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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프 셀프디펜스]생애 처음으로 때리고 맞았다

  • 김현유
  • 입력 2017.03.27 14:39
  • 수정 2017.03.28 13:34

허핑턴포스트에서는 'Self-Defense' 코너를 통해 여성들이 스스로의 강인함을 단련할 수 있도록 '자기방어'를 소개했습니다. 이번에는 평소 '힘이 약하고, 근력이라곤 하나도 없던' 허핑턴포스트의 여성 에디터 두 사람이 직접 '자기방어' 훈련에 도전했습니다.

'셀프디펜스 기획'의 하이라이트는 '스파링'이었다. 한 달 간의 복싱 훈련은 우리 두 사람의 스파링으로 마무리될 예정이었다. 어쩌면 감정이 상할 지도 모르는 그 '주먹다짐'을 우리 두 사람이 굳이 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직접 공격도 하고 방어도 해 봐야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때리고 맞지 않아도 안전한 세상이라면 참 좋겠지만.

한국에서 여자로 살면서 누군가를 때려 볼 일이 몇 번이나 있었겠는가? 우리 두 사람 역시 살아오는 동안 남을 때리고, 남에게 맞아 본 경험이 전혀 없었다.

종종 영화나 만화에서는 괴한으로부터 공격받은 여성이 자신도 몰랐던 괴력을 발휘하는 일이 그려진다. 그러나 남을 한 번도 때린 경험이 없는 사람이 갑작스런 공격을 받으면 몸이 굳어버린다. 당연하지만 방어 자세를 취할 수도 없다.

우리는 괴력을 가지지는 못했으니까!

여성 호신술(ASAP) 보조 강사 권민정 씨는 운동을 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한국에서 여자로 살다 보면, 몸을 쓸 일이 별로 없잖아요. 신체적 훈련을 할 일이 거의 없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내가 몸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자체를 잘 몰라요. 몸으로 부딪히는 훈련을 해보면 '내 몸은 뭐가 되고, 뭐가 잘 안되고'를 알게 되거든요. 저는 이런 걸 '작은 승리'라고 표현해요.

그 '작은 승리'를 위해 지금까지 그렇게 온 몸에 알이 배겨 가며 고생했던 것이었다. 허공에 대고 때리는 연습은 제법 했다고 생각했는데, 스파링은 무서웠다. 때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맞기도 해야 하니까.

그래서 지난 주까지는 제자리에서 허공에 대고 '원투'를 연습했는데, 이번 주부터는 실제 링 위에서 어떻게 걷고 움직여야 하는지를 중점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제자리에서 뛰는 것에만 익숙해져 있다 보니 처음에는 스텝을 딛고 주먹을 뻗는 것이 매우 어색했다. 관장님의 날쎄고 멋드러진 동작과는 전혀 달랐다.

관장님은 우리를 링 위에 세워놓고, 서로를 노려보며 링 위를 빙빙 돌면서 주먹을 뻗으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낙엽만 굴러가도 웃긴 스물여섯 살인데 서로를 바라보면서 그 어색한 동작을 반복하게 하다니, 제대로 연습을 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마음을 다잡고 서로를 노려보다가도 풉, 하고 웃음이 터지는 일이 반복됐다.

"그래가지고 둘이 스파링 할 수 있겠어요?"

관장님은 어이없다는 듯 우리를 보고 그렇게 말했다. 우리는 그때까지 스파링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튿날 관장님은 서로 세게 치지 말고, 살짝 치면서 자세 연습을 해 보라고 했다. 우리는 손에 글러브만 낀 상태로 링 위에 서서, 일정한 간격을 두고 그간 배운 자세와 스텝을 활용해 서로 주먹을 주고받았다.

서로를 마주보고 할 뿐, 사실 쉐도우 복싱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다가 윤인경 에디터가 김현유 에디터의 팔목을 툭 쳤다.

윤인경 에디터의 눈이 왕방울만해졌다.

"어머, 어떡해. 미안해요! 괜찮아요? 어떡해."

사실 손목이 누구보다도 튼튼한 김현유 에디터는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웃어넘기고 우리는 쉐도우 복싱을 계속했는데, 링 옆에 서 있던 관장님이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인경 씨, 왜 자꾸 주먹 뻗으면서 눈 감아요? 때리면서 자기가 겁먹으면 어떡해."

윤인경 에디터는 실제로 자신의 주먹을 뻗을 때마다 눈을 감았다. 주먹이 자기에게 날아와 '쫄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아, 저 못 때리겠어요. 저 제가 맞는 건 상관없는데, 못 때리겠어요. 너무 미안하고..."

"둘이 친해서 그런 건가?"

"현유씨한테 너무 미안하고 못 때리겠어요..."

아까도 얘기했으나 김현유 에디터는 사실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일단 두 사람은 조금도 힘을 주지 않고 꽤 떨어진 거리에서 주먹을 휘두르는 흉내만 내고 있었다. 그렇게 하다가 실수로 팔목을 스치듯 친 것뿐이었는데, 누군가를 공격한다는 것 자체가 윤인경 에디터에게는 싫은 일이었다.

- 윤인경 에디터

이때만 해도 연습하면 익숙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인간은 반복학습의 산물 아니지 않은가? 연습은 뒤통수치지 않는다고 믿고 싶었다. 맞으면 몸은 반응했지만 감정적 리액션은 없었다. 당한 만큼 갚아줘야 한다지만 진심으로 그런 마음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주먹이 나갈 때면 상대방 걱정을 먼저 했고 원투 치면 쓰리포 칠 시간에 상대방의 안의를 살폈다.

“인경씨 겁먹지 마!” 정말 수 없이 많이 들은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쿨하게 멋있게 맞았는가... 그것 또한 아니다. 맞으면 움츠려들고 겁은 겁대로 먹었다. 단지 맞는 것에 정신 적 스트레스는 덜 받았을 뿐…

스파링 할 자신이 없었다. 체력은 운동을 하면 할수록 늘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정신적 트레이닝은 어떻게 받는 건지 어떻게 노력을 해야 하는 건지 시작점부터 잡히질 않았다.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내가 복싱 프로젝트에 참가한 이유는 육체적 변화보다는 정신적 탈바꿈을 꿈꿨기 때문이다. 걸크러시를 뿜어내는 그런 센 언니가 되고 싶었다. 꿈은 이루어질까?

강해지고 싶었다.

정신적 난관에 봉착했지만 우리의 신체적 변화는 놀라웠다. 김현유 에디터는 처음으로 도움 없이 윗몸일으키기에 성공했다 - 무려 열 개나!!! 우리 몸에 아주 희미하게 근육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의 첫 스파링이 다가왔다.

- 김현유 에디터

사실 정말 별 생각이 없었다. 전날도 내일 스파링 하지, 하고 잠들었다. 하긴 애초에 나는 '체육적인 활동'에 대해 생각을 안 한다. 그런 생각이 있었으면 학교 다닐 때 체육 9등급은 안 받았겠지... 당연히 내가 잘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마음 편하게 임하기로 했다.

그러나 스파링 당일, 관장님이 상대를 지정해준 순간 나는 급격히 얼어붙었다.

지난 주, 우리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은 두 여성분의 스파링을 기억하는가? 그 스파링에 임한 한 분이셨다. 2년 가까이 복싱을 해 오셨다고 한다.

관장님은 여성분께 "평소보다 살살 해 주세요" 한 뒤 "힘의 약 99퍼센트?"하고 진짜 솔직히 얄밉게 웃었다.

관장님이 헤드기어를 씌워주는데 입 안이 바짝바짝 말랐다. 지난 주 저 분이 어떻게 주먹을 뻗으셨는지, 난 아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의사선생님 이게 뭔가요 숨이 가쁘고 열이 나요... 그러나 짐짓 태연한 척 총총 링 위에 올랐다.

그리고 종이 쳤다.

마주보고 섰는데 여성분의 눈빛이 너무 무서웠다. 눈빛, 정말 눈빛이 중요하다는 1차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도 나의 큰 키를 살려서 기발한 공격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기발한 공격은 개뿔, 내가 언제는 키가 작아서 자기방어를 못 했나? 나는 말 그대로 아주 '털렸다'.

평생 살면서 턱이 저렇게 꺾여본 적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몇 차례나! 한참 맞다 보니 내 자세가 잘못돼서 턱이 공격받기 더 쉽다는 2차 깨달음을 얻었다.

그렇게 몇 대 맞고 나니 머릿속으로 이 순간에는 잽을 뻗고, 여기서 아래로 투를 내밀고, 라는 생각이 들기는 무슨. 아주 어린 시절 동네 할아버지가 분리수거가 이뤄지지 않아 엉망이 된 쓰레기장을 보며 한 말 "역시 이 인간들은 쳐 맞아야 정신을 차려!", 유명한 웹툰 짤 "맞는 말 했네, 쳐 맞는 말!", 아이돌 그룹 배드키즈의 명곡 '귓방맹이' 등 온갖 '쳐 맞는' 것들만 떠올랐다. 이제 다시는 '쳐 맞는'다는 말을 듣고 웃지 못할 것 같은 그 순간에 드디어 종이 쳤다.

헤드기어를 벗었는데 땀과 콧물과 침이 온 얼굴에 범벅이었다. 더럽다는 생각도 안 들었다. 아주 멍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있었다.

세수를 하고, 정신을 차리고 돌아오니 아까의 그 여성분이 나에게 걱정스런 얼굴로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내가 생각해도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괜찮다고 했다. 여성분과 관장님은 나에게 턱을 많이 맞아 내일 목이 많이 아플 테니 반드시 파스를 붙이라고 했다. 나는 감사하다고 말했다.

- 윤인경 에디터

스파링 당일, 예고도 없이 생리가 터졌다.

아침부터 찌릿찌릿 오는 허리 통증에 식은땀이 났다.

이런 날 스파링이라니… 정말 최악의 조합이었다.

김현유 에디터가 먼저 링 위에 올라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동료가 맞을 때마다 내 얼굴은 일그러졌고 고개가 들릴 때마다 크게 다치는 것 아닌가? 맘이 조마조마했다.

그 순간, 다음에 내 차례가 오는 것이 두렵기보다는 동료를 걱정하는 마음이 훨씬 컸던 것 같다.

시간은 야속하게도 참 천천히 갔다.

라운드가 끝났다는 종소리가 울리고 김현유 에디터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었지만 얼굴은 되레 하얗게 질려있었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이제 내 차례구나. 그 순간 허리가 찌릿했다. 망할 생리…

내 스파링 상대는 미스터리의 인물이었다.

키는 김현유 에디터와 비슷했고 그녀의 단련된 몸은 나를 제압했다. 무엇보다 스파링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는 극과 극이었다.

가볍게 몸풀기로 링을 오르던 상대와는 달리 난 인생에서 가장 격한 3분을 앞두고 있었다.

라운드를 시작하는 종이 울렸고 시야는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존심이 허락한다면 3분 동안 도망만 다녀도 괜찮을 것 같았다.

최소한의 활약 - 그것이 무엇이든 해내야 했다.

‘상대가 나보다 키가 크니 난 공격적으로 다가가야 해!’

‘지금이야! 지금! 잽! 잽잽! 아래로 투!’

머리로 격동적이게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을 때 물론 시공간이 날 위해 멈춰주지 않았다.

즉 난 열심히 맞고 있었다는 말이다.

‘원투 원투’는 나에게 오는 공격일 뿐이었다.

후반부에 다다랐을 때 너무 많이 맞아 더 맞을 체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 순간 내가 날린 잽이 상대의 얼굴에 정확히 맞았다!

소리부터가 달랐던 나의 한 타! 그 순간 복싱장이 환하게 빛났고 그 중심에는 내가 있었다.

그렇게 우리의 첫 스파링은 끝이 났다.

- 김현유 에디터

인생 첫 스파링을 경험한 다음 날, 나는 새로운 깨달음을 한 가지 얻었다.

나는 꽤 강골이었다!

온통 얻어터지고 특히 턱을 그렇게나 많이 맞아서 목이 그렇게나 많이 꺾였는데, 관장님과 여성분의 경고와 달리 파스도 안 붙이고 잤는데, 멀쩡했다. 복싱 2년 정도 한 여성분께 얻어터지는 게 이 정도라면 그 순간엔 멍했지만 할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스파링을 해 보지 않았다면 평생동안 몰랐을 사실이었다.

기획은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계속 복싱을 다니면 좋겠다 싶었다. 그렇게 한다면 '셀프 디펜스',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다음 주에 계속.

[허프 셀프디펜스 기획]

#1 우리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링에 오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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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잠자던 근육이 천천히 깨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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