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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맘 상실케 하는 '고운맘카드'

고운맘카드를 처음 안내받았을 때는 '임산부 누구에게나 50만원을 지원한다고? 이런 괜찮은 제도가 다 있다니!' 하고 생각했지만 '그럼 그렇지' 소리가 나오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분만 예정일로부터 60일 이내에 다 소진하라는 고운맘카드. 여러분은 임신, 출산, 산후조리까지 얼마의 비용을 지급하셨나요? 처음에는 뭣도 모르고 '50만원이면 임신기간은 버틸 수 있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3개월 만에 다 쓰고 말았죠. 이제 3년 전으로 돌아가 임산부 장하나의 가계부를 복기해보겠습니다.

[장하나의 엄마정치] (2) 두리가 왔는데...

2014년 6월22일 두리가 왔다. 개구리 알만한 녀석이 초음파사진에 찍혔다. 두리 아빠 사진가 점좀빼

2014년 6월22일, 두리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뜻밖의 만남이었기 때문에 하루 종일 얼떨떨하던 기억이 나네요. 초음파 사진에 찍힌 두리는 딱 ⊙처럼 생겼었죠. 개구리 알을 닮은 깨알만 한 녀석이 제 삶을 송두리째 흔들 줄이야! 제 삶에 딸이 들어온 것이 아니라, 어느 날 제가 딸아이의 삶에 빨려 들어간 기분입니다. 정두리는 제게 블랙홀입니다.

임신 사실을 확인하고 산부인과의 안내로 '고운맘카드'를 발급받았습니다. 고운맘카드(2015년부터 국민행복카드로 통합)는 건강보험 가입자(피부양자)가 임신확인서를 건강보험공단에 제출하면 임신·출산 비용의 일부를 정액 지원해 주는 제도입니다. 임산부 한 명당 50만원(다태아 90만원)이 신용카드 형태로 지급되고 분만 취약지에 거주하는 경우 20만원의 추가 급여가 지급되죠. 제도의 정식 명칭은 '임신·출산 진료비 지원사업'으로 국민건강보험법 50조와 동법 시행령 23조에 따라 2008년 12월부터 시행되고 있는데요. 마음씨 곱던 엄마들도 '고운맘'을 상실하게 만드는 고운맘카드 이야기 좀 해보겠습니다.

고운맘 상실케 하는 '고운맘카드'

고운맘카드를 처음 안내받았을 때는 '임산부 누구에게나 50만원을 지원한다고? 이런 괜찮은 제도가 다 있다니!' 하고 생각했지만 '그럼 그렇지' 소리가 나오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분만 예정일로부터 60일 이내에 다 소진하라는 고운맘카드. 여러분은 임신, 출산, 산후조리까지 얼마의 비용을 지급하셨나요? 처음에는 뭣도 모르고 '50만원이면 임신기간은 버틸 수 있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3개월 만에 다 쓰고 말았죠. 이제 3년 전으로 돌아가 임산부 장하나의 가계부를 복기해보겠습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지사에 가서 지난 10년간의 요양급여내역을 뽑고, 신용카드 회사에서 고운맘카드 거래 기록을 받아 보았습니다. 제가 임신했던 시점에는 초음파 검사가 비급여 항목이었기 때문에 검사 비용은 병·의원이 정하기 나름이고 100% 본인부담이었죠. 공단에 기록이 남지도 않고요. 그러나 고운맘카드는 급여든 비급여든 사용할 수 있고 초음파 검사 비용을 결제할 수 있어 두 기록 간의 금액 차이가 컸습니다. 공단 자료에는 2014년 7월4일 상병명 '절박유산'으로 9710원만 기록(공단부담금 6810원+본인부담금 2900원)되어 있습니다. 같은 날 고운맘카드로 결제한 금액은 5만2900원이니까 4만원 이상 차이가 나는 거죠. 건강보험 재원에서 검사비용을 지급하면서 공단에 기록은 남지 않으니 실태 파악도 안 되고 관리 감독이 제대로 될 리가 없습니다.

지난해 10월부터 초음파 검사가 급여화됐다는 기사를 보고 잘됐다 싶었는데, 급여는 개뿔. 초음파 검사 수가가 8만4620원(임신 13주 이후, 본인부담 2만5380원)이라는 겁니다. 제가 다니던 병원은 비급여로 2만5천원이었는데 대체 무슨 기준으로 수가를 정한 건지. 산모 부담은 유지하고 건강보험 재원에서 지출만 늘리는 계획이었다면 대성공이네요.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제도 개악이 다 있습니까?

고운맘카드 사용 기록을 보니 산부인과 진료를 8회 받는 동안 급여 항목은 5만1천원에 불과했고, 나머지 44만9천원은 모두 비급여였습니다. 병원에 갈 때마다 진료비 평균 6만2500원이 깨졌고 그중 5만6천원이 비급여였던 거죠. 임신부가 중환자도 아니고 갈 때마다 5만~6만원이라니 아직도 납득이 안 됩니다. 그놈의 돈 때문에 산부인과 대기실에 앉아 있다가 눈물을 왈칵 쏟은 적도 있습니다. 국회의원 임기 중에 아이를 가졌기 때문에 돈 5만원에 벌벌 떨 필요는 없었지만, 국회의원이 되기 직전까지는 비정규직에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전전하던 형편이었고 문득 그 시절을 떠올린 까닭입니다. 산부인과에서는 거의 매주 진료를 받으라고 하는데 예전 같으면 돈이 무서워서 오란다고 가지 못할 게 뻔했으니까요. 가난해서 뱃속의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얼마나 서러울까? 괜한 상상이 들어서 화장실로 도망가 엉엉 울었습니다. 아마도 그날이 처음으로 엄마의 정치를 고민하게 된 날일 겁니다. 의원회관 사무실에 돌아와서 바로 보건복지부에 산전검사 횟수와 비용에 대한 데이터를 요청했습니다.

복지부로부터 받은 답변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비급여 항목 기록을 공단이 가지고 있지 않아 통계자료를 제출할 수 없다는 겁니다. 의료법 시행령 15조 1항에 따라 모든 병·의원은 진료기록부를 10년간 보존해야 합니다. 복지부가 의지만 있다면 대한민국 임산부들이 임신·출산 기간에 부담하고 있는 비급여 진료비의 항목별 금액과 횟수를 병·의원으로부터 제출받아 통계자료를 만들 수 있습니다. 임산부들이 얼마를 쓰고 얼마가 필요한지 파악도 하지 않은 채, 정부 예산도 아닌 (가입자가 낸) 건강보험료에서 50만원씩 돌려주는 게 무슨 임산부 정책입니까?

두리는 가느다란 분홍색 실선으로 자신의 존재를 처음 알렸다. 두리 아빠 사진가 점좀빼

초음파 검사 급여화? 개뿔!

현재 건보료 아닌 정부 예산으로 시행되는 임산부 지원 사업은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 등 저소득층, 만 18살 이하 청소년 산모, 그리고 여성장애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발생하는 사각지대가 건강보험 미가입자 또는 체납자 가구의 임산부들이죠. 민주당 제윤경 의원실이 지난달 24일 건강보험공단에서 제출받은 '최근 5년간 4대보험 체납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역가입자 체납세대 417만가구 중 249만가구(60%)가 건보료 월 5만원 이하 생계형 체납자라고 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보험 가입률은 40.4%(2016년 10월 한국노동사회연구소 '2005~2016년 정규직·비정규직 사회보험 가입률 현황')로 정규직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구요.

뱃속의 아이도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가난한 엄마를 만났다고 세상에 오면서부터 차별받아선 안 되겠죠. 임신·출산 비용을 지원하는 것은 임산부를 위한 게 아니라 우리 아이들을 위한 일입니다. 작년 9월 복지부가 배포한 보도자료를 보니 2017년도 저출산 대책 예산안을 22조4560억원으로 편성했답니다. 지난 10년간 80조원을 쏟아붓고도 출산율이 제자리인데 또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꼴이죠.

이왕 출산율도 못 올릴 거 예산 쓰고 욕먹지 말고, 그냥 우리 엄마들한테 화끈하게 쏘면 어떨까요? 건강보험 재원이 아니라 순수 정부 예산에서 임산부 한 명당 500만원씩 주는 겁니다. 2015년 총 출생아 수가 43만9천명이니까 그래 봤자 2조1950억원 아닙니까. 올해 저출산 대책 예산의 딱 10분의 1밖에 안 되는 금액이죠. 정부 예산으로 모든 임산부에게 500만원씩 지급한다면, 임신·출산은 물론 전국 평균 230만원, 서울 평균 315만원 한다는 산후조리원 이용료(2주)까지 국가가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정부가 직접 개입해야 공공 산후조리원도 확충하고, 산전검사 횟수나 비용도 현실화하겠죠. 또한 분만 취약지역에 거주하는 산모에게 꼴랑 20만원 더 주면서 알아서 해결하라는 식의 현행 제도 역시 개선될 겁니다.

2015년 12월 건강보험공단 산하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펴낸 '임신 및 출산 지원 강화를 위한 기초조사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 임신부들은 평균 7.5회 초음파 검사를 받고 61.6%가 기형아 검사(염색체)를 받았으며 7.6%는 양수 검사도 받는다고 합니다. 저는 전체 임신 기간 동안 산부인과 진료를 24회 받았고, 그중 15회 정도가 (입체)초음파 또는 기형아 검사였으니 평균의 두 배 이상이죠. 38살에 임신을 했고 초산이니까 '나는 고위험군이라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보고서를 보니 '내가 또 당했구나' 싶습니다.

스웨덴은 2008년 세이브더칠드런에서 146개국을 대상으로 엄마와 아동의 안녕(well-being)을 평가한 결과 1위를 차지한 국가입니다. 출산율은 2012년 기준 1.9명(OECD 평균 1.7, 한국 1.3), 모성 사망비는 3.5명(OECD 평균 6.4, 한국 9.9), 신생아 사망률은 1.7명(OECD 평균 2.6, 한국 1.7), 미숙아 출생률은 2011년 기준 4.4%(OECD 평균 6.7%, 한국 5.2%)라는군요. 스웨덴은 보건소에서 모든 임신부에게 산전관리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고, 이상소견이 있는 경우에만 산부인과 전문의 진찰을 받습니다. 특이한 것은 임신 18~20주 사이에 실시하는 초음파 검사는 1회에 한하여 국가가 비용을 전액 부담하지만, 그 이상의 초음파 검사비는 모두 개인이 부담한다는 점입니다. 이는 초음파 검사와 정상적인 임신·출산과의 상관관계가 입증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에 따른 정책이라고 하네요. 분만 비용은 아동복지나 보험이 적용되어 무료이고, 20살까지 의료비와 치과 진료비의 본인부담금은 없다고 합니다. 즉 출산부터는 아이의 권리에 따라 국가가 아이에게 지원하는 거죠.

프랑스는 총 7회의 산전검사를 실시하고 역시 본인부담금은 없습니다. 별도로 초음파 검사를 3개월에 한 번씩 총 3회 지원하는데 임신 5개월 전에는 본인부담 10%, 나머지는 무료이구요. 영국도 임신·출산·산후 관리 비용의 본인부담금이 없고 임신 중이거나 출산 후 12개월 이내에는 처방 의약품까지 무료라고 합니다. 또한 임신부마다 전담 조산사가 배정되어 초산은 약 10회, 경산은 7회의 산전관리가 제공됩니다. 별도로 7회의 산전검사를 실시하는데 이 중 단 2회만 초음파 검사이고 나머지는 혈액 검사나 안과 검사라고 하네요. 외국의 사례를 보니, 조산기도 없었고 입덧 한 번 안 하고 출산 전날까지 근무했던 제가 단지 노산이란 이유만으로 병원에서 살다시피 하고 고가의 검사를 강권받은 것은 당해도 제대로 당한 게 맞습니다.

내가 또 당한 것이었다

왜 한국 임신부들은 초음파 검사를 두 배 이상 받아야 할까요? 두 배 이상 허약하기 때문일까요? 지난해 11월 국민의당 김광수 의원실이 주최한 '출산인프라 정책토론회'에서 대한산부인과학회는 365일 24시간 분만실을 유지하는 비용이 월 5681만원이라고 밝혔습니다. 전문의, 간호사 12명, 야간 당직의사, 마취과의사, 입원실, 분만실, 신생아실, 임대료, 관리비, 재료 및 약품비 등을 포함한 최소 운영비라는데, 월평균 자연분만 13건, 제왕절개 7건을 실시한 수가가 약 3380만원이기 때문에 매달 2301만원의 적자가 발생한다는 주장이죠.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은 '의치과 수가파일 전체판(2017년 4월1일 기준)'을 뒤져보니 자연분만 최저 수가가 35만6250원이네요. 이래서 동물병원 분만 비용보다 낮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산부인과도 고충이 있겠지만 그렇다고 검사 횟수를 비정상적으로 늘리고, 엄마들이 경제적 부담을 감수하도록 하는 게 정당한가요? 결국 약자한테 피해를 전가하는 것 아닙니까? 건강보험공단은 2016년에도 3조원 당기흑자를 내고 누적적립금이 20조원을 돌파했다는데 수가 문제로 엄마들을 괴롭혀서 되겠습니까? 그중 최악은 단연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복지부, 즉 대한민국 정부입니다.

이제 대선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다음 대통령은 엄마들에게 내놓은 약속들을 제대로 지킬까요? 다음 대통령은 엄마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저는 우리 엄마들이 다음 대통령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18년에는 저출산 심화 예산 22조원 대신에, 가난한 엄마가 울지 않도록 모든 아이가 당당하고 동등하게 세상에 올 수 있도록 신생아 환영 예산 2조원을 엄마들의 손으로 만들어 봅시다!

만납시다, 이야기합시다, '엄마 정치' 합시다

연재 첫 회가 나간 뒤 기대치 못한 뜨거운 반응에 놀랐습니다. 에스엔에스(SNS)에 수천번 공유되고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도 수천개의 댓글이 달렸죠. 그러나 제 가슴을 뛰게 만든 건 '엄마 정치를 해보자, 만나자, 달려가겠다'는 엄마들이 진짜 나타났다는 사실입니다. 페이스북 '엄마정치'(www.facebook.com/groups/political.mamas/)를 통해 엄마들이 꺼내놓은 이야기 또한 가슴을 울렸습니다. 엄마들의 고통은 진솔했고,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엄마들의 마음은 진심 어렸습니다.

국회에서 일하는 동안, 그리고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지금까지,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엄마들을 많이 만납니다. 환경운동, 탈핵운동, 소비자운동, 생활협동조합 운동, 마을공동체 운동, (대안)교육운동 등 여러 분야에서 엄마(여성)들은 왕성한 활동력으로 세상을 바꿔나가고 있죠. 이상한 것은 누구보다 정치적인 엄마들마저 자신이 엄마이기 때문에 겪는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 자신의 모습이기도 했구요.

우리는 이제 만나야 합니다. 만날 준비가 됐습니다. 4월22일 서울여성플라자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가르치고 배우는 시간이 아닙니다. 나의 삶, 우리의 문제들을 정치적인 관점으로 다시 보고 정치적인 해결책을 함께 찾아봅시다.

[엄마의 삶 그리고 정치: 독박육아 대 평등육아]

-일시: 4월22일(토) 오전 11시~오후 1시

-장소: 서울여성플라자 아트컬리지2(서울 대방역 3번 출구 도보 2분, 유모차는 4번 출구 엘리베이터 이용)

-기타: 4층 별난놀이터에서 시간제 보육(24개월~초등학교 3학년, 시간당 1천원)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오세요. 24개월 미만 아기, 엄마와 함께 있고 싶은 어린이도 걱정 말고 오세요. 주차 가능합니다. 문의는 엄마정치 페이스북.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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