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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0명 악마의 일터

만도헬라 정규직은 만도에서 온 관리자 30명뿐이고, 생산직 345명은 모두 파견사원으로 생산라인 '정규직 0명 회사'다. 주야 맞교대 하루 12시간 일하고, 쉬는 날은 1년 365일 중 보름 남짓. 세계 2위에 빛나는 한국 노동시간보다 갑절(4200시간)이나 더 일한 월급이 300만원이 안 된다. 데이트할 시간이 없어 애인과도 헤어졌다. 직원 평균연령 30대 초반, "일요일만이라도 쉬게 해 달라"는 게 소원이다. 악마의 일터는 '게으른 사람의 머리'(영국 속담)가 아니라 정규직 0명 회사다.

  • 박점규
  • 입력 2017.03.14 12:51
  • 수정 2018.03.15 14:12
ⓒxenotar via Getty Images

초보운전자 심은경이 난폭 운전을 하다 앞차를 들이받기 직전, 긴급제동보조 시스템이 작동해 차가 멈춘다. 기아차 모닝 광고다. 이사, 여행, 드라이브를 소재로 한 드라마 같은 광고에 힘입어, 모닝은 2월 한 달 동안 6156대가 팔려 판매량 4위를 차지했다. 배태민씨는 모닝을 비롯해 자동차에 들어가는 감지센서와 전자제어장치를 만든다. 만도와 독일 헬라사가 합작해 설립한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 2015년 매출액 4350억원, 당기순이익 246억원으로 엄청 잘나가는 회사다.

태민씨는 2011년부터 7년째 만도헬라 작업복을 입고 인천 송도공장에서 일하고 있지만 파견업체 서울커뮤니케이션 소속이다. 만도헬라 정규직은 만도에서 온 관리자 30명뿐이고, 생산직 345명은 모두 파견사원으로 생산라인 '정규직 0명 회사'다. 주야 맞교대 하루 12시간 일하고, 쉬는 날은 1년 365일 중 보름 남짓. 세계 2위에 빛나는 한국 노동시간보다 갑절(4200시간)이나 더 일한 월급이 300만원이 안 된다. 데이트할 시간이 없어 애인과도 헤어졌다. 직원 평균연령 30대 초반, "일요일만이라도 쉬게 해 달라"는 게 소원이다. 악마의 일터는 '게으른 사람의 머리'(영국 속담)가 아니라 정규직 0명 회사다.

악마의 일터 원조는 기아차 모닝. 기아와 동희라는 부품사가 합작해 만든 동희오토다. 정규직은 관리자 180명, 차를 만드는 1300명이 모두 비정규직이다. 기아차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동희오토 정규직도 아닌 '유령'들이 모닝을 만든다. 자동차부품 세계 6위 현대모비스는 12개 사업장 중 8개가 정규직 0명 공장으로, 나쁜 일자리의 원흉으로 손꼽힌다. 현대위아도 광주, 평택 등 4개 사업장이 비정규직 공장이다.

교사 90%가 비정규직인 학교, 기관사 80%가 하청인 지하철이 있다면 어떨까? 그런데 최첨단 자동차와 부품을 만드는 회사는 100% 비정규직 공장이 수두룩하다. 심은경, 진경, 박정민은 모닝이 정규직 0명 회사라는 사실을 모른 채 광고에 출연하고, 대한민국 소비자들은 기왕이면 국산차를 애용하자며 모닝을 산다.

100% 비정규직 회사는 합법일까? 지난해 12월21일 수원지방법원은 현대위아 평택공장 사내하청 88명이 낸 소송에서 현대위아 정규직이라고 판결했다. 정규직과 섞여 일하든, 비정규직만 모여 일하든 원청의 정규직이라는 판결. 태민씨도 파견회사 소속이 아니라 만도헬라의 직원이라는 뜻이다.

졸개들은 왕초를 따라하는 법. 자동차 생태계 꼭대기에 있는 현대기아차 불법공장은 구제역보다도 빨리 계열사와 부품사로 전염됐다. 제조업 파견은 불법인데 전국 공단마다 파견업체가 활개친다. 법학교수들이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을 불법파견으로 고발한 사건은 5년째 검찰청 서랍에서 잠자고 있다. 참다못한 비정규직 천명이 특검에 고소했는데, 황교안이 특검 문을 닫았다.

대통령 후보들이 비정규직을 줄이겠다고 약속한다. 문재인 후보는 현대모비스가 비정규직 회사라는 걸 알까?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정규직 0명 회사가 몰려 있는 서산 공단에 가보기는 했을까? 모닝과 만도헬라를 찾아 노동자들을 만나고, 악마의 일터를 만드는 재벌과 싸우는 대통령 후보를 보고 싶다.

세상이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태민씨는 19번 열린 광화문 촛불집회에 한 번밖에 참가하지 못했다. 토요일마다 회사에서 마음속 촛불을 밝혔다. 최근 동료들을 모아 노조를 만들었는데 하청업체가 폐업을 했다. 박근혜가 퇴진했으니 태민씨의 삶도 나아질 수 있을까?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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