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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의 중요성은 한국전쟁 당시 국제 관계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반도 외교 환경이 심상치 않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첨예화되고 있다. 일본은 우리와의 관계가 틀어진 지 오래고, 러시아도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지난 수 년 간 우리의 외교는 방향을 잃었다는 평가를 받곤 한다. 특히 구한말 상황에 빗대어 지금 정신 차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냉전 시기에 가장 뜨거웠던 전쟁 중 하나인 한국전쟁도 강대국들의 외교 전략과 전술이 충돌한 결과였다. 당시 상황을 통해 얼마나 국제 사회가 냉정한지, 왜 외교가 중요한지를 알아보도록 하자.

1. 영국은 파병했으나 중국에 우호적이었다.

“영국은 미국의 요청을 받고 한국에 파병했으나 기본적으로 트루먼 행정부가 6.25 전쟁에 너무 깊이 관여하는 것이 서유럽 안보를 위태롭게 한다는 이유로 이를 견제했다. 당시 노동당이 집권 중이던 영국은 중국과 국교를 수립했기 때문에 중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이 때문에 뒤에서 살펴보는 바와 같이 중요한 사안마다 영국은 미국의 6.25전쟁 수행 방식에 관해 발언권을 행사하려고 했다.” (책 ‘6.25전쟁과 미국’, 남시욱 저)

한국전쟁 당시 우리를 도와주러 왔던 국가들 중 영국이 있다. 그런데 저자에 따르면 영국은 중국과 국교를 맺은 상태였기 때문에 중국 편에 설 경우까지 있었다고 한다. 특히 영국은 미국을 견제하고 싶은 욕구가 강했다. 외교는 이 정도로 복잡한 것이다. 물론 국익이 최우선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어렵지는 않다. 영국에게는 다소간의 친중 노선이 자신들의 국익에 부합했다.

2. 미국 내에서 유럽 우선주의와 아시아 중시주의가 충돌했다.

“웨스트포인트 최우수 졸업생이자 1차 세계대전 당시 이미 전쟁 영웅이던 맥아더는 변변한 학교 교육도 제대로 못 받은 트루먼이 군사 문제 특히 극동의 군사 정세에 어둡다고 판단했다. 그는 트루먼이 한 번도 아시아를 방문한 적이 없는 점을 들면서 그의 아시아 정책을 마음속으로 경멸했다. 맥아더는 …. 트루먼 행정부의 유럽 우선정책을 비판하면서 아시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책 ‘6.25전쟁과 미국’, 남시욱 저)

트루먼 대통령과 맥아더 사령관은 사사건건 충돌했다. 그 근본 원인은 외교 정책을 둘러싼 이견과 갈등이다. 트루먼은 유럽을 우선시했고, 맥아더는 아시아를 중시했다. 거기에 개인적인 경멸까지 겹치면서 둘 사이의 갈등은 결국 트루먼이 맥아더를 해임시키게까지 만든다.

3. 애치슨 라인은 중국을 소련으로부터 분리하고자 나왔다.

“…. 1950년 1월 애치슨의 프레스센터 클럽연설은 한국을 태평양 방어선에서 제외해 논란이 일었지만 연설의 초점은 원래 중국 문제에 있었다. 애치슨이 이 연설에서 노린 진짜 의도는 중국을 소련으로부터 분리시켜 유고화하는 데 있었다. 그는 이 연설에서 타이완을 미국의 태평양 방어선에서 제외시켜 중국의 타이완 해방을 용인하는 듯한 발언을 하고 소련이 중국 북부 4개 성에 대한 영토적 야심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함으로써 제국주의 세력으로 규정했다. 그는 러시아의 전통적 제국주의에 공산주의라는 새로운 이념과 새로운 기술로 무장시킨 소련의 팽창주의를 맹렬히 비난함으로써 중국인들의 반소감정을 부추겼다.” (책 ‘6.25전쟁과 미국’, 남시욱 저)

우리 역사 시간에도 애치슨 라인이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한국과 타이완을 미국 방어선에서 뺀다는 것을 발표하여 북한이 맘 놓고 남침을 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 주류다. 물론 애치슨 라인을 통해 미국이 일부러 전쟁을 유도했다고 보는 소수 의견도 있다. 저자는 애치슨 라인에서 중요한 것은 한국이 아니라 중국이라고 본다. 독자적인 공산 국가로 중국을 만들어서 소련 영향력을 줄이려는 의도였다는 설명이다.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마오쩌둥은 중국을 아시아의 유고(소련으로부터 영향을 덜 받았던 공산국가)로 만들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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