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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to do list

현대인은 습관처럼, "To do List", 그리고 나아가서 "To be List" 를 만든다. 오늘 해야 할 일, 내년까지 이루고자 하는 목표, 그리고 5년, 10년 뒤의 계획 같은 것을 말한다. 이와 반대로, 하지 말아야 할 일과 고민, 버리는 싶은 습관, 갖지 말아야 할 태도, 되지 말아야 할 사람의 종류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게 우리 주제의 핵심이었다. 현대인은 한 방향을 보며 나아가는 사고 방식, 즉 Linear thinking에 익숙해져 있다. 꼭짓점을 찍고, 그 점을 기준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직선을 그리며 우리의 삶과 커리어의 방향을 잡는다.

  • 이소은
  • 입력 2017.04.05 10:41
  • 수정 2018.04.06 14:12
ⓒPhotobuay via Getty Images

2001년, 대학교를 갓 입학 했을 때, 한 학년 선배가 첫 술자리에서 해준 이야기가 있다. 대학을 졸업할 때, 평생 같이 갈 수 있는 선배 한 명, 후배 한 명만 있어도 대학생활을 성공적으로 한 것이라는 말이었다. 스무살 대학생이 할 수 있는 꽤나 성숙한 (혹은 허세 가득한) 이야기였다. 사회에 나와서, 특히 외국에서 문화와 생활/사고 방식이 다른 사람들과 일을 하다 보니, 대학교 때보다 훨씬 그 말이 와 닿는다. 경쟁은 치열하고, 내가 맡은 업무 외에도 신경 쓸 일들이 많아지고, 예상치 못한 사내정치에 부딪혀서 고민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좋은 동료 한두 명 만나는 것이야말로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올해 1월, 나는 뉴욕에서 새로운 소모임을 구성했다. 법조계 세 명, 비즈니스 디렉터 한 명, 그리고 컨텐츠 프로듀서 한 명, 이렇게 각기 다른 분야에 종사하고 다양한 경험을 가진 여성 프로페셔널의 모임이다. 나이도 30대 초반부터 40대 중반이고, 출신도 가지각색이다 (한국, 필리핀, 콜롬비아, 우크라이나, 브라질 미국인). 우리 소모임의 목적은 네트워킹이나 Business Development가 아닌, 커리어를 개척하고 영위해 나가면서 생기는 고민을 나누고 지혜를 찾고자 하는 데에 있다. 한 달에 한 번, 간단한 아침거리와 커피와 함께 한 가지 주제를 정해서 이야기를 나눈다. 리더십에 관한 좋은 글을 공유하고 그에 대해 토론하기도 하고,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한 발란스에 대한 아이디어를 주고 받는다. 직장생활에서 직면한 갈등 상황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도 함께 모색한다. 올해 들어 가장 긍정적인 수확인 것 같다.

지난 금요일 아침, 우리의 주제는 "Not to do list" 에 대한 것이었다. 현대인은 습관처럼, "To do List", 그리고 나아가서 "To be List" 를 만든다. 오늘 해야 할 일, 내년까지 이루고자 하는 목표, 그리고 5년, 10년 뒤의 계획 같은 것을 말한다. 이와 반대로, 하지 말아야 할 일과 고민, 버리는 싶은 습관, 갖지 말아야 할 태도, 되지 말아야 할 사람의 종류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게 우리 주제의 핵심이었다. 워낙 자유로운 포맷으로 진행되는 시간이라, 이야기를 하다보면 주제에서 벗어나는 일도 흔히 일어난다.

생각을 주고 받다가 우리 대화는 전문화라는 주제로 자연스럽게 전환되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지식을 최대한 빨리 습득해야 하고, 특화된 분야에 제일 가는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곤 한다. 이러한 외부의 기대와 압박에 영향을 받는 것을 Not to do list 에 올리고 싶다는 게 요지였다. 멤버 중 한 명은 그녀가 즐겨 드는 정치 팟캐스트를 언급하면서, 정책 전문가의 인터뷰를 듣다가, 자신은 20년 동안 비즈니스에 종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라고 내세울 수 있는 분야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심지어 자신의 전문 분야는 강아지 키우는 노하우밖에 없다는 농담을 했다.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았나? 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인가? 제너럴리스트는 가치가 없는 것일까?' 각자의 경험에 비추어 질문과 답을 하며 이야기를 풀어가다 보니, 점점 우리 대화에 변화가 일어났다. 보여지는 타이틀 혹은 업적에 치중하는 시각에서, 각자의 일과 그 가치에 대한 성찰과 점검으로 옮겨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현대인은 한 방향을 보며 나아가는 사고 방식, 즉 Linear thinking에 익숙해져 있다. 꼭짓점을 찍고, 그 점을 기준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직선을 그리며 우리의 삶과 커리어의 방향을 잡는다. 이 패턴에서 벗어나면 바로 마음이 불편해지고, 무엇인지 모르게 잘못하는 것 같고, 실패했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꼭 직선으로 나아가야 하는 법은 없다. 때론 둥글게, 때론 오른쪽에서 왼쪽 방향으로, 때론 새로운 꼭지점을 찍고, 때로는 평생선 혹은 대각선을 그리며 가는 것이 삶이다.

우리 모임의 대화가 처음에 정한 주제에서 너무 벗어났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정해놓은 주제의 범위 속에 있으려는 노력 또한 Linear Thinking의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의 인생도 그날의 대화처럼 예상치 못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하고, 또 그로 인해 더 큰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시작은 Not to do list 목록이었지만, 우리 5명은 그날 모임을 마무리하면서 훨씬 더 값진 깨달음을 안고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꼭지점을 옮기고, 방향을 바꾸고, 속도를 변화시키고, 직선으로 쭉 뻗어있는 길에서 벗어나도 좋다. 다른 길로 갈아타도 되고, 비포장 도로에 걸어도 되고, 잠시 움직이지 않고 쉬어가도 된다. 이런 유연함과 용기를 가진, 열린 사고의 전문가가 되어야겠다.

To do list 에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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