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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살과 70살, 사랑은 똑같이 찾아온다

지난 30년 동안 사랑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우리가 얻은 교훈은 간결하다. 우리는 영혼만이 아니라 '육체와 뇌'라는 생물학적 기관을 통해 온몸으로 사랑한다는 것이다. 사랑을 담당하는 뇌영역이 있다면 그 영역의 활동은 7살이나 70살이나 늘 왕성하고 활기차다는 것이다. 새로운 사랑은 늘 똑같은 설렘으로 찾아온다. 모든 사람들이 '내 사랑은 매우 특별하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사랑은 결코 특별하지 않다.

  • 정재승
  • 입력 2017.04.18 13:42
  • 수정 2017.04.18 13:43
ⓒmatejmo via Getty Images

[정재승의 영혼공작소] 성장과 사랑

1960년 미국의 팝가수 폴 앵카가 부른 '퍼피 러브'(Puppy Love·강아지 사랑)는 17살 또래 청소년들의 가슴 앓는 사랑을 노래한다. 사랑에 빠진 그들은 밤마다 울면서 상대에 대한 애끓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퍼피 러브'란 청소년 시기의 사랑을 낮춰 일컫는 말이지만, 최근 심리학자들은 청소년 시기의 사랑이 어른들의 사랑과 비교해 결코 가볍게 볼 게 아니며 어른 못지않게 진지하다고 주장한다. 이미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16살도 채 안 된 청소년들의 사랑이 '죽음만이 갈라놓을 수 있는' 진지한 사랑임을 잘 보여주지 않았던가!

〈청소년기의 연애관계 발전〉이라는 책의 편집자이자 심리학자인 캔디스 페이링 박사는 청소년의 남녀 관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른들의 구애 행동들이 그대로 관찰된다고 주장한다. 맘에 드는 이성이 자신에게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 구애 행동을 하기도 하고, 성관계를 목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상대를 성적으로 끊임없이 자극한다는 것이다.

때로 그들은 자신이 미래에 '좋은 남편' 혹은 '좋은 아내'가 될 자격이 있음을 드러내기도 한다. 학교 교육이라는 성적 억압 속에서 그들은 은밀히 어른들의 사랑을 흉내내고 시뮬레이션하면서, 짝사랑에 애가 끓고, 배려하며 거절하는 법을 배우고, 거절당하는 아픔을 감당하는 법을 배우고,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법과 쿨하게 헤어지는 법을 배운다. 물론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5살도 사랑에 빠진다

사랑에 빠진 정도를 설문으로 측정하는 '열정적 사랑 스케일'(Passionate Love Scale)을 개발한 것으로 유명한 미국 하와이대학 심리학과 일레인 햇필드 교수는 114명의 남자 어린이와 122명의 여자 어린이를 대상으로 흥미로운 실험을 한 적이 있다. "나는 항상 _____를 생각한다"라는 질문을 4∼6살 어린이들에게 던졌더니, 대부분의 아이들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_____ 안에 채워넣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햇필드 교수는 "5살 어린이도 사랑에 빠진다"고 확신한다.

미 미네소타대학 심리학과의 앤드루 콜린스 교수는 이 시기에 하는 소꿉놀이는 어른이 됐을 때 근사한 사랑에 빠지고 결혼생활을 잘하기 위해 시도하는 역할극이라고 주장한다. 매우 의미 있는 연습 활동이므로, 그들에게 소꿉놀이를 할 시간을 충분히 주는 게 좋다는 것이다.

1986년 배리 손 교수는 802명의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또래집단에서 하는 대화를 분석했다. 그 결과, 초등학생들은 서서히 동성 또래집단을 형성하기 시작하지만, 그들이 모이면 주된 대화는 이성에 대한 얘기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경험상 그리 놀라운 사실은 아니지만!) 초등학교는 대부분 남녀공학임에도 그들은 남자끼리, 여자끼리 모여 노는 것을 즐기며 서서히 '이성에 대한 낯가림'을 하지만, 동성 집단에서 주된 이야기 소재는 '이성'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남학생과 여학생이 이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과 내용은 매우 달랐다. 남학생은 좀더 노골적인 언어 표현을 통해 자신의 성적 욕망을 드러내며 성적 영역을 넓혀간다. 더 심한 표현, 더 노골적인 표현들을 '시도'해봄으로써 사랑에 대한 관심을 표현한다. 반면 여학생들은 이 시기에 성적 환상에 깊이 빠진다. 이성에 대한 환상을 구체적으로 형성하며 멋진 남자와의 근사한 사랑을 꿈꾼다. 그러니 이 시기에 여학생을 공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능력과 배려를 갖춘 쿨한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력, 재력, 열정 따위는 이 시기엔 안 통한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대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사춘기 시절엔 이성과의 만남을 처음 시도하게 된다. 서툴게나마 소개팅이나 미팅을 하기도 하고, 교회 오빠를 만나기도 하고, 학교 선후배와 가벼운 척 진지한 만남을 시도한다. 그들의 만남은 어설픈 행동으로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많지만, 그런 시행착오 끝에 우리는 이성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배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메디컬리서치 연구소에서 5000명의 남녀에 대해 그들의 첫 성관계 시기를 조사한 사례다. 조사 결과 아들의 첫 경험 나이가 아버지의 첫 경험 나이와 일치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남자들 중 72%가 아버지의 첫 경험 시기와 일치했다고 하니, 놀랍지 않은가?(오늘 집에 가서 아버지에게 한번 확인해보시라) 그에 비해 여성들은 어머니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았다.

사랑에 빠진 노인 뇌에선 무슨 일이?

2008년 1월 〈타임〉의 특별호 '로맨스의 과학'에서 티퍼니 샤플스 기자는 로맨스를 미인대회에 비유했다. 우리의 로맨스 데뷔 무대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지만, 청소년들은 언젠가 자신에게 닥칠 로맨스 데뷔 무대를 위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은밀히 연습을 한다는 것이다. 미국 사람들의 통계이긴 하지만, 80%의 사람들은 18살 이전에 '자신의 인생에서 매우 의미 있는 이성'을 만난다. 풋풋한 짝사랑일 수도 있고, 가슴 아픈 첫사랑일 수도 있지만, 인생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사람을 우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한 명쯤 갖는다는 것이다.

그 시절의 경험을 떠올려보면 지금도 낯이 뜨겁다. 그때의 기억들을 송두리째 지워버리고 싶을 정도로, 우리는 사랑하는 데 서툴렀고, 상대방을 그다지 배려하지 못했으며, 때론 지나친 성적 욕망에 시달렸으며, 무엇보다 '용기'가 없었다. 왜 우리는 늘 어른이 되고 나서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하면서 후회해야만 할까?!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Something's Gotta Give)은 사랑에 관한 영화 중 걸작이다. 노인들의 사랑을 이처럼 아름답고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게 그린 작품이 또 있을까? 60대의 음반 사업가인 해리(잭 니컬슨)는 젊은 여성만을 골라 사랑을 나누는 희대의 바람둥이다. 그가 어느 날 자신에겐 더 이상 사랑의 열정이 없다며 집필에만 몰두하는 극작가 에리카(다이앤 키턴)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 영화에서 애틋한 장면 중 하나는 그들의 힘겨운 섹스 장면. 섹스 도중 심박수가 너무 늘어나 심장마비에 걸릴까봐 걱정하고, 혈압 측정 장치의 매뉴얼이 잘 안 보여 안경을 찾는 그들의 모습은 관객의 폭소를 자아낸다. 안쓰럽지만 아름다운 그들의 사랑은 훼방꾼 키아누 리브스도 막을 수 없다!

'황혼의 로맨스'에 대해 의사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는 그들의 사랑이 결코 젊은이들의 사랑 못지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노인들이 사랑에 빠졌을 때 그들의 뇌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며 몸에선 어떤 변화들이 발생하는지'에 대한 연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노인들의 뇌가 사랑에 빠졌을 때 도파민의 분비량이 젊은이들에 비해 어느 정도 되는지, 성적 욕망을 자아내는 아드레날린과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어느 정도 되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과학자들은 아직 진지하게 그들의 '사랑'을 연구한 적이 없는 것이다.

노인들의 '사랑'에 대해 연구가 크게 부족한 반면, 노인들의 성생활에 대한 연구는 오랫동안 지속돼왔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노인들은 성관계 횟수가 젊은이들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거나 성생활을 아예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1970년대 실시된 60살 이상의 고령자 남녀에 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남편과 아내가 함께 생활하는 경우 54%의 부부가 성적 접촉을 정기적으로 하고 있으며 독신생활을 하는 경우에는 7%만이 성적 접촉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배우자가 성관계에 대한 관심이나 능력이 없어졌다고 생각하는 응답자는 남성이 1%, 여성은 14%였으며, 자신이 성관계에 대한 관심이나 능력이 없어졌다고 응답한 경우는 남성이 15%, 여성은 10%였다. 또 자신이 성적으로 무능해졌다고 대답한 것은 남성이 29%인 데 비해, 여성은 거의 없었다.

그렇다면 고령자 부부가 성교를 그만두게 되는 나이는 언제일까? 미국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남성은 평균 68살, 여성은 60살이라고 한다. 또한 기혼남성의 약 60%, 기혼여성의 90%가 '성교를 하지 않게 된 책임은 남자에게 있다'고 응답했다.

이런 추세는 최근 삶의 질이 향상되고 비아그라 등 발기부전 치료제가 등장하면서 크게 개선되고 있다. 최근 스웨덴 예테보리대학의 닐스 베크만 박사팀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성생활을 하는 70대 독신 남성은 지난 30년 사이 30%에서 54%로, 여성은 0.8%에서 12%로 급증했다.

노인 성생활의 증가 추세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한양대학교 간호학과 대학원생 이창근씨가 서울에 거주하는 65살 이상 노인 11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 중 19.5%가 현재 성생활을 지속하고 있으며, 빈도는 월평균 1.37회인 것으로 조사됐다. 빈도는 한 달에 한 번인 경우가 10명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은 두 달에 한 번(4명), 한 달에 두 번(4명), 한 달에 세 번(2명), 일주일에 한 번(1명), 1년에 두 번(1명) 순이었다. 현재 성생활을 하지 않는 노인의 경우, 마지막으로 성관계를 가진 평균연령이 남성의 경우 63.1살, 여성의 경우 57.4살로 전체 평균이 61.3살이었다.

남자 노인 84%가 "멋진 이성에 흥분"

흥미로운 것은 '멋있는 이성을 보면 여전히 좋고 흥분되는가'라는 질문에 남자 노인의 84%, 여자 노인의 14.3%가 '그렇다'고 응답했다는 사실이다. 여성은 덜한 반면 남성은 아직도 멋있는 이성에 반응했다.

미국 텍사스주립대학 교수진들은 '왜 당신은 섹스를 하는가'에 대한 흥미로운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이 조사에 참가한 2000명은 '당신은 성생활에 만족하는가'라는 질문에 남성 56%와 여성 57%가 '그렇다'고 답했지만, 질문의 내용을 약간 바꿔 '당신은 성관계를 충분히 영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는 56%의 여성과 68%의 남성이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이 연구를 수행한 텍사스대의 파이퍼 슈워츠 박사는 "55살에 이혼하고 난 뒤 새 배우자를 만나 가장 훌륭한 성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55살 이후에 섹스를 진짜로 즐길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아름답고 현명한 젊은 여성이라 할지라도 성관계를 성공적으로 유지할 수는 없으며, 오히려 배우자와의 관계가 성숙되고 믿음이 넘쳐나는 나이 든 부부일수록 만족한 성생활을 즐기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지난 30년 동안 사랑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우리가 얻은 교훈은 간결하다. 우리는 영혼만이 아니라 '육체와 뇌'라는 생물학적 기관을 통해 온몸으로 사랑한다는 것이다. 사랑을 담당하는 뇌영역이 있다면 그 영역의 활동은 7살이나 70살이나 늘 왕성하고 활기차다는 것이다. 새로운 사랑은 늘 똑같은 설렘으로 찾아온다.

모든 사람들이 '내 사랑은 매우 특별하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사랑은 결코 특별하지 않다. 하지만 보편적인 사랑의 법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임에도 온 인생을 통해 매번 남다른 색깔의 사랑을 펼친다는 점에서 우리의 사랑은 무엇보다 특별하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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