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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프 셀프디펜스] 잠자던 근육이 천천히 깨어나기 시작했다

  • 김현유
  • 입력 2017.03.16 07:56
  • 수정 2017.03.16 08:12

허핑턴포스트에서는 'Self-Defense' 코너를 통해 여성들이 스스로의 강인함을 단련할 수 있도 록 '자기방어'를 소개했습니다. 이번에는 평소 '힘이 약하고, 근력이라곤 하나도 없던' 허핑턴 포스트의 여성 에디터 두 사람이 직접 '자기방어' 훈련에 도전했습니다. 그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지옥 같은 복싱 첫 날을 마치고 아침이 밝았다.

- 김현유 에디터

알람이 울기 전에 깼다. 흔치 않은 일이다. 눈만 떴을 뿐 몸을 일으키진 못했다. 오른쪽 종아리 부터 양쪽 허벅지, 엉덩이, 골반, 배, 팔뚝, 그렇게 온 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오늘 회사를 가면 또 복싱을 가야 한다.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리면 좋겠어...

신세경에 빙의해 멍하니 복싱 때문에 회사에서 도망치는 상상을 했다. 그 때 알람이 울렸다. 핸드폰에 커다랗게 알람 메시지가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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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차 에디터는 갑자기 셀프 디펜스에 대한 열정이 불탔다. 그래. 이 위험한 세상, 난 할 수 있어! 알람을 껐다. 그리고 기지개를 켜... 지 못했다.

오른쪽 다리에 쥐가 났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비명을 지르며 다리를 들었나놨다 하다가 절뚝대며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 윤인경 에디터

내 몸이 내 마음대로 안될 때 우리는 고통스럽다. 복싱을 시작한 후 첫 한주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난 아침형 인간이 아니다.

해가 중천에는 떠야 휴식을 취한 것 같은 나에게 이른 아침, 그것도 몸이 너무 아파서 마음을 다스려도 움직일 수 없는 아침은 정말 최악이었다.

출근길 팔조차 펼 수 없는 만석인 지하철은 피도 눈물도 없는 전쟁터였다.

그 누구도 내 몸을 건드리지 않길 간절하게 기도했지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였다. 피멍이 든 온몸을 이리저리 쿡쿡 찔리는 듯한 고통은 30분 내 기약 없이 이어졌다. 역에 도착하니 좀 낮겠구나 했지만.. 세상은 나에게 관대하지 않았다. 계단을 무려 6번이나 오르락내리락 해야 했다. 공덕역은 누가 설계했는가? 그분, 참으로 야속했다.

회사에서도 일이 손에 잡힐 리 없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오늘만큼 점심시간이 오지 않길 바란 적은 처음이다. 그러나 이런 얄궂은 상대성 이론. 이런 때일수록 시간은 빠르게 가는 법이다. 슬슬 옆자리 뒷자리 선배들이 식사를 하러 갈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저 멀리 있던 우리는 눈이 마주쳤지만 피했다. 가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하지 만...

집에서 버스 타러 가는 거리는 그리도 멀게 느껴졌는데, 이상하게도 체육관까지는 놀랄 만큼 순 식간에 도착했다. 그리고 체육관 앞에는 어제까지 깨닫지 못한 문제가 있었다.

체육관은 3층이었다.

오른쪽 다리가 저릿했다. 순간 도망칠까, 라고 생각했지만 혼신의 힘을 다해 계단을 올랐다.

계단만 올랐는데도 벌써 오늘의 운동을 마치기라도 한 것처럼 온 몸이 아파왔다. 체육관 문을 열기가 두려웠다.

다행히 전날만큼은 빡세지 않았다. 관장님은 오늘은 웨이트보다 복싱 위주로 진행하겠다고 했다 . 스트레칭과 줄넘기를 한 뒤, 손에 감는 붕대를 배부받고 감는 법을 배웠다.

갑자기 레벨업된 것 같은 기분!

이어 어제 짧게 배웠지만 스텝을 제대로 밟지 못했던 원투 동작을 연습했다.

무릎을 굽히고 오른쪽 발꿈치는 항상 뗀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기본 자세다. 써놓고 보니 별 거 없지만, 이 심플한 동작을 연습하며 우리는 매우 심각했다. 땀이 비 오듯 흘렀다. 발꿈치 좀 뗐을 뿐인데 오른쪽 종아리가 유독 끊어질 것 같았다. 하루만에 그 자세를 또 잡자니 오른쪽 종아리에 마비가 오진 않을까 불안했다.

그러다 보니 거울 속 내 모습이 얼마나 어색한지, 우리는 각자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관장님 눈치만 봤다.

여전히 아팠지만, 신기하게도 그 전날마냥 체육관을 나설 때 황당한 웃음만 나오진 않았다. 오히려 진심어린 웃음이 나왔다. 잔뜩 아픈 다리로 계단을 내려오는 서로의 모습에 빵 터진 것이다.

그리고 곧 배를 움켜잡았다. 입꼬리가 올라갈 때마다 배 근육이 당겨왔다. 입으로는 "아이 참 그러니까 웃기지 좀 마요" 하는데 한 번 터진 웃음은 멈출 줄 몰랐고 배는 계속 아팠다. 그러나 컨디션은 확실히 어제보다 괜찮았다.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었다.

나흘쯤 지나자 더 이상 오른쪽 종아리도 아프지 않았고, 웃을 때 배가 당기지도 않았다. 우리는 체육관에 가는 걸 조금은 덜 두려워하게 됐다.

거침없이 원투원투

선배들은 생각보다 잘 다닌다며 신기해했다. 물론, 우리는 이제 계단도 편안하게 오를 수 있었다. 오른쪽 종아리는 이전보다 훨씬 덜 아팠다. 복싱을 하는 거울 속의 나 역시 조금은 덜 어색했다.

이젠 좀 진지하고,

뛰기도 잘 뛴다.

물론 적응은 됐다 한들, 학창시절 체육 꼴찌였던 김현유 에디터에게는 여전히 웨이트가 쉽지 않았다. 한때의 발레샛별이던 윤인경 에디터는 열심히 동기를 이끌어 주었다.

이인 일체 되어 윗몸일으키기

그리고, 인간은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동물이다.

관장님은 아무리 서로를 붙잡고 노력해도 푸시업은 안 되던 우리를 대형 고무줄에 묶어 강제로 위로 올라가도록 했다.

동기의 손길과 고무줄의 도움으로 우리는 조금씩 웨이트도 늘려 나갔다.

그렇게 또 한 주가 흘러갔다. 알은 웬만큼 풀렸고, 처음보다 웨이트는 아주 조금 더 할 수 있게 됐으며 복싱도 어색하지만 '원 투'까지는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점심으로 계란 같은 것만 먹다 보니 살이 빠지는 것도 느껴졌다. 어느 정도 몸이 적응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복싱을 시작한 이유는 웨이트 실력을 늘리거나 살을 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오늘은 스파링 경기 한 번 볼게요."

그렇게 말하고 관장님은 우리를 링 앞에 앉혔다. 이전부터 현란한 주먹으로 체육관 회원들의 시선을 사로잡던 여성 회원 두 분이 링 위로 올라갔다.

관장님은 그분들에게 헤드기어를 씌워주었고, 라운드를 알리는 종이 쳤다. 각각 빨간 색, 파란 색 글러브를 낀 두 사람은 주먹을 맞대고 인사했다.

인사가 끝나자마자 그들은 돌변했다. 경기를 지켜보며 "저 기술이 우리가 배운 거다" 싶은 건 없었다. 우리가 배운 건 '원 투' 뿐이었던 데다가, 그들의 기술은 너무나 다양하고 엄청났다. 우리는 그저 진지하고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그 경기를 지켜봤다.

3라운드까지의 경기가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쳤다. 10여분 간 거칠게 주먹을 주고받던 두 분은 헤드기어와 글러브도 벗지 않고 포옹을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여전히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데, 관장님이 미소를 지으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다음 주부터 두 분도 스파링 연습 할게요."

우리의 표정은 더 심각해졌다.

[허프 셀프디펜스 기획]

#1 우리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링에 오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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