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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을 앞둔 프랑스는 깊이 분열되어 있다. 사람들은 분노와 공포를 느낀다.

  • 허완
  • 입력 2017.04.01 13:19
  • 수정 2017.04.01 13:25

프랑스에서 학생 시위가 터져나오기 두 달 전이던 1968년 3월, 유명 논설위원 피에르 비안손-폰테는 ‘프랑스는 지루하다.’고 썼다. 그는 프랑스가 국영 TV에 의해 무감각해졌으며 진정제를 먹은 거나 다름없다고 했다. 젊은이들이 세상 일에 관심이 없으며, 샤를 드골 대통령은 기념비를 세우고 농업 박람회나 다니며 만족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프랑스는 ‘불행하지도, 정말로 번영하지도’ 않은, ‘무관심과 조용함’에 젖은 나라라고 했다. 그러나 불평할 것이 뭐가 있는가? ‘국가에게 있어 지루함은 행복에 가장 가까운 것이다. 누가 전쟁, 위기, 시위를 그리워 하는가?’ 그는 프랑스인들은 ‘그저 변화를 위한 변화를 좋아한다는 걸 어떤 비용이든 치르면서도 너무 자주 보여왔다.’고 지적했다.

거의 반 세기가 지난 지금, 프랑스의 분노가 폭발할 조짐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1968년의 프랑스는 지루했는지 몰라도, 2017년의 프랑스는 넌더리를 내고 있다. 프랑스는 분노, 좌절, 공포를 느끼고 있다. 이 모든 감정들이 대선에 작용할 것이다. 분노가 진정한 민주적 부활로 연결될 수 있을지, 어두운 정치 세력이 승리할 것인지가 중요한 물음이다.

위험이 얼마나 많은지 과장하기 어려울 정도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최초로 파시스트 유형의 지도자가 프랑스를 이끌 진정한 위험이 있다. 이 말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마린 르펜이 차기 대통령이 될 거라는 말은 아니지만, 르펜의 승리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르펜이 2차 투표에서 완패할 것이라고 나오는 여론 조사를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없기 때문만은 아니다.

프랑수아 피용 대선 후보의 세비 횡령 스캔들로 촉발된 대중의 분노의 물결이 프랑스를 사로잡았다. 주류 우파인 피용은 아내를 허위 채용해 거액의 세비를 횡령했다. 이에 대한 규탄이 거세고, ‘정권의 위기’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어 대선 자체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피용은 ‘정직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로 공화당 경선에서 승리했지만, 이제 그 이미지는 크게 실추되었다.

엘리트들에 대한 분노는 지금이 최고조일지도 모른다. 기득권층의 느낌이 나는 모든 것은 사기나 무능의 대명사로 여겨진다. 피용의 이야기를 보는 보통 사람들은 “우리는 생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데, 정치인들은 계속 사기를 치며 잘 사네?”라고 생각한다. 체제에 대한 신뢰는 뚝 떨어졌다. 군대만은 예외로 높은 지지를 받는다. 이 모든 것이 포퓰리스트 세력들에게 유리하다.

프랑스의 불안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세계화의 공포, ‘국가 정체성’ 상실의 공포, 유럽과 세계에서 더욱 강등되는데 대한 공포다. ‘보편주의자’ 메시지에 자부심을 갖고 언제나 위신을 추구해 왔던 국가에게 있어서는 이건 작은 일이 아니다. 드골은 비망록에서 프랑스를 ‘성모 마리아’와 ‘동화 속 공주’에 비유했다. “프랑스는 일류일 때만 진정 프랑스이다. 어마어마한 노력을 들여야 프랑스인들이 지닌 확산의 동요에 보상해줄 수 있다.” 드골의 글이다. 프랑스에는 근거없는 믿음이 깊이 스며들 수 있다. 자신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것을 현실이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 프랑스인들이 많다.

프랑스는 국내의 깊은 균열들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 모든 사회 집단들은 서로 경쟁하고 있다고 느낀다. 청년 대 노년, 실직자 대 취업자, 시골 대 도시, 자격 미달 대 교육 받은 층, 이민자 대 비이민자 등이다. 분명 이런 분열은 여러 나라에 존재하지만, 역사적으로 공화국이라는 개념에 평등주의와 분할 불가가 따라오는 프랑스에서는 실존적 차원을 갖게 된다. 알제리 전쟁 이후 처음으로 프랑스 땅에서 테러가 일어난 이래, 사회적 화합이 완전히 무너질지 모른다는 냉혹한 공포가 일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타격을 준 것은 수십 년 간의 대량 실업이다. 프랑스 전국의 실업률은 10%이며, 18~24세의 경우 24%에 달한다. 프랑스인 64%는 현재의 젊은이들이 부모 세대보다 성공할 기회가 적다고 믿는다. 희생양을 점찍으려는 사람들에게는 유리한 배경이다. 2017년 1월 설문 조사에서는 62%의 응답자가 이슬람이 ‘공화국에게 위협이 된다’고 답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55%는 ‘이민은 문화적 풍부함의 원천’이라고 믿었다.

르펜은 누적된 공포를 이용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래서 4/23과 5/7의 대선은 최근 프랑스 역사상 가장 불안하고 예측이 힘들며 파괴적 영향을 줄 수도 있는 정치적 행사다. 마린 르펜에 대한 태도는 크게 분열되어 있다. 프랑스인 55%는 르펜이 ‘걱정스럽다’고 답했지만, 르펜은 ‘평범한 사람들의 문제를 이해하는’ 것 같은 정치인 리스트의 상위에 올라있다. 프랑스에 극우 대통령에 대한 터부는 더 이상 없다.

2월 초의 설문 조사에서 르펜은 1차 선거에서 탄탄한 25% 지지를 얻는 것으로 나왔다. 리옹에서 ‘국가적 선호’의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며 본격적인 유세를 시작하기도 전의 일이다. 르펜은 48세이며 주변부의 정치인으로 남는 것에 만족하던 그녀의 아버지 장-마리 르펜과는 달리 권력욕이 강력하다. 르펜은 좌파와 우파 포퓰리스트들의 표를 원한다. 보호 무역주의 슬로건과 ‘신자유주의적’ 경제 감축과 외국인들로부터 복지 국가를 구하겠다는 약속을 내세우고 있다. 르펜은 프랑스에게 명령을 하는 외부 세력들이 있다며, 자신이 방패가 되겠다고 나선다. 르펜의 대표적인 표적은 EU다.

물론 르펜은 환상을 팔고 있지만, 사람들은 여기에 넘어간다. 피용이 정치적으로 몰락하면 르펜에겐 도움이 된다. 제레미 코빈 같은 인물이 사회주의자 후보가 된 지금, 좌파의 분열과 급진화에서도 이득을 얻을 수 있다. 베누아 아몽의 지명은 프랑수아 올랑드의 지지부진했던 집권의 여파로 느껴진다. 아몽이 내세우는 보편적 기본 소득 도입, 대마초 합법화, 로봇 과세 등의 정책은 유토피아적인 동시에 개성적이다.

그 결과, 39세의 전직 은행가 에마뉘엘 마크롱에게 희망을 걸기 시작한 프랑스 민주주의자들이 많다. 마크롱은 르펜을 막을 인물로 비춰지고 있다. 중도주의자인 마크롱은 프랑스 정치의 상태와 국가 개혁의 어려움에 혐오를 느껴 올랑드 임기 중에 등장했다. 연극을 좋아하는 전직 경제 관료인 그는 전통과는 상당히 다른 선거 운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전통적 죄우파 정당 정치에서 벗어났다. 그의 스타트업 ‘엉 마르쉬!’(전진!) 운동은 런칭 10개월 만에 17만 명의 회원을 모았다.

젊은 마크롱의 선거 유세 기술은 2008년의 버락 오바마와 비슷하다. 빅 데이터를 사용하고, 주거지를 분석해 표적들에게 활동가들을 직접 보낸다. 오바마처럼 마크롱은 희망의 전도사를 자처하고, 유세에서 ‘희망의 승리’를 이야기한다. 마크롱은 당, 민족, 종교를 넘어 프랑스인들을 ‘조화’시키고 싶어한다. 그는 교육 수준이 높고 인터넷 사용을 많이 하는, 도시의 ‘세계화된’ 유권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그는 공포 속에 사는 프랑스가 아닌, ‘낡은 체제’에 넌더리가 난 프랑스를 대변한다. 반면 르펜은 무서워하는 동시에 넌더리가 난 사람들에게서 인기를 모은다. 그런 사람들이 많다.

프랑스의 분위기를 파악하려면 파리에서 벗어나봐야 한다. 프랑스는 오래 전부터, 귀족들이 서로 뒤통수를 칠 계획을 짜거나 군주의 눈에 들려고 노력하던 왕정 시절부터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였다. 파리의 엘리트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보다는 자기 자신에게만 집착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대중이 분노하기에 딱 좋은 조합이다.

과수원과 포도밭, 작은 마을들이 언덕에 펼쳐져 있는 남서부의 아름다운 타른에가론느 지역은 역사적으로 좌파들이 우세한 곳이었다. 지금은 마린 르펜의 영역이다. 이곳의 1위 당은 2015년 지역 투표에서 35%를 얻은 국민전선이다. 높은 실업률과 악화되고 있는 공공 서비스에 대한 실망이 엄청나다. 작업장과 공장은 몇 년 째 닫혀있다. 사람들은 병원에 가려면 차를 몰고 더 멀리 가야하고, 지원금이 부족해 학교가 문을 닫고, 임금이 낮고 전반적으로 도외시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좌파 정부와 우파 정부에 연달아 실망을 느낀다. 르펜은 권력을 잡은 적이 없기 때문에 유리하다.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깊은 불안감이 있다. 2015년과 2016년에 파리와 니스에서 일어난 테러는 프랑스 전국에 트라우마가 되었다. 타른에가론느에는 1950년대에 이주해 와 과일을 따는 등 농업 노동을 제공하며 자리잡은 이민자들의 후손으로 구성된 북아프리카 커뮤니티가 있다. 이 커뮤니티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외국인혐오가 드러난다. 일부 젊은 무슬림들은 엄격하고 종종 급진적인 이슬람 분파인 살라피즘을 받아들였다. 보안기관이 그들을 철저히 감시하고 있다. 이민자 대다수는 잘 통합되어 있지만, 대중의 시각이 달라졌다.

물론 프랑스의 어려움은 프랑스만 겪는 문제들은 아니다. 반 기득권 정서와 불만을 품은 중산층은 다른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도 있다. 그들은 미국에서는 트럼프를, 영국에서는 브렉시트를, 유럽 다른 곳에서는 극우 세력의 부상을 낳았다. 그러나 프랑스만의 고충도 있다. 세계화가 17세기의 콜베르 재무장관 이후 프랑스 경제에서 강한 역할을 맡았던 국가의 역할을 약화시켰다.

식민 강대국이었던 프랑스의 과거 때문에 정체성 정치와 이민을 둘러싼 의문이 특별한 반향을 갖는다(국민전선은 1960년대의 알제리 전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자국에서 발생한 테러리즘이 남긴 트라우마는 프랑스만의 독특한 사상적, 정치적 전쟁에 다시 불을 지폈다. 프랑스만의 독특한 세속주의 라이시테(laïcité)와 관련이 있다. 작년 여름에 일었던 ‘부르키니’를 둘러싼 논란을 보라. 법원이 개입해야 했다.

국제적으로 비교를 해보면 고통스럽다. 프랑스인들은 지난 10년 동안 프랑스 경제가 독일에게 크게 추월당했음을 잘 알고 있다. 이는 일부 선거구에서 EU에 대한 비판에 부채질을 한다. 마린 르펜이 ‘프랑스 먼저’ 수사로 인기를 끄는 지역들이다. 유럽 프로젝트는 프랑스의 영향을 더 크게 만들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이젠 그렇게는 보이지 않는다(비록 시민 대다수는 EU에 남기를 원하지만 말이다). 프랑스가 1962년에 제국을 잃었을 때, 드골은 과감하게 독일과의 화해를 선택했다. 르펜이 당선되지 않는다고 가정했을 때, 강력한 프랑스-독일 파트너십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프랑스의 자기인식을 개선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이러닉하게도, 일부 통계를 보면 프랑스의 상황은 프랑스인들의 생각만큼 나쁘지는 않다. 예를 들어 빈곤률은 독일,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보다 낮다. 하지만 프랑스인 87%는 누구나 살면서 빈곤으로 추락할 수 있다고 믿는다. 프랑스의 소득 불평등은 위에 언급한 국가들보다 덜하지만, 프랑스인들은 그 반대로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보다 인식이 더 중요하다는 게 정치의 황금률이다. 그리고 좋지 않은 현실도 있다. 지난 10년 동안 프랑스의 1인당 소득은 1945년 이후 최악의 정체를 기록했다.

오늘날의 프랑스는 깊이 균열된 국가다. 프랑스를 앞으로 몰아갈 공통의 국가적 내러티브나 방향 감각이 없고, 정치 계급에 대한 신뢰는 사라졌다. 개방성을 믿는 사람들과 국경에 벽을 세우고 싶어하는 사람들 간의 간극은 크다. 프랑스의 이번 대선은 엘리제 궁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만이 아니다. 집단 정체성, 21세기의 세계에서 프랑스의 역할을 재정의하는 선거다.

이번 선거에는 정말 많은 것이 걸려 있다. 브렉시트, 트럼프, 포퓰리즘의 시대에, 이것은 한 나라에서의 민주주의 보존과 EU 전체의 생존에 대한 시험이 될 것이다. 프랑스는 현재 1968년과는 굉장히 다른 정치적 격변을 앞두고 있다. 프랑스인들은 넌더리를 내고 있지만, 비앙손-폰테의 말을 빌자면, 지금 프랑스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위험은 ‘어떤 비용이든 치러야 할 그저 변화를 위한 변화’다. 다함께 심연으로 걸어들어가는 걸 피하고 싶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US에 게재된 나탈리 누가헤드 전 르몽드 편집국장의 글 Ahead Of Its Election, France Is Deeply Fragmented, Its People Often Angry and Scared를 번역, 편집한 것입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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