 특사인 허버트 펠이 유대인 구출을 위한 노력을 했으나 미국 국무부 내의 반유대인 정서가 이를 좌절시켰다고 밝혔다.

유엔 전범위원회(UN WCC)가 아돌프 히틀러의 기소를 준비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문건. 루돌프 헤스와 하인리히 힘러가 공범으로 적혀 있다.

공개된 문서들에는 유엔 전범위원회가 1944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의 반인도 범죄를 이유로 히틀러와 그 측근들의 기소를 추진했음을 보여주는 내용도 있다. 나치의 반인도 범죄에 대한 물증을 대폭 보강해주고, 유대인 해방에 관한 연합군 쪽의 역할에 관해 수정주의적 시각을 제공하는 대량의 문건은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 등 동유럽 쪽에서 나온 정보를 토대로 하고 있다. 1930년대부터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추적해온 바이너도서관은 새로 공개된 문서들을 곧 인터넷에 올려 연구에 쓰게 하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중요한 문서들이 70여년간이나 비공개 상태였던 점도 논란거리다. 영국 <가디언>은 냉전이 시작되면서 서독 엘리트들을 활용할 필요가 생긴 서구와 유엔 쪽이 전범 재판을 축소하고 기록을 숨겼다고 지적했다. 학자들은 그동안 이 문서들을 보려면 자국 정부와 유엔 사무총장의 인가를 받아야 했고, 열람만 가능하고 복사나 필사도 불가능했다. 하지만 지난 1월까지 유엔주재 미국대사를 지낸 서맨사 파워가 공개가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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