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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은 생명이다 | 가축전염병 창궐을 바라보며

한국에는 1천만 마리의 돼지가 산다. 그중 99.9%는 '공장'에서 사육된다. 햇볕도 바람도 통하지 않는 밀폐된 공간에서 유전자조작 사료와 각종 약물을 투여받으며 생후 6개월 만에 110kg의 몸으로 부풀려져 도살장으로 보내진다. 어미돼지들은 몸을 돌릴 수조차 없는 감금 틀(스톨)에 갇혀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다가 새끼 낳는 '성적'이 떨어지면 도살된다. 공장식 축산에서는 동물의 생태가 전혀 존중되지 않는다. 돼지는 스스로 배설 장소를 구분하는 동물이지만, 공장식 축산에서는 먹는 곳에서 싸고 자야 한다.

올겨울 우리는 사상 최악의 가축전염병 대란을 겪었다. 고병원성 조류독감(조류인플루엔자, AI)으로 무려 3천300만 마리의 닭과 오리를 매장했고, 구제역으로 수천 마리의 소를 묻었다. 단순히 달걀을, 고기를 먹지 못하는 게 문제가 아니다. 생태계는 파괴되고, 세금은 낭비되며, 살처분에 동원된 사람들은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는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탐구하는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의 눈으로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살펴보았다.

공장식 축산이 계속되는 한 비극도 계속된다

동물원 철창에 갇힌 호랑이들의 슬픈 삶을 보여 주는 〈작별〉(2001)에서 시작해서 인간의 도로에서 로드킬로 사라져 가는 야생동물들의 삶을 그린 〈어느 날 그 길에서〉(2006)를 만들 때까지, 내 마음은 온통 야생동물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멸종 위기인 호랑이와 고릴라를 걱정하면서 막상 내 식탁 위의 동물에는 관심이 없었다. 2008년 미국산 광우병 소고기 수입 반대 때 처음으로 가축에 관심을 가졌지만, 안전한 고기를 먹을 권리를 외쳤을 뿐이다.

그러던 중 2011년 구제역으로 인한 살처분 사태가 벌어졌다. 단 4개월 동안 무려 350만 마리의 소, 돼지가 생매장된 홀로코스트였다. 그제야 나는 돼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한 손엔 카메라를, 한 손엔 아이 손을 잡고 돼지를 찾아 떠난 여정. 다큐멘터리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2014)를 만들며 나는 처음으로 돼지의 삶을 가까이에서 보게 되었다.

이미지 출처: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2014)

한국에는 1천만 마리의 돼지가 산다. 그중 99.9%는 '공장'에서 사육된다. 햇볕도 바람도 통하지 않는 밀폐된 공간에서 유전자조작 사료와 각종 약물을 투여받으며 생후 6개월 만에 110kg의 몸으로 부풀려져 도살장으로 보내진다. 어미돼지들은 몸을 돌릴 수조차 없는 감금 틀(스톨)에 갇혀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다가 새끼 낳는 '성적'이 떨어지면 도살된다.

구제역은 소, 돼지 등 발굽 동물이 걸리는 바이러스성 질병으로 치사율이 5~55%에 이른다. 질병 자체가 전염성이 높기도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구제역이 더 큰 문제가 된 건 공장식 축산 때문이다. 적게는 수천, 많게는 수만 마리의 가축을 밀집 사육하는 방식은 동물의 면역력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바이러스 번식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정부는 매번 살처분과 방역으로 일관하지만, 공장식 축산이 계속되는 한 바이러스는 끊임없이 변이를 일으키며 나타날 것이다.

공장식 축산에서는 동물의 생태가 전혀 존중되지 않는다. 돼지는 스스로 배설 장소를 구분하는 동물이지만, 공장식 축산에서는 먹는 곳에서 싸고 자야 한다. 풀 먹는 소에게 곡물 사료가 주어지는데, 그것도 유전자조작 사료이다. 병 걸리면 매장하고, 똑같은 축사에서 또 사육하고, 병 걸리면 다시 파묻는 악순환. 게다가 살처분에 들어가는 막대한 예산과 보상 비용은 모두 국민의 혈세다.

살처분에 동원되는 공무원들은 과로로 쓰러지거나 트라우마를 견디지 못해 자살한다.

동물복지 농장과 식생활 전환이 답

이 '지옥'에서 탈출하는 길은 간단한다. 공장식 축산을 폐지하고 동물복지 농장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스톨과, 암탉이 평생 날개도 한 번 못 펴고 사는 A4용지의 2/3 면적인 배터리케이지 등을 없애야 한다. 한 농가에서 사육할 수 있는 가축 두수를 제한하는 '가축 사육 총량제'를 도입해서 밀집 사육을 막아야 한다. 축사에 햇볕과 바람이 통하게 해야 한다. 햇볕은 바이러스를 사멸시키고 가축의 면역력을 높이는 특효약이다. 〈잡식가족의 딜레마〉에 나오는 농장 '원가자농'에서는 돼지들이 햇볕을 받으며 진흙 목욕을 하고 야생초, 유기농 채소 부산물 등을 먹고 자란다. 자연의 섭리에 맞게 자란 돼지들은 구제역 대란에도 거뜬했다.

영화 촬영이 한창이던 2012년, 한살림 양돈 농장에 가 보았다. 일반 공장식 축산과 같이 어미돼지들을 스톨에 가둔 걸 보고 조합원으로서 큰 충격을 받았다. 다행히 한살림에서는 윤리적 축산을 지향하며 2016년부터 스톨 사용을 줄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임신 기간 4개월 중 1개월은 관리를 위해 어미돼지를 스톨에 가둔다.

또 새끼돼지들의 꼬리와 이빨 자르기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돼지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서로 무는 걸 방지하기 위해 새끼 때 꼬리와 이빨을 자르는 게 양돈업계의 관행이다. 그러나 꼬리와 이빨을 자르기 전에 스트레스를 줄여 주는 게 먼저 아닐까. 볏짚 등 놀 거리를 주는 농장에서는 돼지들이 서로 꼬리를 물지 않는다. 유럽에는 돼지에게 장난감을 주는 농장도 있다. 개만큼 지능이 높은 돼지에게 단조로움은 그 자체로 큰 스트레스이기 때문이다. 한살림 농장에서 거세는 생명 존중 차원에서 하지 않았는데 2013년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수퇘지고기에서 나는 웅취에 대한 조합원들의 불만 때문이라 한다. 새끼 돼지들이 거세로 받는 큰 고통을 안다면 웅취에 대한 생각도 달라질 것 같다.

한살림에 고마움과 자부심을 느끼는 조합원으로서 한살림이 앞장서서 스톨을 없애 나가는 게 대단히 자랑스럽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생명 존중과 윤리적 소비가 우리의 철학이라면 말이다. 스톨과 배터리케이지는 유럽과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금지된 사육방식이다. 한살림 농장도 스톨을 완전히 없애고 이빨과 꼬리 자르기, 거세를 하지 않는 동물복지 농장으로 전환하면 좋겠다. 좀 더 많은 햇볕과 넓은 공간, 볏짚 등을 주면 질병을 이겨 낼 힘이 더욱 강해질 것이다.

축산 방식을 전환하는 것과 동시에 절실한 건 식생활 전환이다. 공장식 축산을 철폐하고 동물복지 농장으로 전환하려면 사육 두수를 줄여야만 한다. 즉 사회 전체적으로 고기 소비량을 줄여야 함을 의미한다. 채식은 인류, 고통받는 동물, 죽어 가는 지구 모두를 살리는 가장 빠르고 강력한 실천이다. 적어도 고기 위주의 급식과 회식은 지양해야 한다. 2006년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보고서에서는 심각한 환경 파괴의 주범으로 축산업을 꼽았다. 메탄가스에 의한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 물 고갈, 오염 등이 지구를 종말로 치닫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멸의 기차에서 내려 모두가 사는 길로 가야 한다.

황윤 님은 영화감독입니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탐구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들로 부산국제영화제 운파상, 야마가타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우수상 등을 받았습니다.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는 서울환경영화제에서 대상을 받고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됐습니다.

* 이 글은 살림이야기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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