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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아직 깨닫지 못한 日 '저출산 극복' 방법 5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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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 나가타초 지역은 국회의사당, 총리 관저 등이 위치한 일본 정치의 중심지다. 총리 관저 맞은편 내각부본부 건물 2층 220호실 앞에는 ‘1억 총활약 추진실’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1억 총활약 플랜’으로 불리는 아베 정부의 저출산·고령화 정책을 총괄하는 전담조직이다.

일본은 출산율이 1.57까지 떨어진 1989년, 이른바 ‘1.57 쇼크’라 불릴 정도로 전 사회가 충격을 받은 뒤 1990년대부터 일찌감치 저출산 대책을 시작했다. 1994년 ‘엔젤 플랜’이나 1999년 톱스타 아무로 나미에의 당시 남편을 홍보대사로 등장시켜 ‘육아를 돕지 않는 남자를 아빠라고는 부르지 않는다’ 같은 논쟁적인 캠페인을 벌이는 등 20여년간 이런저런 대책을 펴왔지만 저출산 추세를 되돌리진 못했다.

‘1억 총활약 플랜’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보육 지원, 일·가정 양립 정책뿐 아니라 임금과 가계소득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 큰 차이점이다. 청년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일자리와 적절한 수준의 소득이 필수라는 인식이 그 바탕이다. 올해부터 생산가능인구의 감소, 노인 인구와 유소년 인구(0~14살)의 역전, 고령사회 진입이라는 세가지 인구구조 변동의 분기점을 맞고 있는 우리나라가 아직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 ‘저출산 극복’의 비밀 아닌 비밀을 일본에서 찾아봤다.

①임금을 올려라

일본을 상징하던 ‘종신고용’ ‘총중류사회’(인구 대부분이 중산층인 사회) 등은 옛말이 됐고, 최근에는 우리나라 못지않게 비정규직과 소득불평등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상태다. 전체 노동자 중 비정규직 비율이 37.5%에 이르고, 비정규직 임금은 정규직의 56.6%밖에 되지 않는다.

고용과 소득의 불안정은 청년층의 만혼과 비혼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1일 만난 다케다 고스케 1억총활약추진실 내각참사관은 “비정규직의 대우가 낮은 것을 저출산의 한 원인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2일 각의(국무회의)에서 결정된 ‘1억 총활약 플랜’은 “희망출산율 1.8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일하는 방식의 개혁’을 3년간의 최대 도전과제로 삼아야 한다”며 “비정규직 노동자의 대우 개선을 더욱 철저하게 할 필요가 있으며 ‘동일노동 동일임금’, 장시간 노동 시정, 다양한 일하는 방식, 65살 이후의 계속 고용 등을 추진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비정규직의 임금을 정규직의 70~80%로 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비정규직 관련 각종 법안(노동계약법, 파트타임노동법, 노동자파견법)에 들어 있는 ‘비정규직에 대한 비합리적인 차별 금지’ 원칙의 정확한 운용을 위한 정부 가이드라인을 지난해 12월 만들었다. 임금, 복지후생 등에서 어떤 것이 불합리한 차별인지를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한 지침이다.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대한 정부의 강한 의지를 보여줬다고 평가된다.

또한 아베 정부는 최저임금(올해 822엔)을 경제성장률을 고려하면서 매년 3% 정도씩 올려 전국 가중평균이 1000엔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겠다고 밝혔다. 실제 지난해 일본은 최저임금을 3% 인상했는데, 이는 물가변동이 거의 없는 일본 경제여건을 고려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아베 정부는 아베노믹스 이후 일본 기업들의 수익성이 점차 좋아지자, 기업들에 지속적으로 임금인상 압박을 가하고 있기도 하다. 임금인상을 통해 가계소득을 올리는 것은 지속적 경제성장과 저출산 극복이라는 두가지 목표 모두를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 아베 정부의 인식이다. 다케다 내각참사관은 “2단계 아베노믹스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1단계 아베노믹스의 경제 성과가 육아, 사회보장, 개호(노인간병)에 더 많이 돌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며 “임금이 올라가면 소비와 투자가 늘어나 경제가 더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②노동시간을 줄여라

장시간 노동은 출산과 보육의 ‘적’ 중 하나다.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서 돌봄노동을 할 시간과 여유를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일본은 우리나라만큼 장시간 노동 관행이 강한 나라지만, 앞으로는 이를 바꿔나가겠다는 것이 아베 정부 목표다. 후생노동성은 이를 위해 2015년 4월 장시간 노동 감독 강화를 위한 전문가 집단(‘과중노동 박멸 특별대책반’)을 신설하고, 월 100시간을 초과하는 ‘위법한 장시간 근무’가 행해지는 기업의 명단을 공표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지난 1월에는 위법한 장시간 근무 기준을 월 80시간 초과로 더 강화했다. 현행법상 노사간 합의만 하면 잔업시간에 제한이 없지만, 앞으로는 제한을 두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재택근무, 유연근무 등 다양한 근무형태도 장려하고 있다.

이런 정책방향에 경제활황, 인력부족 등이 맞물리면서 초과근무를 줄이고 변형근무를 도입하는 기업이 점점 늘고 있다.

정보통신업체인 후지소프트는 직원들에게 재택근무를 적극 장려하고 있다. 직원 5919명 가운데 191명은 상시 재택근무를 한다. 상시 재택근무가 아니라도 갑자기 아이나 부모가 아프다거나, 폭설 등으로 출퇴근에 문제가 생겼다거나 하는 경우 일시적인 재택근무도 할 수 있다. 한달에 한번 재택근무를 하는 직원이 64%, 한달에 1~3번 하는 직원이 25%에 이른다.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제도도 시행 중이다. 이노하라 유키히로 후지소프트 관리본부장은 “초기에는 육아, 간병 등이 필요한 여성 직원을 위한 제도였지만, 지금은 남성 여성 모두 활발하게 이용하고 있다”며 “앞으로 일본에서는 노동시간 단축 문화가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일본항공(JAL)의 구바 다마코 업무방식변혁추진실 부매니저는 “현재 15%인 여성 관리직 비율을 2023년 20%까지 높이는 게 목표”라며 “인사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여성 직원의 경력을 가로막는 문제가 획일적 근무방식과 장시간 노동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일본항공은 근무시간대 선택 제도, 변형근무시간 제도(근무시간을 ‘오늘은 4시간, 내일은 10시간’ 등으로 정할 수 있음. 월간 160시간만 채우면 됨), 재택근무 제도 등을 도입했다. 구바 부매니저는 “도입 초기에는 복잡한 보고 절차와 상사 눈치 때문에 제도를 이용한 사람이 2년 동안 17건밖에 안 됐지만, 지금은 한달에만 이용 건수가 400건이 넘는다”고 말했다. 그는 “분위기가 이렇게 크게 바뀐 것은 회사 내부적으로는 경영진의 강한 의지, 사회적으로는 아베 정부의 정책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일본 최대 자동차회사인 도요타도 지난해 사무직과 연구직을 대상으로 일주일에 2시간만 회사에 나오고 나머지는 집에서 일하는 파격적인 재택근무제도를 도입했다.

③아동수당을 지급하라

아동수당은 일정 나이 이하의 아동에게 지급되는 사회수당의 한 종류다. 아동수당은 자녀양육에 따른 부모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는 실질적 효과와,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국가적 과제로 삼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효과가 모두 큰 정책으로 평가받는다.

일본이 아동수당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것은 민주당 정부 시절인 2010년이다. 현재 아동수당 지급 대상은 ‘중학교 졸업까지 일본 국내에 주소를 두는 아동(15살에 도달한 후 첫 3월말까지)’이다. 0~3살은 월 1만5000엔(약 15만원), 3살 이후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는 1만엔(약 10만원, 셋째 이후는 1만5000엔), 중학생은 1만엔을 지급한다. 단 부부의 연간수입이 960만엔 이상이면 한명당 5000엔으로 줄어든다.

이미 20세기 중후반에 아동수당 지급을 시작한 다른 선진국들에 비하면 도입 시기가 상당히 늦고, 액수도 20만원 안팎인 독일, 프랑스 등에 비해 크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보수 정부인 아베 정부가, 민주당에서 본격 도입하고, 연간 2조엔이 넘는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정책임에도 아동수당을 축소하거나 폐기하지 않고 계속 이어가는 데는 아동수당이 심각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의 스즈키 도루 박사는 “현재 일본의 아동수당은 상당히 미흡한 수준”이라며 “한국은 저출산 극복을 위해서는 일본 수준을 뛰어넘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아직 아동수당이 도입도 되지 않았다.

④여성을 춤추게 하라

경제발전 정도에 비해 남녀평등은 상당히 뒤떨어졌다는 점도 일본과 우리나라의 닮은 점이다. 여성의 경제활동참여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아주 낮은 수준에 속하고, 민간기업의 과장 이상 중 여성 비율은 9.8%에 불과하다. 이는 남자는 장시간 노동을 하는 회사를 다니며 돈을 벌어 오고, 여자는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가정 모델로 여겨져온 탓이다. 하지만 일과 가정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사회 분위기에서는 출산을 포기하는 여성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양성평등이 정착한 나라에서는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와 출산율이 동반상승하는 경향을 보인다.

아베 정부는 “직장에서 활약하기를 희망하는 모든 여성이 자신의 개성과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2015년 8월 ‘여성활약 추진법’(여성의 직업생활 활약 추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지난해 4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이 법에 따라 노동자 300명 이상의 민간기업, 중앙정부, 지방정부는 여성채용비율, 평균 근속연수의 남녀 차이, 매월 평균 잔업시간 등의 근로시간 상황, 관리직 중 여성 비율 등의 상황을 파악해 공표해야 한다. 향후 달성할 목표 수치와 이를 위한 행동계획도 공개해야 한다.

⑤지방을 살려라

2014년 출간된 <지방소멸>이라는 책을 계기로 일본 사회엔 ‘지방을 살리지 않으면 도쿄도 소멸한다’는 문제의식이 확산된다.

인구감소 추세가 이대로 지속되면 일본 지자체 절반이 2040년 사라지게 된다. 도쿄는 지방의 젊은이들이 유입되는 덕에 아직 인구가 늘고 있다. 하지만 도쿄로 온 젊은이들은 비싼 집세, 장시간 노동 등에 치여 지방보다 더 아이를 낳지 않는다. 결국 지방은 공동화하고, 도쿄는 노인들만 남는 초고령 도시가 된다는 것이다.

모타니 고스케 일본총합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청년들은 젊은 시절 다 도쿄로 올라와 거기에서 노인이 되는데, 노인이 된 뒤에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며 “결국 도쿄는 노인의 절대적 숫자는 많은데 이를 수용할 병원, 복지시설 등은 크게 부족하고, 뒷받침할 젊은 세대도 적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고 말했다.

아베 정부는 ‘지방창생(활성화)’을 내걸고 2014년 ‘마을·사람·일자리 창생법’을 제정했다. “수도권으로의 과도한 인구집중을 시정하고 각각의 지역에 살기 좋은 환경을 확보하여 미래에도 활력이 넘치는 일본 사회를 유지해나간다”는 것이 법 제정 취지다. 지난해에는 ‘마을·사람·일자리 창생 종합전략’을 만들어 지방창생 추진 교부금, 거점 정비 교부금, 기업판 고향세 등을 새로 만들고, 지역 일자리 창출, 정부 기관의 지방 이전, 지방대학 진흥 정책 등을 추진하고 있다. 라이 아유미 내각관방 마을·사람·일자리 창생본부 사무국 차장은 “최근 지방으로의 이주 상담과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역시 지자체 3분의 1이 30년 뒤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다. 인구가 몰려 있는 서울의 출산율은 전국 평균(1.17)보다 훨씬 낮은 0.94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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