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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같이 좋은 것이 어디가 있어요

"얼매나 마음이 좋은지. 글을 보면 세상이 쫙 다 뵈는 것 같아. 글같이 좋은 것이 어디가 있어요. 사람들이 잘한다고 하니까 잘하나 보다 싶고 재미가 올라가더라고요. 상 받았다고 지역신문에도 나고. 그리고 이전에 딸기 상자에 이름도 못 쓰다가 이제 자신 있게 딱 쓰면 '예쁘게 쓰시네요' 이러니 최고 좋아."

[전북 완주 한글문예학교 진달래학교 다니며 시인 된 인금순 할머니 ]

글 _ 사진 김세진

이름 쓸 줄 모르던 할머니들이 자기가 주인공이 된 책에 사인해 주는 출판기념회가 지난 1월 전북 완주에서 열렸다. 미디어공동체완두콩협동조합은 늦깎이 한글교실 학생인 할머니 21명에게 들은 인생 이야기와 할머니들이 쓴 글을 엮어 《할미그라피-완주 할매들의 인생 손글씨》를 냈다. 할미그라피는 할미와 캘리그라피의 합성어. 책을 안고 새벽 두 시까지 잠을 못 이뤘다는 인금순 할머니도 이 중 하나다. 10년 전, 김숙이 전 고산면장에게 한글교실을 열어 달라고 제안할 때만 해도 이런 날이 있을지 몰랐다.

인금순 할머니가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원망이라도 하나 싶었는데 제목을 보니 어김없는 자랑이다. 어머니에게도 속삭인다.

인금순 할머니는 남편 오문선 할아버지에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글교실 데려다 줘서 편지도 쓸 수 있어요. 앞으로 죽을 때까지 둘이서 행복하게 삽시다. 영감님 사랑할게요"라는 연애편지를 썼다. 손녀와 며느리에게는 "나는 너히들 보고 재미있었서. 손녀 다연이와 며느리가 많이 애썼다. 아들 엄마가 이 나이에 한글 배워서 편지를 써 보았다"라고 마음을 보냈다.

하지만 남몰래 쓰는 공책에는 "시집오니까 신랑이 바람 같은 사나이/ 왜냐하면 도라만 다린니까 / (...)/ 우리 두리 살다보니 칠십이 넘었는데/ 지금도 부처님 같은 영감/ 왜냐하면 앞에다 만날 차려 놓고/ 빌고 절을 해 봐도/ 먹으려고 할 줄 모르니까"라며 〈비유법〉이라는 제목을 붙여 흉도 보고, 시 〈추석날〉에서 "손자가 오더니/ 핸드폰만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고 있습니다 / (...)/ 딸도 오더니/ 핸드폰만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꾸꾹 누르고 있네요/ 왜 그럴까요?"라고 섭섭한 속내도 드러낸다.

시가 뭐여?

솔직하고 담백한 글 덕분에 할머니는 '완주군 성인 문해 백일장 대회'에서 연이어 최우수상, 장려상을 받았다. 단상에 올라가서 시를 읽었는데 너도나도 잘한다고 칭찬하고, "사람들 앞에서 심정을 꺼내 보여 주니" 사는 재미가 더해 이젠 당당하게 읽는다. 처음 한글교실 선생님이 시를 써 보라고 했을 땐 "시가 뭐여?" 물었다. 선생님이 다른 할머니의 작품을 보여 주며 "내 생각을 있는 그대로 쓰는 거" 라고 알려 주어, 밤에 가만히 누워 무얼 쓸지 생각해 보았다. 매일 농사지으며 마주치는 딸기를 주제 삼아 "딸 이름은 딸기/ 딸아 딸아 예쁘게 자라거라/ 빨갛게 자라면 바구니에 담겨 차 타고 시집가야지"라는 시를 들고 가서는 쑥스러워서 가방에서 꺼낼까 말까를 몇 번 고민했다. 슬며시 내놓고 "이것도 시 되야요?" 하고 물었는데, 보는 사람들마다 "사연을 어쩜 그리 잘 내냐"고들 하니 어깨가 으쓱하다.

"얼매나 마음이 좋은지. 글을 보면 세상이 쫙 다 뵈는 것 같아. 글같이 좋은 것이 어디가 있어요. 사람들이 잘한다고 하니까 잘하나 보다 싶고 재미가 올라가더라고요. 상 받았다고 지역신문에도 나고. 그리고 이전에 딸기 상자에 이름도 못 쓰다가 이제 자신 있게 딱 쓰면 '예쁘게 쓰시네요' 이러니 최고 좋아."

인금순 할머니가 손글씨로 직접 쓰고 그린 시 〈달라진 인생〉

죽드락 배울 거예요

여자가 글을 배워서 뭐하냐고들 말하던 시대를 사느라, 60살 넘어서야 한글을 배웠지만 공부가 너무 재미있어 그동안 고생했던 걸 다 잊고 산다.

"핵교 댕기는 기 부러웠지. 애들이 가방 짊어지고 팔을 달랑달랑 흔들면서 가던 발소리가 지금도 생각 나. 살림만 하다가 중신아비가 권해서 스무 살에 시집왔어. 와 보니 어머니는 관절이 아파 아예 못 걸어서 방에 누워서 지내고 아버지는 마른기침하시고. 식모라도 그렇게 고생 안 했을 거야. 91살 되어 돌아가실 때까지 30년을 모셨는데 나중에 노망들어서 벽에 똥 바르고 해서 치우고 씻기고 하느라 뭐, 어디를 다니지 못했지." 동네 마실 한번 편히 다니지 못하고 모시던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사는 게 너무 허무했단다. 취미 생활이라도 해야겠기에 주민자치센터에서 풍물을 배웠는데 사람들이 "귀로만 배우면서 어째 글까지 보는 사람보다 빠르냐"고들 할 정도로 총명했다. 하지만 정작 배우고 싶던 한글 배울 통로가 없었다. 아쉬운 참에 면장에게 직접 한글교실을 열어 달라고 했다. 그게 2007년의 일이다. 그렇게 시작하여 지금도 농사지으며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 진달래학교에 다닌다.

"농사지으랴 공부하랴 몸은 고되도 맘이 좋아요. 얼른 일 마치고 공부해야지 하면서 열심히 하고 공부한 다음에는 쉬었으니까 부지런히 해야지 하면서 힘이 나요. 마음으로 모든 걸 헤쳐 가고 기분이 나니까 근심이 도망가고, 어, 나도 하면 할 수 있구나 싶고. 죽드락 배울 거예요."

인금순 할머니는 새벽에 일어나 그날 일감을 다 해 놓고 공부하러 다녀와서 다시 농사일하다가 밤에 텔레비전 볼 여력이 생기면 노래 가사를 받아 적곤 한다. "배운 놈도 잊어버리니 자꾸 볼밖에." 때론 일이 많아 "밥 안 먹어도 학교는 가야 혀"라는 할머니 따라 내게도 "밥 안 먹어도 이건 해야 혀" 하는 일이 생겼으면.

김세진 님은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해 왔습니다. 지금은 어느 곳에 얽메이지 않고 스스로 몸을 돌보고 마음을 살피면서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매체에 자유롭게 글 쓰는 일을 하며 지냅니다.

* 이 글은 살림이야기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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