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어머니 내친 이재용...삼성가 내홍 불거진 ‘리움' 앞날은?

“전광석화였다. 불길한 예감은 있었지만, 이렇게 신속하게 제압할 줄은 몰랐다.”

지난 6일과 8일 국내 미술계 최대 실력자인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과 홍라영 부관장이 잇따라 퇴진한데 대해 리움 사정에 정통한 삼성가 내부 관계자는 “찍어내기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일으킨 나비효과에 리움이 유탄을 맞았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홍 관장 아들이자 삼성그룹의 실질적 총수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사법처리될 처지에 놓이자 경영권 방어를 위한 선제적 조처를 취했다는 시각이었다. 홍씨 자매가 사퇴한 지 1주일여가 지났지만, 리움을 관장하는 삼성문화재단 직원들은 여전히 충격과 불안감에 얼어붙어 있다. 관장, 부관장 사퇴가 사실상의 ‘퇴거’라는 정황이 짙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리움 주요 부서에 대한 대대적인 인력감축 설도 떠돈다. 그룹 쪽 내부 관계자는 6일 나온 퇴진 보도자료가 홍 전관장이 관여해온 재단 보도자료 서식이 아니었다고 했다. 퇴진 보도자료는 ‘홍라희 삼성미술관 관장은 일신상의 이유로 3월 6일(월) 삼성미술관 리움과 호암미술관 관장직을 사퇴하기로 결정했음 - 이상 -’이라는 문구 한줄로 끝난다. 그룹 비서실 등에서 쓰는 서식으로 윗선에서 재단 쪽에 보도자료를 배포하라고 지시를 내린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홍 관장 사퇴 직후 재단 쪽은 홍라영 총괄부관장 대행 체제로 당분간 운영될 것이며 기획전시들은 예정대로 한다고 언론 쪽에 밝혔다. 그러나 이틀만에 방침은 뒤집혔다. 홍 부관장도 퇴진하라는 통보가 내려왔고, 홍 관장이 구상한 대가 김환기 기획전도 4월 개막을 앞두고 절반이상 준비가 진척된 상황에서 돌연 취소됐다. 국내 미술시장에서 최고 경매가를 기록하며 최고 블루칩이 된 김환기의 회고전은 홍 전 관장이 진행 상황을 독려할 정도로 애착을 드러낸 전시였는데도 그룹 쪽이 개입해 엎어버린 셈이다.

앞서 이 부회장은 지난해 3월 홍 관장이 분신처럼 공들여 설립한 서울 태평로 삼성생명 건물 안의 플라토 전시장을 건물 매각에 따른 조치라며 폐관한 바 있다. 그룹 사정에 밝은 미술계 한 관계자는 “홍 전 관장이 열정적으로 진력했던 미술관 운영과 전시에 제동을 걸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삼성을 지배하는 이씨 가문의 유대감에 균열이 일어났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짚었다. 지난 16일 이 부회장이 서울구치소에 수감된지 1달만에 홍 전관장이 딸들인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이사와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을 데리고 첫 면회를 간 것도 갈등을 봉합하기 위한 행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재단 쪽은 17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그룹이 어려운 상황에서 합심해야할 이 부회장과 어머니가 갈등을 빚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터무니 없다. 관장과 부관장의 사퇴배경에 대한 어떤 억측들도 사실로 확인된 게 없다”며 갈등설을 전면 부인했다.

재단 쪽의 부인과 달리 재계나 미술계 쪽에서는 앞으로 홍 전 관장 쪽이 미술관 운영에 전면복귀하는 건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적지않다. 국내 미술시장의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은 리움을 수장고 관리와 상설전만 하는 고급 미술품 소장처로 당분간 현상유지 정도만 할 가능성이 크다”며 “지난 10여년간 국내에서 보기힘든 국외 거장 작품전과 기획전을 벌여온 리움의 위상도 위축될 것으로 예상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러나 홍 전관장 쪽이 사태를 마냥 지켜보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는 리움의 실체인 미술품 컬렉션 가운데 상당수 국내외 현대미술 작품들을 자기 소유로 갖고 있다. 2만여점으로 추산되는 삼성가 컬렉션은 남편인 이건희 회장 소유의 고미술 근대미술 컬렉션이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남편의 사후엔 상당수가 홍 전 관장한테 상속돼 소유권이 넘어올 수 있다. 더욱이 이재용 부회장은 실형이 선고되면, 삼성가 지배의 징표이자 계열사 우호지분이 많은 삼성문화재단과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 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이에 비해 홍 전관장은 이 회장의 유고 때 주식 지분 같은 다른 유산들까지 대거 상속받게 돼 그룹 대주주로서 훨씬 큰 영향력을 확보하게 된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인물이 홍 전관장의 맏딸 이부진 씨다. 미술계에서는 그가 앞으로 리움의 후계구도에 본격적으로 등장할 것이란 관측이 고개를 들고있다. 어릴 때 병약했던 그는 홍 전관장이 외국에 직접 데리고 나가 치료를 받게 할 만큼 모친의 애정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원여중 시절부터 미술을 공부한 그는 호텔의 컬렉션 수집을 관리하면서 이현숙 국제갤러리 회장 등 미술계 인사들과도 교분을 지속해왔다. 이씨는 그룹 내 지분이 거의 없지만, 이 회장의 유고 등으로 모친의 영향력이 커질 경우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관련기사

홍라희는 한국 미술의 구세주인가 적폐인가?

(이미지를 클릭하면 관련 기사로 들어갑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사회 #경제 #삼성 #이재용 #홍라희 #홍라영 #리움 #미술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