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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회사 앱 설치 거부한 노동자 징계는 부당"

  • 강병진
  • 입력 2017.04.09 18:27
  • 수정 2017.04.09 18:28

개인정보가 침해될 우려가 있다며 자신의 스마트폰에 회사 업무용 애플리케이션(앱) 깔기를 거부한 노동자에게 회사가 징계를 한 것은 부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존중해 줄 것을 노동자가 회사에 요구할 수 있다는 의미여서 파장이 예상된다.

수원지법 성남지원 민사합의2부(재판장 김상호)는 개인정보 침해 우려가 있는 회사 업무용 앱 설치를 거부했다가 정직 징계와 전보 처분을 받은 노동자 이아무개씨가 케이티(KT)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정직·전보 처분은 무효이며 부당 전보에 따른 임금 차액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9일 밝혔다.

케이티는 2014년 무선 통신망 품질을 측정하는 안드로이드 기반 앱을 만든 뒤, 업무지원단 직원들에게 개인 스마트폰에 이 앱을 깔고 일하라고 지시했다. 이 앱은 개인 스마트폰의 △카메라 △현재위치 △연락처 △개인정보(달력 일정) △저장소 △문자메시지 △계정 정보 등 12개 항목에 접근할 수 있었다. 업무지원단에서 일했던 이씨는 “개인정보 침해가 우려된다”며 앱 설치를 거부하고, 다른 스마트폰을 지급하거나, 다른 업무로 바꿔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회사는 이씨를 5개월 동안 사무실에 대기시키며 업무를 강요했고 이씨가 끝내 응하지 않자 “성실 의무 위반·조직내 질서존중의 위반”을 사유로 정직 1개월 징계 처분했다. 이씨는 2015년 7월 다른 팀으로 보내지자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과학기술이 진보하면서 기업의 노동감시활동이 전자 장비와 결합해 확대됨에 따라 노동자의 인격권·사생활 침해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며 “서비스 제공자(사용자)가 단말기 정보를 얼마나 수집하고 어디까지 활용할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노동자는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존중해 줄 것을 요구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케이티의 업무지시가 노동자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만큼 중요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그 근거로는 △회사 앱이 업무와 관계 없는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고 △다른 단말기를 지급했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으며 △업무를 맡을 다른 직원을 찾아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점을 꼽았다. 재판부는 “회사가 이씨의 별도 단말기 지급 요구나 다른 업무를 맡겨달라고 했던 요구를 거절한 것이 정당하지 않고 오히려 이씨를 징계하기 위해 이 업무를 수행할 것을 강요했다고 볼 여지도 있다”고 지적했다.

케이티의 사례처럼, 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한 노동자 감시 논란은 꾸준히 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월 “노동자 정보인권을 보호할 제도를 개선하라”며 고용노동부에 권고한 결정문을 보면, 사업장 전자 감시와 관련해 인권위에 접수된 진정·민원은 2011년 33건에서 2015년 101건으로 급증하는 추세다. 인권위는 결정문에서 “전자감시 탓에 노동자들이 인격적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끼고 프라이버시를 침해당하며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린다”고 지적했다. 이에 “정부의 ‘개인정보보호 가이드라인(인사·노무편)’에 사업장이 개인정보 수집·이용 때 준수할 요건과 노동자의 개인정보 권리, 권리 침해 때 구제절차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라”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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