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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노예'가 된 월가 펀드 매니저의 자살

ⓒ한겨레

지난 3월27일 미국 뉴욕시 맨해튼의 ‘소피텔 뉴욕 호텔’의 24층 객실에서 한 50대 남자가 뛰어내려 삶을 마감했다. 자살을 택한 이는 헤지펀드 매니저인 찰스 머피(56). 월가의 유명한 헤지펀드 매니저이자 백만장자인 그는 왜 자살을 선택했을까?

그의 자살은 부가 인생의 행복과는 별 상관이 없고, 오히려 돈의 노예가 된 월가의 삶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사례로 월가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9일 장문의 기사를 통해 전했다.

머피는 1990년대 이래 뉴욕과 런던의 금융계의 대사건 속에서 부침하며 생존한 유능한 헤지펀드 매니저이자 수천만달러의 순자산을 쌓은 백만장자이다.

하지만, 그가 쌓아올린 성공과 부는 오히려 그에게 그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공포만을 자아냈고, 최근 들어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측근들은 전했다. 그는 성공과 부를 이루면서 용기와 지혜를 얻기보다는, 그 과정에서 봤던 실패했을 경우의 참담한 나락에 대한 공포만을 키운 것이다.

뉴욕의 중산층 가정 출신인 머피는 학창 시절부터 발군의 능력을 보여서, 16살 때 명문 컬럼비아대에 진학하고, 하버드와 매사추세츠공과대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철학과 문학을 좋아하고 대학의 조정 선수이기도 했던 머피는 대학원 시절에 투자금융에 관심을 보여, 1985년 골드먼삭스에 입사하며 월가 인생을 시작했다. 그는 사회 초년병 시절의 대부분을 런던의 금융가 시티에서 지냈다. 보험회사와 관련된 거래를 성사시키고, 탄탄한 관점의 금융분석으로 호평을 받았다.

런던 시절에 그는 두 차례나 결혼과 이혼을 반복한 끝에 현재의 부인인 아나벨라 드미트리우와 2004년에 세번째 결혼을 했다. 2년 뒤 그는 아내의 30살 생일을 맞아 호화스런 생일 파티를 차려줘, 런던 사교계의 잡지에 보도되기도 했다.

1990년대 말부터 닷컴 바람이 불자, 그는 큰 돈벌이 기회를 보고서는 모건스탠리를 그만뒀다. 닷컴 기업들의 상장을 돕는 신생 금융회사 ’앤트팩토리 홀딩스’의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자리를 옮겼다. 머피는 월급은 동전 한잎만 받고 대신에 자사주 배당을 받았다. 회사가 상장되거나 매각될 경우, 대박을 노린 것이다. 그러나, 닷컴 버블이 꺼지면서 그의 꿈은 좌절됐다.

2007년 그는 또 다른 기회를 잡았다. 헤지펀드에 투자하는 부자들의 돈 150억달러를 관리하는 미국 코네티컷의 ’페어필드 그린위치 그룹’에 전략 담당 임원으로 취직했다. 이 회사가 상장되기만 하면, 그에게는 거금이 어른거렸다.

그는 런던에서 뉴욕으로 이사왔다. 3300만달러나 주고는 맨해튼의 고급 타운하우스를 샀다. 하지만, 이번에도 페어필드 그린위치의 상장은 이뤄지지 않았다. 대신에, 이 회사는 2000년대 월가의 최대 금융스캔들의 하나인 버나드 매도프의 다단계 금융사기에 빠졌다.

페어필드 그린위치는 수십억달러의 자금으로 매도프의 펀드에 투자했다. 2008년 매도프의 금융사기가 드러나며, 머피도 직장을 나와야 했다.

자금난에 시달린 그는 자신의 집을 팔고, 다시 런던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에게 다시 기회가 왔다. 우연히 파티에서 만난 펀드회사 ’폴슨 앤 컴퍼니’의 소유주인 억만장자 존 폴슨을 만났다. 폴슨은 금융위기가 절정이던 당시에 그 금융위기의 원인이던 모기지 증권과 은행들의 가치가 하락할 것을 예상하고는 200억달러를 투자한 상태였다. 그는 떼돈을 벌었고, 이를 가지고 보험회사에 투자하려 했다. 폴슨은 머피의 재능을 인정하고는, 그를 고용했다.

머피는 부실로 인해 자본재확충을 하려던 보험회사 콘시코에 8천만달러에 투자해서는 1억달러를 남겼다. 더 큰 대박을 찾던 머피에게 걸려든 먹이감은 금융위기 당시 1850억달러라는 최대 구제금융을 받았던 보험회사 에이아이지(AIG)였다. 에이아이지는 2012년에 이 구제금융을 갚고는 실적 호전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다.

2015년 3월 머피와 폴슨은 에이아이지의 최고경영자 피터 핸콕을 만나서 회사 분할을 제안했다. 에이아이지가 거부하자, 머피는 월가의 헤지펀드들을 포섭했고 억만장자 투자가 칼 아이칸을 끌어들였다. 압력에 못견딘 에이아이지 쪽은 폴슨과 아이칸에게 이사직을 제공하며, 타협을 모색했다. 폴슨은 2016년 4분기에 자신이 소유한 에이아이지 주식의 절반을 팔아서, 두자리수 이익율을 올렸다. 머피는 폴슨에게 수백만달러를 벌어줬다.

머피의 연봉은 계속 올랐으나, 회사의 실적은 좋지 않았다. 이때부터 머피는 돈 걱정을 했다고 측근들은 전한다. 머피는 1200만달러의 대출을 받아서 산 맨해튼 저택을 2016년초 4950만달러에 매물로 내놓았으나, 그해 여름 가격은 4250만달러로 내렸다. 투자자들에 따르면, 폴슨의 회사는 2017년까지 손해를 봤다. 올해 2월 에이아이지의 주가는 다시 손익분기점을 하회했다. 폴슨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매입가보다는 높았다.

머피는 업계의 헤지펀드 매니저들에게 주가가 오른 상황에서 매력적인 투자 대상을 찾기 힘들다는 고충을 토로하곤 했다. 지난해 여름부터 머피는 피곤함과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서, 아내는 그에게 정신과 상담을 받게 했다. 우울증 진단이 내려지고, 약 처방과 면밀한 관찰을 받도록 했다.

머피는 방이 16개가 되는 자신의 저택에서 걸어서 출퇴근하며, 아내와의 멋진 저녁 식사를 즐기는 듯 외형적으로는 성공한 월가의 헤지펀드 매니저 생활을 계속했다. 하지만, 그는 보스인 폴슨에게도 돈 걱정을 토로했다. 머피가 걱정스러워 출퇴근 길에 동행해준 폴슨은 그가 성취한 것을 상기시키며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달래곤 했다.

지난 2월21일 머피는 아내를 자신의 저택 공동 소유자로 등기해줬다. 그 저택의 가격은 3650만달러, 여전히 매입가보다는 높았다.

최근 몇주동안 머피는 친구들과 식사를 하면서 새로운 투자 기회를 얘기하며 생기를 되찾은 것처럼 보였다. 가족들은 그의 생일을 맞아 콜로라도로 스키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스키 여행에서 돌아온 뒤인 3월26일 머피의 아내는 친구를 만나서 남편이 ’대단한 한주’를 보냈고, 휴가는 훌륭했다고 기뻐했다.

다음날 머피는 아내와 아들들과 아침을 먹고는 직장으로 갔다. 아내는 머피에게 “당신 좋아보인다”고 말했고, 머피는 “아주 좋아”라도 답했다. 그는 오전에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갑자기 근처의 소피텔 호텔로 갔다. 호텔 방에 들어간 그는 곧 창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내렸다.

“머피는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 일군 생활을 유지하는데 자신을 모두 소모했다. 그의 자질은 부를 쌓아올리는데 기여했으나, 그 재산을 잃을까봐 노심초사하는 공포를 막는데 아무런 역할을 못했다. 월스트리트는 찰스 머피를 성공시키고 부자가 되게 했으나, 행복은 그를 피해갔다.”

머피의 자살을 남의 일이 아닌 자신의 일로 바라보는 월가 사람들의 생각을 전한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사 중 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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