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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치소에 들어간 박근혜 전 대통령, 투표할 수 있을까?

나는 박근혜, 최순실, 이재용 그 누구라도 다른 수감자들에 비해 특별한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등한 대우가 하향평준화로 귀결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온수 사용 등 최순실이 받았던 특혜나 박근혜가 상대적으로 넓은 공간을 쓰는 것들이 모든 수감자들에게 확대되는 방향으로 형평성이 맞춰져야 감옥 인권이 향상된다고 생각한다. 시급히 개선되어야 할 감옥 인권은 너무나 많다. 나는 그 가운데 수형자 선거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뉴스1

문제를 하나 내보자.

Q. 다음 중 오는 5월 9일 19대 대통령 선거 때 투표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모두 골라보시오.

1번 박근혜

2번 한상균

3번 이석기

4번 한명숙

최근 '감옥 생활'에 대해 사회적인 관심이 매우 높아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된 덕분이다. 언론에서는 박근혜의 감옥 생활에 대해 아주 사소한 것까지 보도한다. 전국민이 감옥 생활에 이렇게나 관심을 갖고 알게 된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중대 범죄를 저지르고 구속된 박근혜가 전직 대통령이란 이유로 특혜를 받지는 않는지 민감하게 바라본다. 박근혜가 지내는 독방이 3.2평으로 일반수보다 넓다는 사실이 보도되자 많은 이들이 특혜를 줘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온수 사용 등 최순실이 받았던 특혜나 박근혜가 상대적으로 넓은 공간을 쓰는 것들이 모든 수감자들에게 확대되는 방향으로 형평성이 맞춰져야 감옥 인권이 향상된다.

나는 박근혜, 최순실, 이재용 그 누구라도 다른 수감자들에 비해 특별한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등한 대우가 하향평준화로 귀결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온수 사용 등 최순실이 받았던 특혜나 박근혜가 상대적으로 넓은 공간을 쓰는 것들이 모든 수감자들에게 확대되는 방향으로 형평성이 맞춰져야 감옥 인권이 향상된다고 생각한다.

시급히 개선되어야 할 감옥 인권은 너무나 많다. 나는 그 가운데 수형자 선거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물론 더 시급한 인권 침해도 많지만 수형자 선거권에 대해 이야기하는 까닭은 지금 헌법재판소에서 수형자의 선거권을 제한하는 현행 법률의 위헌성 여부를 검토 중이기도 하고, 다른 사안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쉽게 개선할 수 있는 사안인 것도 고려했다.

글 첫머리에 냈던 문제의 정답은, 1번 박근혜와 2번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다. 이석기 전 의원과 한명숙 전 총리는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를 할 수 없다. 박근혜, 한상균은 되고 이석기, 한명숙은 안 되는 이유는 딱 하나다. 현행 공직선거법상 실형 1년 이상을 선고받고 확정된 사람은 선거권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1년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가석방으로 출소하더라도 가석방 기간에는 투표권이 제한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비록 구속은 됐지만, 아직 재판을 통해 형이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이기 때문에 선거권을 박탈당하지 않고, 한상균 위원장도 아직 대법원 선고가 남아 있어 미결수이기 때문에 이번 대통령 선거는 우편으로 선거에 참여할 수 있다. 두 사람 모두 올해 재판이 마무리 되어 1년 이상 실형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된다면 내년 지방선거에서는 투표를 할 수 없다.

수형자들의 선거권을 법률로 제한하는 것이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보장받아야 하는 보통 선거의 권리를 침해한다.

박근혜 탄핵을 바란 사람으로서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가 투표를 할 수 있다는 게 몹시 못마땅하지만, 나는 박근혜의 투표권을 빼앗으라고 주장할 마음이 없다. 오히려 이석기와 한명숙의 투표권을 제한하면 안 된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죄질이 나쁘다거나, 한상균 위원장이 실형을 선고받을 만큼 잘못한 게 없다거나, 이석기 전 의원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거나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다. 수형자들의 선거권을 법률로 제한하는 것이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보장받아야 하는 보통 선거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9세기 후반부터 이어져 20세기 초중반까지 세계 각지에서는 여성, 빈민, 흑인을 비롯한 이주민들이 참정권을 위해 저항했고, 그 결과 우리가 학교에서도 배우는 '보통 선거'의 원칙이 형성되었다. 재산, 성별,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주권자라면 누구나 선거권을 가진다. 죄를 짓고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도 보통 선거의 원칙에서 언급하는 "누구나"에 포함된다. 죄에 대한 형벌로 수감되어 불가피하게 자유를 박탈당할 뿐이지, 시민으로서 권리가 박탈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수형자의 선거권 보장이 확대되어 가는 추세다. 캐나다는 이미 1992년 모든 수감자들의 선거권을 박탈하는 법을 만장일치로 위헌 결정을 내렸고, 2002년에는 징역 2년 이상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인 자들의 선거권을 제한한 개정 법률에 대해서도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스라엘에서는 1995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던 라빈 총리가 이갈 아미르라는 극우파 이스라엘인에게 암살당하는 비극적인 일이 있었다. 새로운 총리를 뽑는 선거에서 아미르가 투표할 수 없도록 시민권을 취소해야 한다는 논란이 있었지만, 이스라엘 대법원은 이갈 아미르가 받아야 하는 형벌은 징역형이고, 선거권 박탈은 모든 기본권의 근간을 흔들어 민주주의에 해가 될 것이라고 판시했다.

한국은 2010년대 들어서야 수형자들의 선거권에 대해서 조금씩 개선되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천구교인권위원회와 전쟁없는세상 등 인권단체들은 수형자들의 선거권을 박탈하는 게 헌법에 위배된다는 취지로 '수형자 선거권 헌법소원'을 한차례 진행했다. 그 결과 2014년 헌법재판소에서 선거권 제한은 필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며 집행유예자들의 선거권을 제한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결정을, 수형자들의 선거권을 제한하는 것은 헌법불합치라는 결정을 내렸다.

1년 이상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수형자들과 가석방 출소한 자들의 선거권을 박탈하는 것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취지로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위헌 결정이 난 집행유예자 선거권은 즉시 회복이 되었지만, 헌법불합치 결정이 난 수형자들의 선거권은 국회에서 실형 1년 이상을 선고받은 수형자에 한하여 선거권을 제한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이전에 비해서 진전된 것은 분명하지만 여전히 보통 선거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천주교인권위원회와 전쟁없는세상은 다시 한 번 헌법소원을 내서 1년 이상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수형자들과 가석방 출소한 자들의 선거권을 박탈하는 것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취지로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박근혜 파면을 내린 헌법재판소에서 앞으로 다뤄야 할 중요한 재판 중 하나다.

범죄자들에게 무슨 권리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박근혜, 최순실 일당이 국가 살림 해먹은 걸 보면 그런 마음이 저절로 생기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기본권에 해당하는 인권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사형제도 폐지는 전두환만 비껴가지 않으며, 고문당하지 않을 권리 또한 이재용과 한상균이 동일하게 적용받아야 한다. 인권의 보장은 박근혜, 최순실, 이재용이라는 개인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국가 공권력과 같은 거대한 권력이 남용되거나 악용되어 국민들의 삶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수형자들은 이미 자유를 박탈당하는 징역형으로서 형벌을 받는 것이지, 그 이상의 시민권을 박탈당해서는 안 된다. 그들도 당연하게 투표할 수 있어야 한다. 박근혜, 이재용, 한상균, 한명숙, 감옥에 갇힌 그 누구라도 대통령을, 국회의원과 시장과 시의원을 뽑을 수 있어야 한다.

글 | 이용석(전쟁없는세상 활동가, 병역거부자)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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