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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게이 홀로코스트'는 완벽하게 잊혀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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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사는 유대인인 나는 꽤 어린 나이에 홀로코스트에 대해 알게 되었다. 개념적으로 제대로 이해한 것은 여러 해가 지나서였지만, “70년 전에 독일이 그저 그들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유대인들을 잔뜩 죽였다.”는 것은 어렸을 때 종교 및 세속적 교육을 통해 자주 들었다.

자라면서, 유대인들이 함께 겪었던 이 시련은 다른 정치 및 사회적 시각들이 아주 상이한 유대인 커뮤니티 내에서 연대의 근원이 되어주었다. 내가 학문적, 개인적으로 성장해 가면서 홀로코스트에 대한 나의 이해는 깊어졌다.

히틀러는 유대인이 유대인이기 때문에 죽인 것이 아니었다. 그는 유대인이 독일의 실패의 조짐이라고 우길 수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을 죽였다. 우리가 이미 타인화(otherize)되었기 때문이었다. 세속적 및 종교적 학계에서, 홀로코스트는 유대인 종족 학살로 묘사된다. 소련 전쟁 포로, 폴란드 인들, 세르비아 인들, 장애인, 집시들은 이차적 피해자로 언급된다.

홀로코스트는 다른 사람들도 표적이 된 유대인 종족 학살로 가르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이 이슈에서 역사적으로 특정 집단이 생략되어 있다. 게이 남성이다. 동성애자들은 홀로코스트의 직접적 표적은 아니었으나, 대부분의 집단에 비해 높은 비율로 제거되었고, 거의 모든 다른 커뮤니티에 비해 더 나쁜 대우를 받았다.

히틀러와 나치는 유대인과 함께 ‘바이마르 공화국이 동성애자를 용인한 것을 독일의 타락의 징후로 보았다’.

나치는 기독교 도덕의 전달자로 행세하며, 동성애의 ‘악’을 근절하려 했다. 나치에 의하면 남성 동성애자들은 나약하고 계집애 같아서 순수한 독일을 대표할 수 없었다. 또한 남성 동성애자들은 독일의 출생률을 높일 수 없다는 위험이 있었다. 나치들은 ‘아리아 인종’보다 열등한 인종들이 아이를 더 많이 낳는다고 믿었다. 즉 독일의 출생률을 높이는데 기여하지 못하는 커뮤니티는 인종적 위험을 갖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나치는 남성 동성애자들은 비도덕적이고, 나약하고, 생식적 실패라고 보았다. 나치에게 있어 남성 동성애자들은 독일의 퇴보를 체화한 존재이자 그 원인이었다. 나치는 남성 동성애자들이 독일을 위협한다고 보았으며, 그에 따라 처벌했다.

남성 우위의 나치 사회에서 ‘레즈비언들의 존재는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미국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박물관의 테드 필립스는 밝힌다. ‘어머니와 아내가 되는 것 외에 여성들의 섹스는 중요하지 않았다’고 한다.

1933년부터 1945년까지, 동성애자로 체포된 남성은 10만 명에 가깝다. 이 중 5만 명은 공식적으로 형을 받았다. 이중 15,000명에 가까운 남성들이 수용소로 보내졌다. 저명한 학자 뤼디거 라우트만에 의하면 동성애자들의 사망률은 60%에 달했다고 한다. 이는 정치범들(41%)과 여호와의 증인들(35%)의 사망률의 1.5배다.

미국 국립 의학 도서관 연구소가 밝혔듯, 남성 동성애자들은 ‘가장 가혹한 조건에 처했으며 수용소 내에서도 가장 낮은 계층으로 취급 받았다.’

남성 동성애자들은 쉴 새 없이 폭행 당했고, 고환에 끓는 물을 붓거나부러진 빗자루를 항문에 넣는 등의 괴롭힘을 받았다. S.S.가 사격 연습시 표적으로 삼기도 했다. 군인들은 게이 남성들이 달아야 했던 핑크색 삼각형을 겨냥했다. 나치들은 잔혹한 인체 실험에 게이 남성들을 계속해서 동원했다.

게이 남성들이 수용소 계층 중 ‘최하 중의 최하’였지만, 이들은 홀로코스트 관련 문헌과 교육에서 누락되곤 한다. 이것은 유럽 전역의 역사 정정의 자연스러운 진화의 결과다.

유대인과 다른 집단들은 배상과 국가 연금을 받았지만, 게이 남성들은 배제되었다. 1935년에 나치가 법을 바꾼 뒤, 1969년까지 독일에서 게이 남성은 범죄자였다. 홀로코스트 생존자 동성애자들은 ‘상습범’으로 다시 투옥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성범죄자’ 명단에 오르기도 했다. 수용소에 갇혀 있었던 수없이 많은 동성애자들이 나치 몰락 후에도 복역해야 했다.

전세계적 동성애혐오 때문에, 연합군과 홀로코스트 역사가들, 교육자들은 1980년대까지 나치의 반 게이 정책들을 대부분 무시했다. 연합군(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은 세계 2차 대전 이후에도 반 게이, 반 항문 성교 법률을 유지했다. 그러니 그들은 독일이 나치 몰락 이후에도 그러한 법을 유지하는 걸 문제삼지 않았다.

세계 2차 대전 이후에도 전세계 대부분에서 동성애는 불법이었으므로, 나서서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한 게이 피해자들은 거의 없었다. 2002년에야 독일 정부는 게이 커뮤니티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U.N.은 지금도 홀로코스트 중 게이들의 처형을 집단 학살(genocide)로 인정하지 않는다. 집단 학살은 국적, 민족, 인종, 종교 집단에 대한 것으로 정의되어 있기 때문이다. 슬레이트는 ‘수용소의 게이 피해자들은 오랫동안 도외시되었다’고 밝힌다.

내가 일반 학교와 종교 학교에서 배운 역사 수업에서는 남성 동성애자들의 박해를 다루지 않았다. 게이 유대인 남성인 나는 아마 나치의 토템폴의 바닥에 있었을 것이다.

홀로코스트는 유대인들에게 초점을 맞춘 집단 학살이었지만, 다른 집단도 피해를 입었다. 남성 동성애자들(‘최하 중 최하’)을 무시하는 것은 위험하며, 미래의 박해를 허용하는 일이다.

게이 남성들을 가두는 수용소 형태의 감옥이 체첸에 최근 등장했다. 해당 지역 무슬림 국가들에서 일고 있는 반 게이 폭력의 새로운 형태다. 람탄 카디로프 대통령의 비서는 이는 거짓말이고, 체첸에는 게이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게이가 있다면 가족들이 알아서 할 것이라고 했다.

“체첸에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해도 사법 기관에서 그들을 다룰 필요는 없다. 그들의 친척들이 그들을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보낼 것이기 때문이다.”

1930년대와 1940년대에 일어났던 게이 홀로코스트가 지금 체첸에서 반복되고 있다. 홀로코스트 이후 동성애의 정당성과 도덕성이 부인됨에 따라, 미국의 연합국들을 비롯한 전세계에서 게이의 구류와 살해를 문제삼지 않게 되었다.

트럼프 정권이 2020년 인구 조사부터 LGBT를 제외하기로 한 것은 그런 세계의 존재를 허용하는 일이다. 미국 안에 우리가 존재한다는 걸 부정함으로써, 트럼프 정권은 세상에게 아무 두려움 없이 우리를 악마화하고 박해해도 된다는 청신호를 준 셈이다. 아직까지 트럼프 정권과 틸러슨 국무장관은 게이 남성들을 위해 만들어진 수용소의 존재를 규탄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모두가 두려워해야 할 사실이다. 트럼프 정권은 세계 2차 대전 이후 미국의 실수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트럼프가 ‘아름다운 아기들’이 고통을 겪는다는 이유로 시리아를 공격했던 주에 아무 죄없는 게이 남성들을 향한 집단 학살 프로그램에 대해 침묵을 지킨다는 건 충격적이다.

게이 남성들은 홀로코스트 이후와 마찬가지로 전세계의 의식에서 누락되고 있다. 우리는 1980년대까지는 홀로코스트의 정당한 피해자로 간주되지 않았다. 게이 남성들의 이야기는 일반적인 홀로코스트 역사에 아직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과거의 끔찍함은 우리가 잊으면 반복된다.

체첸의 수용소(세계 2차 대전 이후 최초로 생긴 것이다)가 좋은 예다. 게이 남성들은 문자 그대로 강제 수용소로 끌려가고 있다. 한편 트럼프 정권이 이끄는 서구 세계는 우리의 존재를 계속해서 무시하고 우리의 고통을 못 본 척하고 있다.

허핑턴포스트US의 The Forgotten Gay Holocaust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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