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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는 20만원짜리 인생인가?

2016년 기준 병장의 시급은 943원으로 최저임금 6,030원의 15%입니다. 이는 베트남(27%), 이집트(100%), 태국(100%), 대만(33%), 이스라엘(34%)보다 훨씬 낮습니다. 우리와 같은 수준으로는 터키(15%)가 유일합니다. 2016년 기준 병장의 하루 일당 6,566원(30일치 환산 시)은 교도소 외부 기업체에서 통근 작업을 하는 '개방지역작업자' 수형자 일당 1만 5000원의 절반에 훨씬 못 미칩니다. 죄수보다 못한 생활, 군사훈련 외에도 일과 후 갖은 잡일에 시달리는 병영에서 어떤 자율과 창의, 전문성을 도모할 수 있겠습니까? 병사들은 개·돼지가 아닙니다.

  • 김종대
  • 입력 2017.04.05 06:29
  • 수정 2018.04.06 14:12
ⓒ뉴스1

4일 조선일보에는 병사들의 열악한 생활처지를 방치해 온 군 당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국회 미래안보포럼(대표 국민의당 김중로 의원)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국방연구원(KIDA) 연구위원인 문채봉 박사는 현재 병사들의 월평균 지출금액을 약 20만원으로 산출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21만 6000원을 월급으로 받는 병장의 경우에는 봉급이 모자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남아돌고, 16만 3000원을 받는 이병의 경우도 부족한 금액은 3만 7000원 정도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이 주장대로라면 우리 병사들은 부족함이 없는 괜찮은 병영생활을 하는 것으로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를 토대로 조선일보는 병사에게 추가 소요를 최대치로 고려한다 해도 월 지출액은 25만 9000원이기 때문에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제시한 봉급 부족분 월 13만원은 부풀려졌으며, 군 생활기간 271만원을 집에서 송금 받는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과장되었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청년들에게 공분을 불러 일으킬 만한 보수언론과 관변학자의 안이한 주장입니다. 군 복무로 인한 경력단절, 열악한 주거환경과 급식, 낮은 품질의 개인 장구 보급을 감수하는 한국군 병사는 20만원 인생입니다. 마치 무얼 더 바라냐는 식의 이런 설문조사는 전제부터가 잘못되어 있습니다. 이 주장은 병사들의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3대 요소, 즉 사기(morale), 복지(well-fare), 오락(recreation)을 고려하지 않고 생활필수품 소요만을 기준으로 산출한 생명유지 비용만으로 봉급이라고 인식하는 고루한 발상입니다.

인간다운 생활의 합리적 기준은 최저 생계비입니다. 2016년 기준 병장의 시급은 943원으로 최저임금 6030원의 15%입니다. 이는 베트남(27%), 이집트(100%), 태국(100%), 대만(33%), 이스라엘(34%)보다 훨씬 낮습니다. 우리와 같은 수준으로는 터키(15%)가 유일합니다. 2016년 기준 병장의 하루 일당 6566원(30일치 환산 시)은 교도소 외부 기업체에서 통근 작업을 하는 '개방지역작업자' 수형자 일당 1만 5000원의 절반에 훨씬 못 미칩니다. 죄수보다 못한 생활, 군사훈련 외에도 일과 후 갖은 잡일에 시달리는 병영에서 어떤 자율과 창의, 전문성을 도모할 수 있겠습니까? 병사들은 개·돼지가 아닙니다.

실상은 어떻습니까? 2012년 국방부 설문조사 결과 병사들은 한 달 평균 9~12만원을 집으로부터 지원받았고 합니다. 이후로도 상황은 계속 악화되어 2015년 국회 대정부 질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백군기 의원이 현역 병사들 중 무작위로 표본 조사를 한 결과 흡연하는 일병의 경우 한 달 지출비는 27만 1,140원으로 월급 14만원에 비해 13만 1,140원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럴 경우 21개월 동안 부족분은 275만 3,940원으로 그 대부분을 부모로부터 충당하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비흡연자의 경우 월 6만 3,640원이 부족하고 군 생활 내내 133만원을 부모에게 의존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물론 이것은 휴가나 외박을 나갔을 때 집에서 받는 돈은 뺀 금액입니다. 심상정 후보는 가장 돈이 부족한 병영 약자의 처지를 지적한 것입니다.

이는 국방부 조사 결과와도 대략 일치하는 수준입니다. 돈이 없어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을 억제하고 지출을 못하는 병사들의 처지를 외면한 채, 지출이 25만원밖에 안 되니 봉급이 그다지 모자라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언어도단입니다. 정의당 외교안보본부장인 제가 국군복지단 노동조합을 통해 자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봉급이 전년대비 15% 인상된 2016년의 경우에도 병사들의 상황은 계속 악화되어 이제는 부모에게 손을 벌릴 것도 없이 아예 부모님의 체크카드, 또는 신용카드를 병영 내에서 휴대하면서 군이 지급한 나라사랑 카드와 병용하는 현상이 일반화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렇듯 통계에 잡히지 않는 실상을 외면하면 안 됩니다. 오늘도 유료 세탁기, 탈수기 비용으로 500원짜리 동전을 모아 보내는 부모의 심정을 헤아려야 합니다.

심지어 휴가 때 집에 와서 휴지, 면도기, 샴푸 등 생활필수품을 집에서 가져가는 병사들의 처지는 통계상으로 드러나지도 않습니다. 제대하는 병사들에게 '대학 등록금 수준의 퇴직금'을 약속했음에도 부족한 봉급의 일부를 적금 형식으로 저축하게 한 뒤 이를 다시 돌려주는 꼼수를 부린 박근혜 정부의 공약파기로 이미 병사들은 배신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정의당은 최저임금 40% 수준인 병사 봉급 54만원(2017년 기준, 병장) 지급 공약이 병영에서의 인간다운 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약속이라는 점을 거듭 밝힙니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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