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소수 안의 소수

불편함을 공유하고 살아가는 특수학교 내에서도 한 걸음 더 불편한 소수 중의 소수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마음을 아리게 만들었다. 통합교육이니 사회통합이니 이야기가 늘어가면서 특수학교에는 둘 이상의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시각과 지체 시각과 청각 시각과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들도 그 수가 이제는 적지 않다. 그러나 아직 맹학교에서 휠체어 탄 아이를 위한 독립보행 교육을 위한 준비는 아무것도 되어 있지 않다.

ⓒPhil Ashley via Getty Images

장애인들의 편의증진을 위한 보조기기의 기술은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다.

부족한 것이 없다거나 완전한 만족을 느끼느냐 정도의 물음을 던진다면 아직 풀리지 않은 갈증들을 쏟아내긴 하겠지만 천천히라도 나아지고 있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가벼운 한 권짜리 책으로 해결되는 인쇄물을 수백 페이지 몇 권으로나마 겨우 만들어내었던 점자책의 불편함은 작은 점자정보단말기가 파일형태로 바뀌면서 다소나마 불편함이 덜어졌고 시끄러운 소리를 내거나 바늘이 돌아가버리기 십상이었던 시계의 불편함도 다양한 점자시계의 출현으로 어느 정도는 나아졌다고 생각된다.

스마트폰의 등장은 글자를 읽어주고 불빛을 파악하고 물건을 설명해 주는 단순한 문제에서부터 정보접근이라는 매우 중요한 지점의 해결까지도 가능하게 해 주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높은 가격과 독점적인 판매구조 등이 여전한 문제로 남아있긴 하지만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은 시각장애인들에게 기대감을 심어주기에도 충분하다.

전동휠체어의 발전이나 의수나 의족의 첨단소재 도입 그리고 청각장애인에게 인공와우 개발 소식이 작지 않은 뉴스로 회자 되는 것을 보면 장애영역과는 관계 없이 신체적 약자의 삶은 그래도 조금씩은 나아지고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양지가 생기면 그림자가 생기는 것이 세상 이치인 것인지 소수의 삶이 나아지면 나아질수록 더 소수가 되어가는 사람들도 보인다.

두 가지 이상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그들인데 보조기기의 개발이나 서비스의 질이 향상되어 갈수록 장애인 사회 내에서도 그들은 점점 더 작은 소수가 되어 가는 듯하다.

시각장애인용 보조기기들은 촉각이나 소리를 이용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시각장애인 중에 귀가 들리지 않는다거나 촉각인지에 불편함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그 기구들은 거의 무용지물이나 다름이 없다.

실제로 우리 학교나 내 주변에는 시각과 청각에 동시에 장애를 가진 친구들이 종종 보인다.

나름대로 시각장애용 혹은 청각장애용 보조기기들을 응용해서 사용하기는 하지만 말 그대로 나름대로일 뿐이다.

제자 중에 한 아이는 기도협착 등의 이유로 말을 할 수가 없는 아이가 있다.

수업시간이나 여가시간에도 그 아이는 일방적으로 언어의 수용만을 강제 받고 있다.

점자정보단말기나 음성컴퓨터를 사용해서 일정 부분 느린 속도로 대화를 시도하긴 하지만 대화를 원하는 본인 욕구를 해결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마침 친구와의 소통을 원하는 그 녀석의 글을 보신 교감선생님의 지시로 여러 방면의 관련 제품을 수소문해 봤지만 국내는 물론 해외에도 그 아이에게 맞춤형 도움을 제공할 수 있는 기구는 없었다.

구강구조도 혀도 정상인 것을 감안하면 발전된 스캔기술과 음성엔진을 조합하면 실시간 발화언어로 전달될 수 있는 보조기기도 가능함직한데 그 비슷한 무엇도 찾아낼 수 없었다.

불편함을 공유하고 살아가는 특수학교 내에서도 한 걸음 더 불편한 소수 중의 소수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마음을 아리게 만들었다.

통합교육이니 사회통합이니 이야기가 늘어가면서 특수학교에는 둘 이상의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시각과 지체 시각과 청각 시각과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들도 그 수가 이제는 적지 않다.

그러나 아직 맹학교에서 휠체어 탄 아이를 위한 독립보행 교육을 위한 준비는 아무것도 되어 있지 않다.

시각과 청각을 모두 잃은 아이들과의 소통도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들에 맞춰진 교육과정도 학교 단위 혹은 담당교사의 역량에 기댈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는 특수교육에서마저 온전히 품어내지 못하고 많은 부분 소외될 수밖에 없다.

그나마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는 순간 그 아이들이 기댈 수 있는 것은 더욱 적어지고 좁아질 수밖에 없다.

장애인을 위한 보조기기의 기술이나 디자인은 그들의 머리수나 제품의 이윤이 먼저 고려되어서는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수 없다.

오로지 소수의 권리와 편의증진을 위한 건강한 복지마인드만이 소수를 다수 안으로 품을 수 있는 힘을 만들 수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소수 중에 소수인 그들을 위해 우리는 더 많은 노력 더 큰 에너지를 쏟아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현재의 장애인 보조기기 기술은 아이러니하게도 숫자 많은 장애영역을 대상으로 가치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달려온 것 같다.

장애를 겪는다는 것 그것은 그 신체적 결여보다는 소수가 되고 관심의 밖으로 멀어지고 공감이 적어진다는 것에서 근본적 불편함이 느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소수 중의 소수 그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단순한 소수가 느끼는 그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것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두 가지 이상의 장애! 그들을 위한 제품과 기술이 나오지 못한 것은 그것이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어서가 아니라 그 곳까지 관심의 시선이 미치지 않아서였기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소수 안의 소수 우리 모두 이제 모든 힘을 모아 그 동안 보여주지 못한 관심과 노력을 그들에게 쏟아내야만 한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안승준 #소수 #장애인 #사회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