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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린을 향한 비난, 일상적인 우리의 '갑님'들

아무리 촬영이 허가되었다고 하지만 몰래카메라 장비로 누군가를 찍어댄다는 것은 그 자체로 나쁜 일이다. '여자친구' 팬사인회에서 그룹멤버 예린은 안경몰카를 이용해 자신을 찍은 남성 팬을 찾아냈고 회사 측에 이를 알렸다. 이후 그 남성은 자리를 떴다. 예린은 화를 내는 대신 그 남성 팬과의 '손깍지 이벤트'까지 마친 뒤 내보냈다. 그런데 일각에서 이 상황을 두고 예린에게 비난을 가한다. 현장에서 굳이 몰카를 확인해서 해당 남성에게 무안함을 주었다는 이유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가? 언뜻 보면 이해가 되지 않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일은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 버젓이 벌어진다.

  • 백승호
  • 입력 2017.04.05 09:53
  • 수정 2018.04.06 14:12
ⓒPnix _/YouTube

이상한 일이다. 아무리 촬영이 허가되었다고 하지만 몰래카메라 장비로 누군가를 찍어댄다는 것은 그 자체로 나쁜 일이다. 지난 31일 용산에서 열린 '여자친구' 팬사인회에서 그룹멤버 예린은 안경몰카를 이용해 자신을 찍은 남성 팬을 찾아냈고 회사 측에 이를 알렸다. 이후 그 남성은 자리를 떴다.

일각에서 이 상황을 두고 예린에게 비난을 가한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가?

화를 낼 만한 상황이기도 했다. 그러나 예린은 화를 내는 대신 그 남성 팬과의 '손깍지 이벤트'까지 마친 뒤 내보냈다. 그런데 일각에서 이 상황을 두고 예린에게 비난을 가한다. 현장에서 굳이 몰카를 확인해서 해당 남성에게 무안함을 주었다는 이유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가? 언뜻 보면 이해가 되지 않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일은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 버젓이 벌어진다.

백화점에서는 자기 성에 차지 않는 일이 생기면 종종 종업원의 무릎을 꿇린다. 어떤 높으신 분은 자기 머릿속 매뉴얼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행기를 멈춰 세운 일도 있었다. 각종 소매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감히 자신이 상상하기도 힘든 이유로 손님의 비난을 받고 이유야 어쨌든 사과한다.

얼마 전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어느 젊은 콜센터 직원의 자살을 보도했다. 돌아가신 분은 해지방어부서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해지방어부서는 전화를 받을 때부터 수화기 너머 고객이 욕을 하고 들어오는 경우가 잦다. 보통 사람들이 해지를 위해 콜센터에 전화해도 바로 해지를 할 수 없다. 전화는 해지방어부서로 돌려진다. 최대한 불편하게 만들어 해지를 막으려는 의도일 것이다. 그렇게 몇 번 전화가 돌다보면 화를 잘 내지 않는 사람들도 화가 난다. 물론 그래도 욕을 하면 안 되지만, 어디 콜센터 직원이 사람취급 받기 쉬운가. 얼굴도 안보이겠다, 화도 났겠다. 내가 저 사람에게 쌍욕을 해도 돌아오는 패널티는 없다. 고객은 곧 왕이기 때문이다.

내가 당신을 소비하고 있으니 당신은 우리의 비위를 맞추라는 이야기다.

나도 예전에 콜센터에서 일한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는 수화기 너머로 욕을 먹는 게 아주 일상적인 '업무'중 하나였다. 어느 날은 "너를 죽이러 갈 테니 주소를 부르라. 칼을 준비했다"고 이야기 했다. 그럴 때면 속에서 무언가 끓고 정말 울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난다. 하지만 그때 나는 오히려 미친 듯이 목소리 톤을 높이며 고객을 응대했다. 내가 다녔던 회사는 나에게 이런 상황을 피해갈 수 있을 만한 아무런 방법도 제시해주지 않았다. 목소리를 더 높이며 '왕'에게 분노에 가득 찬 친절을 보이며 나를 파괴하는 게, 내가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예린은 자신이 불쾌한 일을 당했음에도 미소 짓지 않았다며 욕을 먹는다. 나는 예린을 향한, 보통의 연예인을 향한 비난이 소비자의 서비스 제공자를 향한 비난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당신을 소비하고 있으니 당신은 우리의 비위를 맞추라는 이야기다. 나의 시청과 관심이 곧 당신의 수익이기 때문에, 당신에게 밥벌이를 제공하는 우리는 그럴 자격이 있다는 이야기다. 나는 앞서의 이해 못할 비난들이 그런 사고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한다.

대다수의 소비자들은 일터로 되돌아가 입장이 바뀐다.

슬픈 일이다.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자랐지만 우리가 '우리로서' 그대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교육을 한 번도 제대로 받은 적이 없었다. 사회로부터 지속적으로 자존감을 박탈당한 사람들은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해 소비자로 군림하기 시작한다. 사회도 그걸 조장했다. 보통 사람들에게, 돈을 쓴다는 의미는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몇 안되는 이벤트였다. 그렇게 소비자는 스스로 왕이 되었다. 기업은 그들에게 물건만을 판 게 아니라 누군가의 위에서 군림할 수 있다는 잠시간의 희열도 같이 팔았다. 어차피 그건 기업 입장에선 손해볼 게 없었다. 감정노동에 들어가는 비용은 온전히 노동자만 감수해야 할 몫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소비자들은 일터로 되돌아가 '월급 주는 사장'의 지배를 받는다. 입장이 바뀐다. 회사 밖에서 아주 잠깐 소비자로서 군림했던 우리 누군가는, 회사에 돌아가면 우리를 소비하는 사장에게 월급을 받는다는 이유로 온갖 부당한 일들을 감내해야 한다. 우리는 돈으로 사람을 사고파는 게 아주 당연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사회 전체가 다 아우성이다. 우리는 돈을 매개로 이어진 온갖 갑질들의 향연 속에서 살고 있다. 서로 간 소모해야 하는 감정의 양이 엄청나다. 과잉 친절과 과잉 분노 속에서 결국 힘들어지는 건, 고만고만하게 없이 사는 우리 대부분이다.

*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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