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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충전할 수 있었던 시간

한 장씩 적으며 내 인생의 좋았던 순간, 힘들었던 순간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최근의 3-4년간, 진로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과 절망들이 있었다는 걸 여실히 느꼈다. 이마저도 5번 문항까지 하니까 힘들었다. 끝까지 하려면 3개가 더 남았지만... 과감히 여기서 포기하기로 했다. 여기 와서까지 뭘 너무 열심히 하려 애쓰는 것 같아서. 여기에서만큼은 과감히 나를 놓기로(?) 했다.

  • 행복공장
  • 입력 2017.04.10 13:38
  • 수정 2017.04.19 09:41

나와 세상을 바꾸는 독방 24시간

행복공장은 '성찰을 통해 개개인이 행복해지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위기와 갈등을 극복하자는 취지'로 '나와 세상을 바꾸는 독방 24시간' 프로젝트를 기획하였습니다. 3월부터 5월까지 매주말 스무 명 남짓의 사람들이 1.5평 독방에서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24시간의 고요를 통해 내가 새로워지고 우리 사는 세상이 행복해지면 좋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행복공장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감옥에서 온 편지 4] 나를 충전할 수 있었던 시간

너무 쉬고 싶었다.

쌓여있는 온갖 일들과 근심 걱정을 다 떠나보내고 싶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오락가락하고 헐떡이는 내 마음을 정리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독방에 가두었다. 세상으로부터.

갇히고 나서야 비로소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얼마나 지쳐있었는지.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내면의 아우성을.

사실은 해야 할 일들이 쌓여있었기에,

여기 와서 생각도 정리하며 남은 일을 해보겠노라 하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식사를 하고 문이 철컥, 밖에서 잠기고 나자

뭘 해볼 수도 없게 노곤함이 온 몸으로 쏟아져내렸다.

차라리 안심이 되었던 것도 같다. 이젠 정말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구나.

내 마음대로 해도 되는구나.

그렇게 거의 세 시간쯤 잤을까,

저녁 식사로 정성스레 담긴 고구마와 쉐이크가 구멍으로 들어왔다.

비록 사식(?)이지만 조그만 다완에 차를 내려서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함께 먹으니

내가 독방에 있는지, 휴가를 온 건지 모를 지경이었다.

사실 나는 잔디밭과 멀리 산이 보이는 방에 있기를 원했다.

하지만 나는 그 반대편, 작은 야산과 소나무 두 그루가 보이는 방에 묵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게 불만이었지만,

가만히 앉아서 그냥 창밖을 멍하니 보다 보니

갑자기 내 방 앞에 나란히 선 소나무가 예사롭지 않게 보였다.

왜냐하면 그 나무들은, 고작해야 10cm정도로 좁게 심어져 있었는데

그 좁은 땅에서도 서로 자리를 내어주고 팔을 뻗으며

나란히 잘 자라있었기 때문이다.

나무들 사이에도 생존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서로 햇빛을 더 많이 보겠다고

활엽수가 큰 키와 넓은 잎으로 햇빛을 가리면,

침엽수가 자라나 그 새로 잎을 뻗고..

그 사이로 담쟁이는 둘둘 말고 올라가고.

그러다 보면 어느 한쪽도 제대로 자랄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나무 두 그루는 달랐다.

서로의 자리를 아낌없이 내어주며 팔을 교차시키고 또 위로 자라날수록

조금씩 서서히 간격을 벌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천천히 시간을 두고 보니, 나를 둘러싼 것들이

비로소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서, 앞에 있는 휴휴 책자를 펼쳤다.

한 장씩 적으며 내 인생의 좋았던 순간, 힘들었던 순간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최근의 3-4년간, 진로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과 절망들이 있었다는 걸

여실히 느꼈다. 사실 요즘도 여러 가지 일들을 한꺼번에 하면서

'내가 잘못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계속 이대로이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힘들었다.

하지만 쓰다 보니 '힘들 때도 많았는데 잘 견뎌왔구나.

그리고 조금씩 내가 바라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구나'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마저도 5번 문항까지 하니까 힘들었다.

끝까지 하려면 3개가 더 남았지만... 과감히 여기서 포기하기로 했다.

여기 와서까지 뭘 너무 열심히 하려 애쓰는 것 같아서.

여기에서만큼은 과감히 나를 놓기로(?) 했다.

그리고 자다깨다를 반복하며 아침에 일어나 다시 차를 내리고 아침을 먹고..

창 앞의 소나무를 보며 그림도 그려보고, 시도 썼다.

평소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잘 안됐는데,

혼자 있으니 저절로 글이 써져서 신기했다. 뭔가를 바라보고 생각할 여유가 주어져서일까.

이렇게 좀 더 있어도 괜찮겠다 싶을 때쯤, 끝을 알리는 좌종이 울렸다.

철컥, 하고 다시 문이 열리는 소리.

하지만 바로 나가고 싶지가 않고 오히려 아쉬움이 몰려왔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고, 그럼 다시 달려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20시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지만 확실히 나를 충전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내면 깊숙한 곳에서 고갈되었던 에너지가 다시 차오름을 느꼈다.

하루를 쉬어버린 덕분에 해야 할 일이 밀렸지만, 미련은 없었다.

이렇게 쉬어줘야 할 때 쉴 기회를 준 나 스스로에게 감사했고,

이렇게 좋은 프로그램을 경험할 기회를 주신 행복공장 스탭 분들께도 감사하다.

글 | 금민지 ('나와 세상을 바꾸는 독방 24시간' 참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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