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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노동부'가 필요하다

지난 2015년 고용노동부 장관의 '청년 간담회'에 참석한 어느 취업준비생은 "대기업만 고집하지 말고 눈높이를 낮추라는 어른들의 얘기는 '폭력'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왜 그럴까? 정상근이 쓴 〈나는 이 세상에 없는 청춘이다〉(2011)라는 책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상식' 때문이다. "야 웃기지 마, 일단 좋은 기업을 들어가야 해. 솔직히 한 달 100만원 주는 직장이랑, 250만원 주는 직장이랑 얼마나 차이가 나는 줄 알아? 시작부터 좋은 데 가지 않으면 넌 평생 그 바닥에서 썩는다. 거기서 빠져나오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몰라서 그래, 네가."

ⓒ뉴스1

대형 사고나 사건이 터지면 정부 내의 칸막이 문제도 드러난다. 반면 거의 드러나지 않지만 국민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칸막이도 있다. 일반 대중은 물론 언론도 거의 거론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투명 칸막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대표적인 투명 칸막이는 '교육'과 '노동'을 분리시킨 칸막이다.

"관련 부처들이 각자의 칸막이를 친 채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몰두했으며, 컨트롤타워 기능은 없었다." 대형 사고나 사건이 터질 때마다 언론이 정부의 부실한 대응을 비판하면서 하는 말이다. '모범답안'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이런 지적은 늘 반복되지만, 달라지는 건 거의 없다. '칸막이'가 문제라는 건 포털에서 '칸막이'를 검색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조직의 칸막이를 없애기 위한 시도를 알리는 기사들이 무더기로 뜨지만, 성공 사례를 알리는 기사는 매우 드물다.

칸막이 현상은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에선 칸막이 현상을 '사일로'(silo)라고 하는데, 제법 명성을 얻은 경영자치고 사일로를 비판하지 않은 이가 거의 없다. 제너럴일렉트릭 회장이었던 잭 웰치는 "배타성은 비즈니스에서 독약"이라며 "나는 사일로를 증오한다. 자신의 회사가 번창하고 성장하기를 원하는 조직원이라면 당연히 사일로를 증오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곤 했다.

칸막이로 인한 문제는 기업에선 비교적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대형 사고나 사건이 터지면 정부 내의 칸막이 문제도 드러난다. 반면 거의 드러나지 않지만 국민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칸막이도 있다. 일반 대중은 물론 언론도 거의 거론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투명 칸막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대표적인 투명 칸막이는 '교육'과 '노동'을 분리시킨 칸막이다.

한국의 교육·입시 정책에 관한 책을 쓰기 위해 그간 나온 수많은 책, 논문, 기사들을 읽으면서 새삼 놀란 건 교육문제가 바깥 세계와 칸막이를 친 채 오직 교육의 영역에서만 다뤄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바깥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건 교육문제는 교육제도나 입시 방법을 개혁하면 해결될 수 있다는 착각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현재 대통령 후보들의 교육 공약들이 한결같이 그런 착각의 향연에 동참하고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교육·입시 정책에 대해 말하고 싶은 사람들은 그간 많이 출간된, 청년들의 고통을 기록한 책들을 우선적인 교재로 삼는 게 좋을 것 같다. 지난 2015년 고용노동부 장관의 '청년 간담회'에 참석한 어느 취업준비생은 "대기업만 고집하지 말고 눈높이를 낮추라는 어른들의 얘기는 '폭력'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왜 그럴까? 정상근이 쓴 〈나는 이 세상에 없는 청춘이다〉(2011)라는 책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상식' 때문이다.

"야 웃기지 마, 일단 좋은 기업을 들어가야 해. 솔직히 한 달 100만원 주는 직장이랑, 250만원 주는 직장이랑 얼마나 차이가 나는 줄 알아? 시작부터 좋은 데 가지 않으면 넌 평생 그 바닥에서 썩는다. 거기서 빠져나오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몰라서 그래, 네가."

이런 '상식'을 학부모들은 귀신같이 꿰뚫고 있다. 그래서 자녀들을 좋은 직장에 들어갈 확률이 높은 좋은 대학, 좋은 학과에 보내려고 그 무시무시한 '사교육 전쟁'에 거침없이 뛰어드는 것이다. 최근 '수저론'이 나온 배경의 근원도 바로 여기에 있다.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사교육비 격차가 9배까지 벌어지는 '교육 양극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정상적인 교육은 불가능하다. 교육은 '세습 자본주의'를 정당화시켜주는 도구일 뿐이다.

언론은 대선 주자들이 사교육의 고통을 줄일 수 있는 공약으로 승부를 보라는 주장을 해대지만, 임금격차 문제는 거의 거론하지 않는다. 임금격차 해소는 인위적으로 하기 어려운 일이며 시장 기능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생각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면, 사교육 문제도 다루지 않는 게 옳다. '교육'을 '노동'과 분리시켜 기존 임금격차를 그대로 두고서 그 어떤 교육 해법이 있을 것처럼 착각하거나 자기기만을 범하는 게 오히려 국민들을 더 고통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임금격차 축소는 복지 확대보다 더 어려운 일일 수 있지만, 우리는 그 이전에 임금격차 축소를 정책 의제로 다루는 부서가 있는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없다! 굳이 관련 부서를 찾자면 고용노동부일 텐데, 그 문제까지 건드리기엔 힘이 달린다. 차라리 교육부와 노동부를 합해 교육노동부로 개편함으로써 "노동문제 해결 없이 교육문제 해결 없다"는 대원칙이나마 국민 모두가 공유토록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교육'과 '노동'을 분리시킨 칸막이 해체 공사가 필요하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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