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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앞둔 워킹맘 4명이 말하는 '독박육아 방지를 위해 다음 대통령이 해야 할 것'(화보, 인터뷰)

허프포스트가 지난 2일 한국 미디어 가운데 최초로 '임신부 바디 페인팅'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습니다.

허프포스트가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한 이유는 이렇습니다.

- 외국에서는 수년 전부터 '자기 표현'과 '자기 긍정'의 한 방법으로 유행하고 있는 '임신부 바디페인팅'을 통해 인생의 특별한 순간을 기념할 수 있는 이벤트를 제공하고

- 동시에 임신한 여성의 '사회적인 목소리'를 미디어로써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4명은 모두 직장 생활을 하는 '워킹맘'이었습니다. 만삭 사진을 따로 찍지 않았다는 신청인들은 좀 낯설 수도 있는 '바디페인팅' 체험 직후 상기된 표정으로

"임신으로 부풀어 오른 배를 그대로 드러내고, 축복하니까, 기분이 굉장히 좋다.

내 몸이 예술작품이 된 듯도 하고. 동화책이 된 것도 같고. 아기에게 정말 좋은 선물이겠다 싶어 신청했는데, 저에게도 큰 선물이었다."(이지현 씨)

"첫째 아기 키우고, 회사 다니고, 너무 바쁘다 보니 뱃속의 둘째 아기만을 온전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는데, 아기와 연결되는 강렬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정은영 씨)

"뭔가 특별한 경험을 한 기분이다."(황하나 씨)

"놀이를 한 기분이라 너무 재밌었다. 만약 둘째, 셋째 아기가 생기면 꼭 또 하고 싶다."(차예지 씨)

고 전했습니다. 아래는 이들이 들려준 자세한 이야기입니다.

[바디페인터: 김진희]

[사진·동영상: 윤인경 비디오 에디터]

1. 이지현 (가명, 첫째 아기, 32주차, 워킹맘)

- 직장인 (사무직)

- 남편은 공부 중이며 지현 씨가 '가장'

- 아기 낳은 이후에도, 출산휴가-육아휴직 후 복귀해 계속 일할 계획

- 오랫동안 난임으로 시술 등을 준비하던 와중에 예상치 못하게 아기가 생김

- 바디페인팅 주제: '호박'

(아기 태명이 '호박이'. 지현 씨가 채소 중에서 호박을 가장 좋아하기도 하지만, 부부가 임신을 확인했을 즈음 친척이 '호박' 나오는 태몽을 꾸었기 때문.)

Q. 그냥 다녀도 힘든 게 직장 생활인데, 임신한 채 다니면 더 힘들었을 것 같아요.

A. 그렇죠. 그래도 저는 좀 다행인 편이예요. 제가 입사했을 때만 해도 여자 선배들이 '출산휴가' 정도밖에 못 썼거든요. 확실히 기억해요. 여자 선배들이 정말 고생했어요. 출산휴가 90일 쓰고 복귀하면..어쨌거나 그 시기가.. 무슨 일이 생기면 집에 일찍 가야 하잖아요. 일은 일대로 해야 하는데.. 여자 선배들이 진짜 힘들어했던 거.. 그게 제 눈에도 보였으니까.

근데 최근 3~4년간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어요. 그 계기가.. 어떤 여자 선배가 난임 때문에 휴직을 썼거든요. 병가처럼. 일반 휴직을 쓰고, 그다음에 육아휴직을 또 사용하고. 일단 그렇게 쓰는 사람이 생기니까 '아, 저렇게 해도 되네?'라고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한 거죠. 역시 펭귄 한 마리 뛰어들어야 나머지도 따라간다고..(웃음). 그래서 지금은 대체로 육아휴직을 다 쓰는 분위기예요. 개인적으로.. 먼저 길을 간 선배(여자)들에게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분들의 노력/희생이 없었다면, 이 만큼도 오지 못했을 테니까.

회사에서 윗선까지 올라간 여자 선배들은 딱 두 가지 케이스예요. 결혼이나 육아를 포기했든지. 아니면 아기가 있어도 할머니/할아버지가 대신 키웠다든지. 부장이건 팀장이건..여자 선배들은 그렇게 해야 직함을 달 수 있는 자리에 올라가더라고요. 씁쓸하죠.

Q. 여자가 '가장'인 케이스가 흔하지 않잖아요.

A. (웃음) 근데 저희 엄마도 32년 이상 일을 한 워킹맘이었거든요. 계속 맞벌이로 일하셨어요. 저랑 제 동생은 할머니가 키워주셨는데.. 제가 겪어봐서 그런지 '아기는 꼭 엄마가 전업으로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엄마가 계속 직장에 다니시니까 좋았던 점 중 하나가 저희한테 그렇게 크게 의존하지 않으셨거든요. 엄마는 엄마만의 생활이 있었고, 저랑 제 동생은 좀 자유롭게 컸고. '엄마도 아빠처럼 일하는 게 당연하고, 그건 나쁜 게 아니다'라고 생각하면서 자라왔어요.

보통 남자가 돈 버는 걸 당연하게들 생각하는데.. 저는 어쨌거나 앞으로도 계속 회사에 다닐 생각이거든요. 남편도 공부해야 하고... 그런데 그렇게 하려다 보니까, 정말 의도치 않게 '부모님의 도움'이 필요하게 되더라고요.

Q. 복직하면 부모님이 대신 키워야 하는 상황인 거예요?

A. 휴...(한숨) 그 생각만 하면 답답해져요. 그동안 양가 부모님한테 별 도움 안 받고 살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아기가 생기니까...

일단 0세를 맡길 어린이집 자체가 굉장히 적어요. 0세 아기를 완전히 남의 손에 맡기는 것도 불안하고.. 회사 어린이집에 0세 반이 있는데, 제가 맡은 업무가 정시퇴근이 보장되는 일이 아니에요. 0세 아기 데리고 회사 출퇴근할 엄두도 안 나고. 아기가 3살이 될 때까지는 제가 못 키우거나, 아니면 제가 쉬거나.. 두 개밖에 선택지가 없어요.

친구 중에 애 엄마가 많은데 2~3명 빼고는 모두 어떻게든 일을 하고 있어요.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친정엄마나 시어머니의 건강을 다 갈아 넣어서 애를 키운다'고 표현하더라고요. 그 말이 딱 맞아요. 그런데 부모님에게 아기를 맡기면... 그분들의 인생 계획도 송두리째 바뀌는 거잖아요. 그래서 지금 생각은...돈이 좀 들더라도 부모님의 체력을 최대한 아끼는 방향으로 육아를 할 방안을 고민하고 있어요. 부모님이 보더라도 파트타임 베이비 시터를 부른다든지.. 남들이 그동안 이야기했던 '한국 사회는 육아/출산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소리를 정말 임신하고 나서 체감하고 있죠..

Q. 여자가 남자보다 육아, 가사노동을 훨씬 많이 한다고들 하잖아요. 체감하나요?

A. 흠.. '압도적'으로요. (웃음) 같이 육아를 하더라도 '깊이'가 다르더라고요. 참여하는 수준이. 저희 회사 사람들을 봐도.. 남자분들은 아기가 엄청 어린데 주말에 회사에 그렇게 나오려고 하세요. 왜냐? 회사에 나오는 것보다 집에서 아기 보는 게 더 힘들거든요.

직장인들이 업무 중 힘들어하는 순간 중 하나가 '상대방과 말이 안 통할 때' 잖아요. 그런데 아기는? '완전히' 말이 안 통하거든요. (웃음) 와이프 없이 한 이틀간 갓난아기 혼자 보는 걸 그렇게 두려워하시더라고요. 두려운 상황이 벌어져도 엄마는 '어떻게든 해야지' 하는데, 남자분들은 할 수 있으면 다른 핑계를 대고 애를 안 보려고 하는 걸 자주 봤어요.

저도 남편과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쉽지가 않아요. 아기가 태어나면 '우리의 생활이 어떻게 달라지고, 각자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이런 걸 이야기할 때.. '애 보기 싫다'는 게 아니라 '진짜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하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Q. 곧 대선이잖아요. 이번 대선을 통해 어떤 게 달라졌으면 하나요?

A. 육아휴직 기간을 3년으로 늘리겠다고 했는데(* 유승민 후보 공약), 사실 크게 공감이 안 돼요. 육아휴직 기간이 더 늘어난다고 해도 여성/남성 모두에게 동등하게 적용하는 방향으로 갈 것 같지 않거든요. 만약 더 육아휴직이 더 길어지면...'내가 회사에 복직할 때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흠.. 장담하기 어려워요.

지금 (육아휴직으로) 1년 쉬는 것도... 사실 복직했을 때 많은 각오를 해야 하는 거거든요. 맡는 업무가 바뀔 수도 있고, 아예 못 돌아오는 데가 태반이고. 돌아오더라도 '이전에 내가 가졌던 전문성을 계속 살려 나간다'가 아닐 가능성이 높아요. 아니, 먼저 부부가 같이 육아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 뒤에 그런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래서 더 우선됐으면 하는 것은.. '저녁 있는 삶'이에요. 단순히 육아휴직 기간 늘리는 것보다 더 힘들겠지만..그래도 큰 틀에서 '저녁 있는 삶'이 가능한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근무시간을 엄격하게 준수하게끔 해서. 초과노동은 반드시 수당을 받을 수 있게 해준다든지. 부부가 함께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될 수 있도록 근무환경이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Q. 지지하는 대선 후보는 누구인가요?

A. 아직 못 정했어요. 집에서 남편과 그런 이야기를 해요. '남자 후보들 다 싫다' '여성 정책을 잘 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고. (웃음)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심상정 후보인데.. 그런데 못 이길 것 같아. (웃음) 이게 딜레마예요.

2. 정은영 (가명, 둘째 아기, 18주차, 워킹맘)

- 직장인 (사무직)

- 맞벌이

- 23개월 첫째 아들을 키우고 있음

- 바디 페인팅: '양수 속 태아'

(뱃속의 둘째 아기를 표현해, 첫째 아기와 뽀뽀하는 모습을 남기고자)

Q. 첫째 아기 키우랴, 회사 다니랴, 뱃속의 둘째까지...진짜 바쁠 것 같아요.

A. 첫째 아기 때문에 육아휴직 썼다가 지난해 8월에 복직했었는데 갑자기 예상치 못하는 시기에 임신하게 됐어요. 그래서, 올해 또 육아휴직을 써야 해요. 친정어머니/시아버지 등등 정말 양가가 총출동해서 아기를 키우고 있죠. 어휴. 그래도 이렇게 부모님 도움이라도 받을 수 있으면 '행운'이고 '다행'이라고 하더라고요.

사실 첫째 아기는 '숙제'라고 남편과 표현할 정도로 엄청나게 철저한 계획 끝에 낳은 거였거든요. 몸도 되게 최상의 상태였고, 태교도 엄청 했고.. '내 인생의 목표 하나'를 완벽하게 이뤄낸 느낌이었는데.. 둘째는 약간 예상하지 못하던 때에 생겨서 솔직히 당황스러운 것도 있었어요. 지금은 아기에게 마냥 미안해요. 정말 너무 바쁘다 보니까, 가끔 배 속에 둘째가 있다는 걸 까먹을 때도 있을 정도거든요.

Q. 가장 힘든 것은 무엇이었나요?

A. '둘 다 잘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요. 애를 잘 보지 못하는 것 같고, 회사 일도 그렇고. 아이가 있다 보니 저녁에는 정시 퇴근을 해야 해요. 그래도 집에 가면 저녁 7시니까.. 아이는 금방 자잖아요. 끽해봐야 한두 시간 밖에 시간을 보낼 수 없어요. 양쪽 일 모두에서 효율이 안 난다고 해야 할까..(눈물을 많이 흘림)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고..아이도 아침에 '엄마 잘 다녀와~'라고 손 흔들면서 잘 보내줘요. 울지도 않고. 근데 계속 눈에 밟히는 느낌이 있어요.

'내가 왜 애를 하루 한 시간 정도만 보면서까지 일을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제 커리어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거든요.

Q. 남편은 어떤가요?

A. 남편네 회사는 제도상 '5시 퇴근'이에요. 하지만 5시 퇴근인 회사에서 진짜 5시에 퇴근을 한다는 게 되게 힘든 일이잖아요. 근데 저희 남편은 정말로 다섯시에 퇴근하고 집에 와서, 첫째 아기를 봐요. 저녁 먹이고, 씻기고. 남편도 저처럼 많이 힘들 것 같아요. '육아휴직을 쓰고 싶다'고는 하는데.. '육아휴직 쓰면 다시는 못 돌아가거나 복직해도 승진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우선적으로 육아휴직을 먼저 쓸 생각이긴 한데.. 좀 고민이에요.

육아는 그냥 스킬의 문제이지 '엄마' '아빠' 나눠서 볼 문제가 아니거든요. 힘도 세고, 애도 잘 안고.. 육아는 남자가 해야 합니다.(웃음) 이유식도 뭐.. 사 먹여도 되는 거고. 사실 '모유' 주는 거 말고는 육아에 있어서 엄마와 아빠의 차이는 없다고 생각해요. 아빠들이 육아를 잘 못하는 건 '안해서' 그런 거죠.

Q. 회사 생활은 어때요?

A. 힘들죠. 임신했다고 해서 배려해주는 게 없으니까. 예를 들어 회식을 가더라도.. '고기 먹으러 가는데 뭐가 힘드냐?'고 할 수 있지만 몸이 피곤하면 그냥 빠지고 싶을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빠진다고 하면 그렇게 눈치를 줘요.

작년 4월에 첫째 아기를 낳았는데, 3월쯤.. 그러니까 '만삭'인 상태로 회사 행사를 치렀어요. 무거운 몸으로 3시간을 연달아 서 있으려니... 정말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회사는 아무 생각이 없어요. 오히려 행사 참여한 사람들이 저 보고 '이렇게 오래 서 있어도 되느냐'고 안타까워하셨죠. 야근도 많이 했었어요. 회사생활이라는 게 임신했다고 해서 '나만 빼달라'고 할 수가 없어요. 현재 환경에서는.

Q. 회사에 워킹맘은 많나요?

A. 직급 달고 임원 된 여자 선배 중에는 워킹맘이 아닌 경우가 많더라고요. 저희 회사에 최연소로 상무 된 여자분이 계시는데 '나는 애들 밥해준 적이 없다'고 말하세요. 다른 방법을 동원해 애를 키웠거나 아니면 결혼을 안 하거나/아기를 아예 낳지 않거나. 진짜 여자 선배들은 이 2가지 길 외에는 본 적이 없어요.

둘 다(업무/육아) 잘하고 싶은 저로서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아, 그건 안되는 거구나...'라고. 정시에 퇴근할 만큼 일을 하고, 집에 와서 아기를 보고 해서는.. '아 내가 뭐 크게 되지는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반면 높은 직위까지 올라간 남자분들은 이런 고민(육아/업무의 병행)과 아무 상관 없죠. 와이프한테 전업으로 시켰다거나 한 거니까.

최근에 분위기가 아주 조금 달라졌다고 해도 육아휴직 후 복직한 여성들에게 '불이익'이 없을 순 없어요. 커리어에 공백이 생긴 거니까. 상대평가이다 보니 누군가 A를 받으려면 누군가는 C를 줘야 하잖아요. 육아휴직 후 복직했다고 해서 C를 주면 그래도 너무 티가 나니까 C를 주진 않는데 그렇다고 해서 A를 주지도 않는 거죠.

저도 출산하기 전에는 계속 A 받았다가 육아휴직 후 B를 받았어요. 근데 둘째가 생겨서 올해 또 육아휴직 들어가야 하니까 올해 B를 주겠죠? 복직하는 내년에도 육아휴직 다녀 왔다고 또 B를 주겠죠? 그렇게 B가 계속 누적되면? 승진을 못 하는 거죠...

Q. 곧 대선이잖아요. 이번 대선을 통해 어떤 게 달라졌으면 하나요?

A. 가장 중요한 건 '남자가 육아휴직을 안 쓰면 안 되게끔' 만들어야 한다는 거예요. 여성의 육아 부담을 덜기 위해서는 출산휴가도 그렇고.. '그냥 이런 제도가 존재한다' 정도에 그치면 안 돼요. 절대로. (* '아빠의 육아휴직 의무화'를 공약으로 내건 후보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육아휴직을 3년으로 늘리는 것도 안돼요. 여성도 커리어가 있는데, 3년이나 쉬면 어떻게 복직하라고요? 지난 1월 문재인 후보가 보건복지부 워킹맘 공무원 과로사 사건 후에 대책이랍시고 '아이 키우는 엄마'를 대상으로 '근로시간 단축 방안을 검토해 봐야 한다'고 말했었는데..안돼요. 절대로. 육아는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부부 '공통의 몫'이 될 수 있게끔 해줘야 해요.

'여성 칼퇴근법' 이런 것도 결국은 회사가 여성을 거부하는 사태로 귀결될 거예요. 여성과 남성..평등하게 해줘야 해요.

Q. 지지하는 대선후보는 누구인가요?

A. 지금도 고민 중이에요. 최종 공약까지 다 봐야 알겠지만.. 육아 문제만 가지고 후보를 지지할 수는 없어서. 노동문제나 이런 데 있어서 누가 가장 나을지 생각하고 있어요. '될 사람을 뽑을지' 아니면 '돼야할 사람을 뽑아야 할지'..이것도 고민이고요.(웃음)

3. 황하나(첫째 아기, 35주, 워킹맘)

- 프리랜서 번역가

- 맞벌이

- 원래 호텔업계 종사했으나 결혼하면서 전직

- 바디페인팅: 푸른 바다 위를 유영하는 돌고래

(아기 태명이 '돌핀이'다. 몰디브로 휴가를 갔다가 새벽에 잠이 깨 산책을 하던 중 우연히 푸른 바다를 유영하는 돌고래 떼를 보았기 때문. 돌고래 떼가 아기라는 행운을 가져다준 것 같다고.)

Q. 결혼하면서 업무 자체를 바꾸셨는데,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A. 전공이 호텔 쪽이었고, 호텔 분야 말고는 일해본 곳이 없었어요.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주임이나 대리나 과장이나.. 임신한 뒤 애 낳고도 회사를 계속 다니는 분들이 없더라고요. 지금 제가 말씀드리는 건 '여자들' 이야기예요. 뭐, 남성들은 상관없이 계속 회사 다니는 거고...여자가 많은 회사였는데, 출산휴가까지는 다녀오더라도 조금 있다가 그만두더라고요. 상황이 안 되고, 너무 힘들어서. 교대근무제였거든요. 야간 근무는 밤 10시부터 다음날 7시까지 일해야 하고. 주말에도 나와서 일을 하는 경우가 있고. 친정엄마가 전담해서 애를 봐주지 않는 이상 너무 힘들어 하더라고요.

저도 결혼을 앞두고 있다 보니까 '아, 계속 다니는 게 쉽지가 않겠구나' 싶었어요. 일은 재밌었는데, 좀 멀리 봐야 겠다 싶었어요. 다행히 그때쯤 기회가 됐고, 결과적으로는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Q. 프리랜서이면 좀 더 스케줄이 자유로울 것 같아요.

A. 조금 융통성이 있긴 하지만 크게 다르지는 않아요. 재택근무를 할 뿐 그래도 회사에 소속된 거라서 주 40시간을 일해야 하거든요. 내가 원하는 시간을 선택할 수 있지만, 그래도 전업으로 아기를 키울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에요.

Q. 육아는 어떻게 계획하고 있나요?

A. 저희 엄마도 워킹맘이셨어요. 할머니가 저랑 제 동생을 키워주셨고.. 그래서인지 엄마가 먼저 말씀하시더라고요. '도와주겠다'고. 제가 일을 그만두는 걸 엄마가 원하지 않으세요. 왜냐하면 엄마가 여태껏 살면서 가장 후회한 게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었다고 말씀하시거든요. 계속 일을 하시다가 저희가 초등학교 들어가는 시점에 일을 그만두셨는데 인생에서 가장 후회스러운 일이셨다고. 그래서 '네가 일은 그만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도와주마'라고..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워킹맘'이 별로 없었어요. 근데 저는 엄마가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고,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컸거든요. 그래서 임신, 출산한다고 해서 일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고요. 물론, 그 시절에 엄마가 자기 일을 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외할머니의 희생' 때문에 가능한 거였지만..

'애는 엄마가 봐야 한다'고들 말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잘 보는 사람이 보면 되는 거죠. 제가 엄마라고 해서 잘 본다는 보장도 없고.. (웃음)

Q. 이번 대선을 통해 어떤 게 달라졌으면 하나요?

A. 남성 육아휴직을 강제화시켰으면 좋겠어요. 같이 키울 수 있도록. 저희 남편네 회사도 형식적으로 육아휴직이 있기는 해요. 그런데 '쓸 수 있느냐'고 물어보니까 '해고를 의미한다'라고..부부가 아기를 함께 키우면서도 회사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현실이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진짜.. 친정이나 시댁에서 도와주지 않는 이상 '맞벌이'라는 게 사실 불가능하잖아요. 육아휴직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든지, 쓴다고 해도 승진에 불이익받는다든지.. 이런 일 좀 없었으면 좋겠어요. 육아휴직 급여도 정말 너무 적고..

Q. 지지하는 대선후보는 누구인가요?

A. 문재인 후보의 경우, 성 평등 공약이 좀 있는 것 같더라고요. '남성 육아휴직 의무화'도 있었고.. 공약대로 이행만 해준다면 많이 좋아지지 않을까요?

4. 차예지(첫째 아기, 32주, 워킹맘)

- 의사

- 6월에 미국 이민

- 현재는 맞벌이인데, 이민 후에는 남편이 주 양육을 맡을 예정

- 바디페인팅: 코끼리 가족

(곧 한국을 떠나는데 고국에서 '지금 우리 가족의 모습'을 위트있게 담고 싶었다고 함.)

Q. 일하랴, 이민 준비하랴, 임신한 상태에서 많이 바빴을 것 같아요.

A. 병원에서 밤 당직을 했었어요. 안될 것은 없지만, (임신부에게)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죠. 저녁 6시부터 다음 날 아침 9시까지 1주일간 당직을 섰으니까. 그러고 나서 1주일은 쉬는 스케줄이었어요. 임신 초기부터 지난달까지. 그리고 쉬는 스케줄일 때는 미국으로 면접 보러 다니고. 돌아오면 다시 당직 서고. 되게 힘들었고, 다시 하라면 못하겠지만, 스스로에게 '정말 수고했다'라고 칭찬해주고 싶어요.

Q. 이민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저에게는 몇 년간 준비해온 목표였어요. 이민 가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고, 개인적인 사정이라 다 말씀드리지 못하지만, '사교육' 문제가 크게 영향을 미쳤어요. 아이를 많이 뛰놀게 하고 싶었으니까.. 오랫동안 준비해온 일이 이뤄져서 기쁘고, 아기도 곧 태어나서..저로서는 겹경사라고 해야 할까요.(웃음)

Q. 임신 기간에 '사회적 배려'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셨는지 궁금해요.

A. 물론이죠. 사회적인 제도도 그렇고, 일상에서 마주치는 타인의 배려 등등 많은 측면에서요. 지하철을 타거나 버스를 탔을 때, 별로 배려를 느껴본 적이 없어요. 사회에서는 '출산율이 낮다'며 그게 마치 여성의 책임인 것처럼 말하지만...사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여성이 살기 좋은 나라를 먼저 만들어야 하지 않을지.. 아쉬움이 많아요.

Q. 아기를 낳고 키우는 문제에 있어서 여자가 남자보다 더 많은 책임을 지고 있다는 걸 체감하나요?

A. 네. 주위 친구들 등등 보면.. 결국 남편은 육아를 '도와준다'고 생각하더라고요. 도와주는 게 아닌데..

저희 남편도 전통적인 성 역할 개념이 강한 경상도에서 자랐거든요. 그래도 후천적인 공부와 본인의 노력으로 '성 평등'을 추구하게 되었고.. 매일의 삶 속에서 실현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이민 가면, 레지던트 생활을 바로 시작해야 하는 저와 우리 가족을 위해서 아기가 어릴 때는 주 양육자를 맡기로 하기도 하고.

저희 부부는 누군가의 엄마/ 아빠 이기 이전에 각자 '자기 정체성'을 잃지 않는 게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삶의 터전에서 우리가 각자, 그리고 엄마/아빠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어요.(웃음)

Q. 이번 대선을 통해 어떤 게 달라졌으면 하나요?

A. 무엇보다 '근로시간' 문제가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동일하게 법정 근로시간만 일하고, 시간 외 근무는 반드시 수당을 받을 수 있도록... 결국 아빠가 집에 들어가야 '독박육아'가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대선은 꼭 치르고 갈 거예요. 벼르고 있었어요. (웃음)

Q. 지지하는 후보는 있나요?

A. 심상정 후보를 뽑을 거예요. 여성, 노동자, 인권, 약자 이슈에 있어서 가장 옳은 이야기를 하는 후보라고 생각하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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