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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혐오는 없다

지난 4월3일에 전국 17개 광역시도 기독교연합회 회장단이 모여서 '동성애'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는 대선 후보는 지지하지 않을 것이며, 동성애를 옹호·조장하는 전국 광역시도 및 시군구 인권조례가 제정되지 않도록 대처하겠다고 결의했다. 돌이켜보면 차별금지법 제정은 2002년 말 제16대 대통령 선거 당시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공약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2003년에 바로 국가인권위원회 안에 '차별금지법제정추진위원회'를 꾸렸고 마침내 2007년 10월에 입법 예고를 했다.

  • 한채윤
  • 입력 2017.04.06 07:22
  • 수정 2018.04.07 14:12
ⓒ뉴스1

지난 4월3일에 전국 17개 광역시도 기독교연합회 회장단이 모여서 '동성애'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는 대선 후보는 지지하지 않을 것이며, 동성애를 옹호·조장하는 전국 광역시도 및 시군구 인권조례가 제정되지 않도록 대처하겠다고 결의했다.

실제 지난 3월 말, 대전시의회 교육위원회는 보수 개신교계 등 반대 시위에 굴복해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유보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힘입어 원주시 인권조례 개정안과 순천시 청소년 노동인권조례, 전라북도와 포항시의 인권조례 제정 반대 운동도 진행 중이다. 이와 유사한 상황이 광주, 안산, 충남, 인천 등 거의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으니, 가히 인권이란 단어가 들어간 법과 조례는 이 땅에서 원천봉쇄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차별금지법과 인권조례 등을 반대하는 이들은 법과 조례가 제정되면 동성애를 조장할 우려가 있고, 교회를 탄압하는 수단이 된다고 추정하여 주장한다. 교회에서 목사가 성경에 근거해 동성애를 죄라고 설교만 해도 경찰이 목사를 잡아가거나 벌금형을 부과한다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를 비롯해 지자체에서 차별금지법과 인권조례에는 그런 조항이 없으며, 그렇게 해석될 가능성도 없음을 계속 설명하지만 소용이 없다. 차별받는 사회적 약자들을 보듬어 안아 힘이 되어주는 것이 종교의 역할인데 작금의 상황은 종교가 먼저 자신이 피해 입는 약자라고 호소하며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형국이다.

돌이켜보면 차별금지법 제정은 2002년 말 제16대 대통령 선거 당시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공약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2003년에 바로 국가인권위원회 안에 '차별금지법제정추진위원회'를 꾸렸고 마침내 2007년 10월에 입법 예고를 했다. 당시엔 이 법이 보수 개신교의 반대에 부딪치리라곤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는데, 정부는 새로 만들어질 차별금지법으로 관련 업무를 효율적으로 일원화하기 위해 2005년에 '남녀차별금지법'을 미리 폐지할 정도였다. 그런 임무를 띤 차별금지법이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더군다나 노무현 정권의 계승자라고 하는 유력 대선 후보는 이제 와서 차별금지법이 필요 없다고 말한다. 왜 판단이 달라진 것일까.

애당초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은 명백했다. 첫째는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그리고 광범위하게 자리잡은 차별을 없애기 위한 실효성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둘째는 모든 국민은 평등하다는 자국의 헌법 정신과 차별금지에 관한 여러 유엔 인권협약에 따른 국제적 합의를 실현하기 위함이다. 즉, 국민들의 존엄성과 평등이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만약 이 법을 두고 논쟁이 벌어진다면 법안이 사회에 만연한 여러 차별을 포괄하고 있는지, 차별을 줄일 실질적인 대책들로 구성되었는지를 둘러싼 주제여야 마땅하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이런 논쟁은 보지 못했다. 차별금지법은 보수 개신교가 허락하지 못하는 법이었을 뿐이다.

2003년 다니엘 헬미니악 교수의 〈성서가 말하는 동성애〉라는 번역서를 출간할 때 편집자로 '신이 허락하고 인간이 금지한 사랑'이란 부제를 만들어 붙인 적이 있다. 2017년엔 반대로 '신이 금지하고 인간이 허락하는 혐오와 폭력'이라고 이름 붙일 만하다. 보수 개신교는 다른 나라는 만들었어도 한국에서만큼은 차별금지법을 막는 것이 신이 주신 거룩한 역사적 사명이라고 선전하지만, 수백번을 고쳐 생각해보아도 사람이 다른 사람을 향해 내뿜는 혐오와 다른 사람을 소외시키는 차별을 두고 신이 잘했다고 칭찬하실 리가 없다.

그 어떤 혐오도 거룩할 수는 없다. 차별은 신이 피조물들에게 행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서로에게 저지르는 폭력이고 범죄일 뿐이다.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종교의 이름으로 이웃의 삶을 비난하고 저주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정치인들이 어떤 이해관계로 혐오의 정치에 동조했는지,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 과연 누구에게 이익으로 돌아가는지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그리고 성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비난, 억압과 차별이 지금 우리 사회에 남기는 것이 무엇인지 직시해야 한다. 종교의 자유도 근대 국가에서는 인권의 차원에서 보장된다. 자신이 누리는 귀한 자유와 인권으로 고작 혐오와 차별을 조장한다는 것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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