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충남도지사가 어제(9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쌓인 편지들, 답장을 쓰다 아무래도 모든 분께 다 답글하기는 어려워 손편지로 여기에 올려봅니다'라며 손으로 쓴 세 장의 편지를 사진으로 찍어 올렸다.
그런데, 어쩐지 이 편지에 달린 댓글을 살펴보니 현 정국에서 움직이고 있는 표심의 실체가 드러나는 것만 같다.
일단 안 지사가 올린 편지글 중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현실 정치에 부딪힌 그의 좌절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혁명을 꿈꾸던 젊은 시절 그 시절, 이 세상은 흑백 사진이었다."
"옳고 그름에 따라 정의가 불의를 물리치는 싸움 - 그것이 역사였고 정의였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진전과 함께 현실을 좀 더 교묘해지고 복잡해졌다."
"현실 법과 제도의 알리바이가 모든 이들에게 부여되었다."
"결국, 제도를 변화시켜내는 일이 민주주의 정치가 감당해야 하는 일이었다."
"정당정치와 선거제도는 우리가 소망했던 정의를 실현시켜 주지 못한 채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책임 전가를 했고, 현실 변화를 바라는 모든 이들을 무기력감에 빠뜨렸다." -안희정 페이스북(4월 9일)
그 뒤로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철학이 이어지고 있으나 대부분은 그가 경선 내내 강조한 이야기와 거의 동일하다.
이 포스팅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안 지사가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보낸 이 손편지에 달린 댓글이다. 댓글 중에는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안희정의 지지자였으나 민주당을 지지하지는 않는 사람들이 섞여있다.
아래는 댓글 몇개를 옮겨 적은 것이다.
"안 지사님이 탈락했다고 국민의당 안철수를 지지한다고 하다니. 정말 혼란스럽습니다. 안 지사님만 지지하고 민주당은 지지 안 한다니 도대체 이런 사고방식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인지요. 민주당원의 한 사람으로서 많이 안타깝습니다."-김XX
"이번 대선에서는 문재인 후보를 응원하는 바이지만 다음 대선 때 꼭 안 지사님을 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XX
"저는 안 지사님 지지자는 맞는데요, 민주당은 좀 아닌 거 같아요. 이름은 민주당인데 전혀 민주적이지 않은 당인 것 같습니다."-DaXXXXX
"지금 탈당해서 유승민과 김종인 정운찬 홍석현 심상정과 손잡고 대선 출마하세요."-이XX
"경선과정 순탄치만은 않았지만 결국 마무리는 이렇게 아름답게 맺어주시네요. 이런 게 리더십이고 그 사람의 매력이고 능력 아니겠습니까. 문 후보님에게 축하를 보내는 그 마음에 감동했고 너무 감사했습니다." -창XX
너무나 아쉽습니다. 저는 안 지사님을 진정으로 지지하는 분들이 그래도 많으리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보니 모든 게 거품에 불과하더군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형님 동생하며 사이 좋은 시골문화가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충청도민분들에게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HongXX
경선이 끝나고 안희정 지사의 지지자 중 문재인 후보로 흡수된 비율이 낮았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그 실체가 이 댓글에서 아주 살짝 보인다.
아래는 그가 올린 편지 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