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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따뜻한 '서울대 길고양이 집'을 지었다

서울대 예술복합동 앞 잔디밭에 살고 있는 길고양이 르네. '개냥이'인 르네는 학생들에게 꽤 인기가 좋다.

13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캠퍼스. 오후 6시가 다가오자 예술복합동 앞이 시나브로 북적인다. 재잘대는 목소리로 캠퍼스가 수선스러워졌지만, 잔디밭에 느긋하게 엎드린 삼색고양이의 모습은 한가롭기만 하다.

10여 년 전부터 예술복합동 앞 잔디밭을 지키고 있다는 삼색고양이. 언제나 그래왔듯 여유롭게 학생들을 바라보는 이 고양이는 서울대생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서울대 명물 '르네'다.

자하냥이, 모아캣, 모냥이 등 여러 이름을 가지고 있는 고양이 르네는 예술복합동 앞을 지나다니는 학생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다른 고양이들과 달리 사람을 유달리 좋아하는 성격 덕분이다. 르네는 다가오는 학생들을 피하지 않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애교까지 부린다. 자신의 몸에 손을 대도 그저 가만히 손길을 즐길 뿐이다. 말 그대로 '개냥이'(반려견처럼 애교 많고 사람을 잘 따르는 고양이를 일컫는 말)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서울대 학생들은 자신들에게 선뜻 다가와준 르네와 르네 친구들을 위해 먹이와 물을 챙겨주기 시작했다. 지난해 11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부턴 잔디밭에 텐트가 하나둘 설치됐다. 고양이 몸집에 딱 맞는 작은 텐트엔 단열을 위한 '뽁뽁이'와 이불이 무장돼 있었다. 그리고 지난 2월4일엔 보다 튼튼하고 안락한 길고양이 쉼터 '르네상스'가 멋지게 들어섰다. 학생들의 따뜻한 맘이 모인 결과였다.

르네와 친구들을 위해 멋진 집을 선물할 생각을 한 건 서울대 수의학과에 재학 중인 김민기씨(23). 평소 르네와 친구들을 눈여겨보던 김씨가 친구인 지노진(본명 윤효진·23·안산대학교 건축디자인)과 손잡고 '대냥이 프로젝트'(대학교 길고양이를 위한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SNS를 홍보를 통해 144만원을 모았다. 그리고 목조형가구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모인 '홍대 트리독스'와 함께 약 두 달 만에 길고양이 쉼터를 만들었다.

김민기씨는 "6시간에 걸친 설치작업이 끝나고 길고양이가 들어가 쉬는 모습을 보니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뿌듯했다"면서 "학우들도 좋아해주니 기쁨이 배가 되는 듯하다"고 했다.

지난달 한 학우가 '대냥이프로젝트'에 보낸 사진. 사진은 예술복합동 앞 길고양이들이 토요일 오후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

실제로 길고양이와 사람이 함께 쉴 수 있는 공간이 생기자 학생들은 보다 체계적으로 고양이들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고양이들의 먹이가 떨어지지 않도록 7명의 학생이 모여 당번을 정하기도 했다.

이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김현정씨(19·서울대 자유전공학부)는 "오가면서 고양이들을 유심히 지켜보다 밥을 챙겨주게 됐고, SNS를 만들어 활동하다 보니 뜻이 같은 학우들을 만나게 됐다"면서 "학생들 대부분이 르네와 친구들을 좋아해 우리가 아니더라도 서로 많이 챙겨주곤 한다"고 했다.

기자가 찾아간 날도 어김없었다. 수의학과에 재학 중인 이림씨(21)가 '고양이들에게 주라'며 김씨에게 사료를 선물했다. 평소 르네와 친구들이 너무 예뻐 자주 사진을 찍으러 오기도 한다는 학생이었다.

학생들의 넘치는 사랑과 애정 덕에 르네와 친구들은 털빛이 다른 길고양이들보다 훨씬 반지르르하다. 문제는 사람 곁에 잘 다가가는 성격 탓에 르네가 점점 뚱뚱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웃지 못할 고민거리가 생긴 것이다.

김현정씨는 "르네가 예쁜 행동들을 많이 하고 사람 곁에 잘 머무르다 보니 간식을 얻어먹을 기회가 많아 살이 심하게 쪘다. 그래서 칠판을 만들어 먹이를 줬는지 표시해 중복으로 주지 않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양이와 학생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든 '대냥이 프로젝트'는 이제 2차 설계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번엔 서울대가 아닌 다른 학교의 길고양이를 위해 보금자리를 만들기로 했다. 프로젝트명 그대로 대학교에 살고 있는 길고양이들을 위해서다. 더 나아가서는 길고양이와 공존하는 학생들을 위해서다.

김민기씨는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10개 대학을 목표로 잡았다"면서 "대냥이 프로젝트가 알려지며 다른 대학들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냥이 프로젝트를 위해선 학교 측의 배려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했다. 김씨는 "길고양이를 싫어하더라도 학생들은 그저 무관심하게 지나가는 게 전부인데 되레 학교 측에선 강하게 반대를 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다른 생명들과 아름답게 공존하려는 학생들의 마음을 헤아려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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