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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임금불평등이다

임금불평등은 어쩌면 지금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사회문제다. 무슨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자리를 차지하느냐에 따라 삶의 조건이 배 이상 차이가 난다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 난다. 일을 더 잘하거나 의미있게 하는 데는 관심이 없어질 수밖에 없다. 저임금 상태가 지속되면 청년과 청소년은 자신을 성장시킬 기회를 잃고 만다. 여성 가장들은 만성적인 빈곤에 시달린다. 경력이 단절된 중년들은 되돌아갈 힘을 얻지 못한다. 대선 경쟁이 달아오르면서 대선주자들도 문제의식을 갖고 다양한 해법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 발 딛고 있지 못한 모습이다.

  • 이원재
  • 입력 2017.03.22 07:26
  • 수정 2018.03.23 14:12
ⓒMachineHeadz via Getty Images

희망제작소에서 여는 사다리포럼에서 답답한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서울시내 마을버스와 학원 등의 셔틀버스 기사 노동실태조사를 한 결과, 그들의 월평균 실제 수입이 155만~185만원에 그친다는 내용이었다. 시내버스 기사는 비슷한 일을 비슷한 시간 동안 하지만 두 배가량의 월급을 받는다고 한다. 마을버스 회사와 학원들이 영세하고 불안정해서다.

이제 불평등 문제를 빼놓고는 한국 경제를 이야기하기 어렵게 됐다. 그런데 서울시내 버스기사 사례에서 보듯, 이는 단순히 격차가 커졌다는 문제가 아니다. 공정한 분배가 어려워졌다는 문제다.

버스기사뿐인가. 지역에서 민간 비영리단체 소속으로 일하는 사회복지사 같은 분들은 분명 공무원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으면서 낮은 임금과 2년마다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불안정성에 시달린다. 중소기업 직원의 월급은 대기업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워낙 임금불평등이 크다 보니, 한국의 저임금 노동자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미국에 이어 둘째로 높다.

임금불평등은 어쩌면 지금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사회문제다. 무슨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자리를 차지하느냐에 따라 삶의 조건이 배 이상 차이가 난다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 난다. 일을 더 잘하거나 의미있게 하는 데는 관심이 없어질 수밖에 없다. 저임금 상태가 지속되면 청년과 청소년은 자신을 성장시킬 기회를 잃고 만다. 여성 가장들은 만성적인 빈곤에 시달린다. 경력이 단절된 중년들은 되돌아갈 힘을 얻지 못한다.

대선 경쟁이 달아오르면서 대선주자들도 문제의식을 갖고 다양한 해법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 발 딛고 있지 못한 모습이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최저임금제 강화다. 이재명 성남시장, 심상정 정의당 대표,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은 모두 최저임금을 2020년까지 시간당 1만원으로 올린다고 한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법제화를 통해 빨리 1만원을 달성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최저임금은 2007년 3480원에서 올해 6470원까지 올랐다. 한편 최저임금 사각지대도 따라서 커졌다. 2006년 최저임금 미만 노동자 수는 144만2천명이었는데, 2015년에는 222만2천명으로 늘었다. 노동자 10명 중 1명이 최저임금 미만을 받는다. 상당수가 작은 가게나 식당에서 일한다. 법 만든다고 고치기 쉽지 않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전 국민에게 지급하는 기본소득제를 내놓았다. 하지만 세금을 45조원 더 걷어야 하는데, 국민 1인당 연 30만원어치, 취약계층은 100만원어치 상품권만 주어진다. 엄청난 증세 부담에 비해 당장의 임금불평등을 고치기에는 역부족이다.

문재인 전 대표는 공공부문 일자리를 81만개 늘린다는데, 저임금 늪에 빠진 노동자들이 그 공공부문 일자리에 진입하기는 어차피 어렵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는 중소기업 취업 청년들에게 한시적으로 보조금을 주겠다는 안을 내놓았다. 옳은 방향이지만 명확한 대상과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임금불평등 해소를 위해서는 국가가 저임금 노동자에게 보조금을 직접 지급하는 안을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현재 근로장려금(EITC)이라는 이름으로 제한적으로 운영 중인 제도를 손봐도 좋겠고,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도 좋겠다. 청년/청소년 노동자 6명 중 1명이 최저임금 미만을 받는다. 한국 사회 미래를 고민하는 스타트업과 비영리단체, 사회적기업에서 일하는 이들도 저임금 노동자가 많다. 이들을 떠올리면, 개인에게 직접 소득을 지급하는 정책이 스스로 삶을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정책은 이상을 향하되,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시급한 문제일수록 더 그렇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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