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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플렉스'에 대해 우리들이 잘못 알고 있는 3가지

일상 용어가 되어버린 학술 용어들이 있다. '아우라'나 '페미니즘' 등이 그렇다. 그 중 '콤플렉스'란 용어는 압도적이다. 무려 1933년 신문에서도 '콤플렉스'란 용어가 일반 기사에 설명 없이 쓰인 걸 발견할 수 있을 정도다. 지금 우리에게 '콤플렉스'란 말이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일상에서 사용되는 '콤플렉스'의 뜻과 실제 심리학에서 쓰이는 '콤플렉스'의 의미가 완전히 같진 않다. 일본 융 심리학의 1인자로 불리는 저자가 풀어 쓴 '콤플렉스'에 대한 설명을 통해 우리가 그 동안 잘못 알고 있었던 ‘콤플렉스’에 대한 오해 3가지를 정리해보았다. 이것은 나와 내 주변에 대한 오해를 푸는 과정이기도 하다.

1. 콤플렉스는 '열등감'을 뜻하는 단어가 아니다.

일상 생활에서 '콤플렉스'가 쓰이는 대부분의 경우는 '열등감'의 다른 말로 사용될 때다. 그러나 콤플렉스(Complex)의 뜻이 '덩어리', '집합체'인 데서 짐작할 수 있듯, 콤플렉스는 '단 한 가지의 감정'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오히려 매우 다양한 감정이 엮여 있는 '감정의 복합체'라고도 볼 수 있다. '메시아 콤플렉스'처럼 열등감과 우월감이 미묘하게 섞인 경우가 대표적 사례다.

이는 콤플렉스가 단순한 감정이 아닌 자아에 의해 억눌린 '또 다른 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나'에 대한 감정이 단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저자는 이를 '정당 내 정파'라는 비유를 통해 설명한다. '나'라는 정당 안에서 '자아'는 현재 정당을 이끄는 주류 정파다. 그러나 주류 정파가 있다 해서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군소 정파'들이 없다고 볼 수는 없다. 보통의 경우엔 이들도 주류의 의지에 눌려 잘 따라가지만, 사안에 따라 격렬하게 반발하며 주도권을 빼앗으려 들 때가 있다. 바로 이 '군소 정파'가 '콤플렉스'라는 것이다. 강한 콤플렉스가 불러오는 병리적 현상으로 '이중 인격' 등이 존재하는 이유다.

이러한 콤플렉스가 존재하는 이유를 융은 '상보성'의 개념을 들어 설명한다. '자아'는 그 특성상 '일관성'과 '안정성'을 가지기를 원하는데, 경험을 쌓고 자아가 발달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자아로는 해결할 수 없는 욕망이나 문제들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 때 이러한 문제들을 무의식에 밀어 넣게 되는데, 물론 그런다고 애초 자아를 위협했던 문제와 욕망들이 마음 속에서 사라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이것이 '내가 가진 또 다른 나'인 콤플렉스가 되어 자아의 부족함을 보상하려 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모 뜻에 따라 공부만 했던 한 학생이 대학이란 새로운 상황에서 수많은 이성을 맞닥뜨리게 됐을 때, 그 학생의 자아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공부에만 집중했던 일관성을 지키기 위해 자신에게 새로이 나타난 '이성에 대한 관심'을 무의식으로 밀어 넣어버릴 수 있다. 그러나 '이성에게 잘 보이고 싶은 또 다른 나'는 무의식 중에 여전히 남아 이 학생에게 '대인 공포증', '혐오' 등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는데, 바로 이 '이성에게 잘 보이고 싶은 또 다른 나'가 콤플렉스라는 것이다. 따라서 콤플렉스는 부정적이거나 열등한 현상이 아닌, 인간이 살아가고 발전하는 한 누구라도 가질 수밖에 없는 심리 현상이며, 오히려 그것은 '자아가 한 단계 도약'할 시기가 되었다는 신호를 보내주는 고마운 존재일 수 있다. 잘만 활용한다면 말이다. 즉, 콤플렉스는 '인격 발달'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 할 수 있다는 것이 융의 입장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공부벌레에다 이성에 관심이 없던 이 여학생의 자아는 나름대로 하나의 통합성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그런데 그 자아를 보충하는 것으로서 이성에게 관심을 갖는 경향이 무의식 속에서 솟구쳐 올라온 것이다...대인공포증이라는 증상은 안정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은 자아와 그것에 압력을 가하고 있는 콤플렉스의 타협의 산물 같은 것이다. 그러나...자아는 조금씩 콤플렉스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한편으로, 자신이 이성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일면성도 받아들인다...융은...이러한 현상들은 새로운 인격의 발전 가능성이 어떤 특수한 곤란성으로 인해 방해를 받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생각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융은 콤플렉스의 표출이 마이너스적인 면도 있음을 인정하고, 거기에 인격의 발전 가능성으로서 목적론적 관점을 도입했다." (책 '콤플렉스', 가와이 하야오 저)

2. '콤플렉스'는 '나약한 사람들'에게 생기는 병이 아니다.

앞서 말한 설명을 받아들인다면, '콤플렉스'의 존재만으로 누군가가 더 '열등하다'고 볼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문제는 콤플렉스의 강한 영향력으로 '노이로제' 등의 병리적 현상이 일어난 사람들의 정신력이 '나약'하다고 은연중에 생각하는 태도다. 저자는 이런 시선이 매우 잘못된 편견이라고 지적한다. 위대한 성취를 이룬 뛰어난 인간들에게서도 노이로제는 흔히 발견할 수 있는 현상이었다. 일단 프로이트부터가 노이로제였다. 일본 야수파의 거장 하야시 다케시(林武) 등 위대한 예술가들 중에서도 노이로제 증상을 보인 이는 많았다. 이들이 전부 노이로제에 걸린 이유가 '나약해서'라면, 과연 그 많은 성취를 이룰 수 있었겠느냐고 저자는 반문한다.

결국 노이로제 등의 현상이 생겨날지 말지는 자아와 콤플렉스의 상대적 관계 속에 달려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자아의 힘에 비해 콤플렉스가 지나치게 강할 때 노이로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이것이 꼭 '자아가 약해서'인 것만은 아니다. 아무리 자아가 강해도 환경과 상황이 만들어낸 콤플렉스가 그보다 센 경우는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고, 이것이 노이로제를 불러왔다고 해서 바로 그것을 개인의 '자질' 문제와 연결시키는 건 위험한 단정이라는 것이다. 거꾸로 지금 노이로제를 겪고 있지 않은 사람이 자신이 가진 콤플렉스나 문제들을 남에게 떠넘겨 타인에게 피해를 주며 자신만 '정상'으로 생활하는 경우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노이로제의 유무만으로 사람의 우열을 나누는 태도는 매우 잘못되었다는 결론을 저자가 내리는 이유다.

"노이로제란 어떤 콤플렉스가 자아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이 신경증 증세로 나타나는 경우다. 신경증의 증세는 다양하지만, 본인이 그것을 병적인 증세로 받아들여 이상하다고 여기면서도 도저히 의식적으로는 고치지 못한다. 여기서 나는, 자아가 콤플렉스의 영향 아래에 있더라도 노이로제가 된 사람의 자아가 그렇지 않은 사람의 자아보다 반드시 약하다고는 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싶다...예를 들어보자. 배에 짐을 실을 때, 배가 작더라도 작은 짐을 실으면 문제가 없다...하지만 아무리 배가 크다 해도 짐이 너무 무거우면 약간은 장애를 일으킬 것이다...배와 짐을 크기의 관계는 사람의 소질이나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책 '콤플렉스', 가와이 하야오 저)

3. '콤플렉스'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누군가에게 "콤플렉스가 있다."고 지적할 때에는, 사실 그에게 '개인적인 결점'이 있다는 의미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정말 누군가에게 '콤플렉스'가 존재한다면, 당신이 그 누군가와 가까운 사이일수록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모른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콤플렉스를 '스스로의 자아를 발달시켜서' 해결하기도 하지만, '나를 보완해주는 다른 사람을 찾아 긴밀한 관계를 맺음으로써', 혹은 '비슷한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끼리 유대감을 형성함으로써' 해결하려 들기 때문이다. '자기에게 없는 점을 서로에게 발견해' 결혼한 부부라든지, '비슷한 사정을 가진' 불량 서클 청소년들이 그 예다. 관계에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관계 형성에 적극적으로 영향을 행사하기도 하는 게 콤플렉스인 셈이다.

문제는 관계가 콤플렉스의 원인이건, 콤플렉스가 관계의 원인이건, 무언가를 많이 공유하는 사이일수록 그 사이가 서로가 가진 콤플렉스의 원인이거나 결과일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다. 이럴 경우 서로의 관계에서 생기는 문제점, 갈등 등을 상대방의 자질 탓으로 돌리기보단 '자신과 상대방의 콤플렉스'가 보내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상대방과 새로운 관계를 개척하는 태도가 필요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콤플렉스 자체가 병은 아니지만, 이를 '예외'로 만들고 '병'처럼 여기는 태도가 오히려 진짜 병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의 상보성은 한 사람의 마음 내부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또는 다수) 사이에 일어날 수도 있다...각각의 사람이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콤플렉스를 발전시켜가는 대신에 그것을 보완해주는 사람과 맺어짐으로써 손쉽게 상보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이런 부부가 40대에 접어들고 나서 이혼 문제로 상담하러 오는 일이 갑자기 많아졌다...결혼해서 20년 가까이 등을 맞대고 지내지 말고 서로 마주보고 대화를, 말하자면 자신의 콤플렉스와 대결을 시도했어야만 했다. 또는 마흔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것을 깨달았다면 인생의 후반을 향해가는 길을 둘이서 함께 나아갈 수 있게끔 새로운 관계를 개척했어야만 했다." (책 '콤플렉스', 가와이 하야오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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