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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19년 정치인생은 '구속수감 피의자'로 막을 내렸다

  • 허완
  • 입력 2017.03.31 05:21
ⓒ뉴스1

박근혜 전 대통령이 31일 오전 법원의 영장 발부로 영어의 몸이 됐다.

박 전 대통령은 전날(30일) 오전 10시30분쯤부터 저녁 7시10분쯤까지 약 8시간40분 동안 서울중앙지법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고 검찰과 법리 다툼을 했으나 끝내 구속됐다.

헌정 사상 첫 여성·부녀 대통령으로 2013년 2월25일 화려하게 취임한 지 4년1개월여 만에 권력 정점에서 바닥으로 추락했다.

40년 지기 최순실씨를 중심으로 한 국정 농단 사태로 박 전 대통령 이름 석 자 앞에는 첫 파면 대통령, 첫 영장실질심사 대통령이란 불명예스러운 수식어가 놓였다. 이날 구속영장 발부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역대 세 번째 '수감 대통령'이란 오명도 더해졌다.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에 뿌리를 둔 박 전 대통령의 19년 정치 인생도 막을 내리는 모양새다.

박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 취임에 불과 12세 나이로 청와대에 입성, 영애(令愛) 생활을 누렸다. 22세 때인 1974년 모친인 육영수 여사가 흉탄에 사망해 퍼스트레이디를 대행하기 시작했다.

퍼스트레이디 생활도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또다시 흉탄에 살해되면서 막을 내리게 됐다. 양친을 잃은 박 전 대통령은 동생인 근령·지만씨와 청와대를 떠났다.

박 전 대통령은 18년간 칩거를 이어갔으나 1997년 지원 요청을 받고 한나라당에 입당, 이회창 대선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고문으로 여의도에 발을 들였다.

이듬해인 1998년 대구 달성 보궐선거에 이어 제16·17·18대 대구 달성 국회의원에 내리 당선돼 배지를 달았다. 2012년 제19대 총선에선 비례대표로 5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해 11월 대선 출마를 위해 국회의원직을 사퇴했다.

박 전 대통령은 15년간 여의도 정치를 하는 동안 당 대표와 비상대책위원장 등을 거치며 '선거의 여왕'으로서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을 이끌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선 당시 이명박 후보와 치열한 경쟁을 벌인 끝에 고배를 마셨지만 다음 대선에서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박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 죽음으로 청와대를 떠난 지 34년 만인 2013년 대통령 취임식 당일 청와대에 다시 발을 들였다. 집권 동안 콘크리트 지지층을 기반으로 '마이웨이'식 정책과 인사를 고집해 불통이라는 지적을 꾸준히 받았으나 재임내내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않았다.

2014년 세월호 참사와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흔들리던 리더십은 지난해 10월 최순실씨 국정 농단 의혹이 불거지면서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무너져내렸다.

민심 외면이 심화되고 검찰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로 특정됨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9일 국회로부터 탄핵소추됐다. 세 달간 직무 정지 기간 동안 박 전 대통령은 줄곧 혐의를 부인했으나 지난 10일 헌법재판소는 끝내 파면을 선고했다.

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 신분일 당시 1기 특별수사본부와 박영수 특별검사팀 조사를 거부했다. 그러나 파면 뒤엔 구속만은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법적 대응에 임했다. 지난 21일엔 검찰에 출석해 역대 전직 대통령 중 최장 시간인 21시간30분 동안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2기 특수본은 지난 27일 박 전 대통령에게 사안의 중대성·증거 인멸 우려·형평성 등을 들어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결국 나흘 만에 박 전 대통령은 삼성동 자택이 아닌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로 향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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