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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을 아기에게 설명하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는 걸 난 깨달았다

  • 김태성
  • 입력 2017.03.24 14:04
  • 수정 2017.03.24 14:11

***이 글의 필자는 아빠이자 의사다.

만 한 살이 넘은 아들이 내 말을 알아듣기 시작했다. 매우 행복한 순간이지만 걱정되는 바도 없지 않다. 즉, 이 포악한 세상을 아이에게 설명해야 할 거라는 사실 때문에.

시작은 이랬다. 난 아들에게 함께 읽던 책의 페이지를 넘겨달라고 했고 아들은 그렇게 했다.

그러나 바로 그 행위로 모든 게 바뀌었다. 이전까지 나나 아내가 아들에게 책을 읽을 때는 실제 의미와 아무 상관 없이 공중을 향한 소리내기에 불과했는데, 녀석이 그 내용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거다. 양망을 신은 여우, 초록색 양이 숨은 장소, 그러펄로의 존재 등에 대해 정말로 궁금해하는 것 같다.

'아들과 대화를 하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처음에는 기대감이 컸다. 시사를 논하고 가족의 일가를 상의하며 고양이 밈을 공유할 거라는 생각에서 말이다. 그러나 현실이 나를 강타했다. 어둡고 암울한 답을 줄 수밖에 없는 그런 질문을 하기 시작할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선 현세의 지정학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느냐가 문제다. 소수인종을 도매로 비인간 취급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수많은 사람이 있다는 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기후변화에 대해선 또 어떻게? 어른들의 나태함 때문에 환경적 재앙을 상속하게 됐다고 어떻게 설명하느냐 말이다.

하지만 정말로 시급한 건 그런 게 아니다. 그런 문제는 아들이 만 2살 될 때까지 기다려도 된다.

언어를 익혀가는 단계에 있는 꼬마에게 욕설의 한계를 어떻게 가르치나? 사실 우린 아들 근처에선 욕을 자제하려고 요즘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뿐 아니라, 가족, 친구, 심지어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까지 모든 사람의 대화에 욕이 섞여 있으므로 그 효과가 의심된다.

물론 이런 저급 언어의 영향력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일 수도 있다. 점잖은 언어를 사용하겠다는 의도가 우리를 위선적인 부모로 만드는 것은 아닌지가 오히려 걱정된다.

사실 가장 큰 문제는 책이다. 이전에는 아무 걱정이 없었다. 우리가 신문의 경제면을 읽었다 해도 아들은 차이를 몰랐을 테니까. 녀석에겐 우리의 목소리가 중요했던 것이지 그 내용은 상관없었다. 하지만 그 시절은 지나갔다. 그리고 난 요즘 아들에게 뭐가 잘못 주입될까봐 조마조마하다.

최악은 동요가 담긴 책이다. 어느 친구가 좋은 의도에서 동요로 가득한 책을 아들에게 몇 달 전에 선물했다. 이 책의 파워를 깨달을 수 있는 시점 훨씬 전에 말이다. 이 책에 대한 아들의 중독증은 부인할 수 없다.

물론 동요를 부르는 엄마 아빠의 음치 목소리를 즐기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을 너무나 좋아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책이 눈에 띄는 순간, 그 작은 힘을 다하여 커버를 펴고 읽어달라고 조른다.

물론 현재까지 아들의 짧은 생애 내내 그랬듯이 우린 녀석이 바라는 대로 한다. 그러나 요즘은 그 동요 때문에 내 마음이 편치 않다.

여성혐오적이고 가부장제적이며 서양인 관점에서 모든 것을 평가하는 매우 제국주의적 내용으로 도배됐다. 절대 쫓으면 안 될 이념이라고 앞으로 아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그런 내용으로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난 런던에 대한 노래를 끊임없이 아들을 위해 부른다. 런던의 허름한 다리, 가정 폭력, 봉건주의 귀족들 등에 대해 또 부르고 부른다.

한 동요에 등장하는 의사는 얼마나 악독한지 소녀의 인형을 먼저 약으로 취하게 한 뒤 병을 고치러 왕진했다고 돈을 요구한다. 의사인 내가 내 직종을 욕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래서 나쁜 내용이 담긴 동요는 될 수 있는 한 피하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모든 동요를, 또 세상의 모든 끔찍한 뉴스를 아들과 함께 직면하게 될 거다. 부모의 역할 중의 하나가 아이가 이 냉엄한 현실을 두려움 없이 맞설 수 있게 돕는 것 아닌가. 그때 내게 그런 걸 설명할 용기가 있길 바란다. 왜냐면 우리 아이들은 모든 걸 이해할 권리가 있으니까.

아래 슬라이드는 옆으로 밀면 된다.

 

*허핑턴포스트AU의 글을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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