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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건 성교육이 아니다

섹스의 존재만 알 뿐, 그 행위의 의미와 방법에 대해 무지한 호기심만 많은 이들은 포르노를 보며 섹스를 배운다. 폭력적인 게임을 하면 총기를 휘두를 확률이 높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처음으로 섹스라는 행위를 실제적으로 접하는 계기가 포르노라는 사실 자체가 굉장히 위험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피임에 대한 개념도 없고, 청결에 대한 개념도 없고, 상호합의에 대한 개념도 없고, 만족스럽지 않은 섹스에 대한 개념도 없고, 함께 서로의 신체를 탐구할 필요성에 대한 개념도 없다. 그저 한 쪽이 넣으면 다른 한 쪽이 신음을 쏟아내고, 한 쪽의 만족감이 사정이라는 형태로 가시화되면서 끝난다. 그런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 마주하는 섹스이다.

  • 박진아
  • 입력 2017.03.22 13:15
  • 수정 2018.03.23 14:12
ⓒpepifoto via Getty Images

*이 글을 EVE에서 설치한 청소년 '전용' 콘돔 자판기에 반대하는 이들에게 헌정한다.

현재 성인(만 19세 이상)인 사람들은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내가 받았던 성교육은 내가 실제로 살면서 겪어온 성적인 활동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이 나이를 먹고도 아직 성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 섹스를 할 때 콘돔을 써야 한다는 아주 기본적인 정보조차도 어쩌다보니 알게되었거나, 친구들끼리 히히덕거리다가 배웠거나,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다가 깨달은 사람이 대부분이다.

성(性)은 사적인 영역이 맞다. 그러나 적어도 섹스는 또 하나의 인간인 상대방을 필요로 하는 행위이기에 일말의 합의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그런 사회적 합의가 구축되어야 했을 청소년기의 성교육 시간에 우리는 정자와 난자가 아기를 만든다는 이야기만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주구장창 들어왔다.

사실 우리는 모두 다 알고 있었다. 정자와 난자가 '어떻게' 만나는지. 그러나 교내에서 이루어진 성교육은 그 '어떻게'가 내포한 무수히 많은 쟁점들을 언급하는 데에 실패했고, 청소년기까지만 어떻게든 섹스를 못하도록 하고 성인이 되어서는 알아서 하도록 방치하였다.

미완성의 성(性)

정신적 고문과 자기부정의 강요라고 볼 수 있는 전환치료가 마치 유효한 정신적 테라피인 것마냥 받아들여지는 이 비정상적인 사회에서 우리는 성과 섹슈얼리티에 대해 무엇을 배웠을까. 일단 섹스에 '입문'하기 전에 여학생은 노출이 있는 옷을 잘못된 옷차림으로 배우고, '하지 마세요' '싫어요'라고 말하는 방법을 배운다. 그러면서도 남학생은 하지 말라고 하면 하면 안 된다고 딱히 배우진 않는다. 싫다고 말해도 진짜로 싫어하는 것은 아니라 믿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어릴 때부터 여자애를 괴롭히면 '쟤가 너를 좋아해서 그래'라는 남이 나서서 말해주는 변명 뒤에 숨을 수 있었다.

섹스의 존재만 알 뿐, 그 행위의 의미와 방법에 대해 무지한 호기심만 많은 이들은 포르노를 보며 섹스를 배운다. 폭력적인 게임을 하면 총기를 휘두를 확률이 높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처음으로 섹스라는 행위를 실제적으로 접하는 계기가 포르노라는 사실 자체가 굉장히 위험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피임에 대한 개념도 없고, 청결에 대한 개념도 없고, 상호합의(consent)에 대한 개념도 없고, 만족스럽지 않은 섹스에 대한 개념도 없고, 함께 서로의 신체를 탐구할 필요성에 대한 개념도 없다. 그저 한 쪽이 넣으면 다른 한 쪽이 신음을 쏟아내고, 한 쪽의 만족감이 사정이라는 형태로 가시화되면서 끝난다. 그 단순화된 과정에 온갖 시청각적으로 자극적인 요소만 점철되어 온전한 인간인 타인과 함께하는 소통으로서의 섹스를 삭제해버린다. 그런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 마주하는 섹스이다.

극단적인 섹스만 보여주는 포르노를 제한할 수 없다면 적어도 현실에서의 섹스는 어떤 것이고 어떤 요소들을 갖추어야 하는지에 대한 보완적인 교육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것조차 '청소년의 비정상적인 성욕을 자극한다'거나 '원래 없었을 성욕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제공되지 않는다. 청소년기 이후에 우리는 법정이수교육을 제외하고서 성교육을 받을 일이 없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미완성된 성(性)인식은 평생 그 사람의 일부로 남고, 또 그 사람이 마주하는 섹슈얼 파트너에게 영향을 미친다. 섹스에 주입된 음지성은 서로에게 피드백 주는 것조차 여의치 않게 한다. 내가 가진 섹스에 대한 관점이, 혹은 섹스에 임하는 방식이 타인에게 고통을 주지는 않는지 스스로 검열할 기회가 없는 성문화의 답습은 개인의 성향이기도 하지만 구조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차라리 섹스라는 게 사실 별거 없다고, 포르노그라피에서 보는 것처럼 그렇게 격정적이지도 화려하지도 대단하지도 않다고 설파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된다면 적어도 섹스에 대한 경험이 훈장이 되지 않을 테고, 그 훈장을 위해 그리 원하지도 않는 섹스에 임하지도 않을 테고, 사랑을 빌미로 섹스를 강요하거나 강요당하지도 않을 테니까. 단순한 궁금증의 해소를 위해 누군가를 쉽게 이용하거나 자기 자신의 신념을 비자발적으로 져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섹스에서 청소년을 배제하지 말라

청소년은 혹자가 그토록 주장하는 '판단력 있는' 성인이 되기 불과 몇 년 전의 인간이다. 그렇게 다르지 않다. 상황이나 조건이 조금 다를지언정 20년을 조금 덜 채웠다고 해서 그 사람의 삶이 지적으로 결여되어있거나 판단력이 부족하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 나이가 성숙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일상적으로 느끼고 있지 않은가. 온전한 인간이 섹슈얼리티를 존중받을 권리는 천부적인 것이며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성인들의 성적 지향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10대의 섹슈얼리티를 이야기하는 것이 시기상조라고 느낄 수도 있겠으나, 그 폐쇄성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돌이켜보면 답은 쉽다. 그 권리의 회복은 10대부터 시작해야 한다.

한 걸음, 아니 열 걸음 양보해서 설사 통상적인 청소년에 대한 인식 - 아직 인간으로서 미숙하다는 인식 -이 사실이라 한들,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를 거치며 동일한 역사를 조금씩 다르게 배워왔듯 그 연령대에 합리적으로 잘 받아들여질 수 있는 수준으로 정보를 제공하면 된다. 그런데 지금은 애초에 가르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심지어는 그것이 유해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심심찮게 올라오는 성매매업소의 찌라시나 '여동생' '길거리'만 검색해도 뜨는 무수히 많은 성적으로 왜곡된 이미지들은 외면되고, 미완성된 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데이트폭력과 강간과 살인은 축소된 이유로 그 탓을 돌리고, 무례가 무례인줄 모르는 이들에 의해 상처받는 사람들의 고통은 개인적 차원으로 격하된다.

성인이 된 이후로 단 한번이라도 성에 대해 심도 있는 고찰과 공부를 할 기회가 우리에게 있었는지 고민해보자. 우리가 배운 부족한 성교육과 그 대체제로 자리잡은 포르노그라피가 우리의 섹스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마주할 필요가 있다. 다른 방식으로 섹스에 접근했다면 우리가 성문제에 있어서 고민하는 것들 중 상당수를 덜 수 있었을 것이다.

섹스와 쾌락과 상호존중 - 또 그 사이에 존재하는 윤리, 합의, 감성, 호혜성, 관계, 욕구의 주장과 한계선의 설정 등 - 은 '섹스'라는 하나의 행위의 연장선 상에 존재해야 한다. 그 맥락이 재단되고 있다면 다시 연결하기 위해서라도 교육은 필요하며 더욱 더 구체화되어야 한다. 이는 '그래도 청소년이 섹스라니...!'하는 다소 꼰대스럽지만 진심이 담겨있을 수도 있는 피상적인 우려보다 더 큰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이다. 성에 대한 포괄적인 기반의 마련은 비단 청소년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비정상적으로 왜곡되어있는 성문화 전체를 개선해나가기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청소년기 이후 성에 있어서 사회적 합의를 구축할 방법이 없다면, 청소년기부터 시작하는 것이 지극히 합리적이지 않겠는가.

금욕교육은 성교육이 아니다

매해 미(美)보건당국의 예산에서 1000만 달러를 차지하던 금욕교육(abstinence only education)이 성경험 연령대나, 성생활하는 청소년의 수나, 청소년의 임신이나, 청소년의 성병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25년간 미 하원은 약 20억 달러를 '혼전순결교육(혼후관계주의)'에 할애했다. 결국 2016년 2월, 오바마 정부는 2017년의 예산안에서 금욕주의적 성교육에 대한 연방차원의 예산을 전면 삭감하였다. 삭감된 돈은 청소년의 피임교육과 원치 않은 임신을 예방하는 사업 등의 예산증가로 이어졌다. 금욕교육도 사실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우리 나라의 상황을 고려하면 엄청난 개혁이 아닐 수 없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성은 사적인 영역이 맞다. 가장 사적인 영역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히려 가장 사적이기 때문에 한 개인이 충분한 정보와 숙고를 바탕으로 온전히 자신만의 섹슈얼리티를 실현하고 또 선택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의 근간이 되어줄 전반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섹슈얼리티는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날까지 평생을 함께 가지고 살아가는 성격과도 같은 것이다. 미완성된 성이 얼마나 해악적인지 우리는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콘돔을 제공하는 것은 성과 사랑이라는 삶의 요소를 '타락'시키거나, 성관계는 '쉬운' 것이라 주장하는 것과도 다르다. 단 한번도 섹스의 맥락에 대한 교육이 불필요하다고 주장한 적은 없다. 가능하다면, EVE의 청소년 전용 콘돔자판기가 '국민정서'로 인해 차일피일 미뤄진 근본적인 성교육을 하루 빨리 구체화하고 실행하는 촉매의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이 글은 비건 콘돔 브랜드 'EVE condoms' 블로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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