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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가 #NotTheNanny

이 영상의 남녀가 비슷한 인종으로 보였다면 그들이 결혼한 사이인지 의문을 품은 사람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 상정했지만 별로 언급되지는 않은 중요한 점들이 있다. #NotTheNanny 에서 논의된 민족과 인종에 대한 편견은 그보다 더 큰 젠더 편견 안에 존재한다. 첫째, 만약 영상 속 여성이 방송에 출연한 전문가고 남편이 아이를 데려간 사람이었다면, 우리는 이 대화를 애초에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인종과 무관하게, 남성이 남편이 아니라 육아 도우미일 거라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둘째, 만약 여성이 (켈리가 그랬듯) 아이를 밀었다면, 설령 미소를 짓고 부드럽게 밀었다 해도 세상 사람들은 그녀에게 분노를 쏟아냈을 것이다.

이번 주에 BBC 인터뷰를 하는 남성을 아이들이 방해하는 영상이 인터넷에 돌았다. 인터뷰어는 "아이 하나가 방에 들어온 것 같네요."라고 말하고, 남성은 나름대로 침착함을 지켰다. 어린 아이 둘이 방에 들어오고, 깜짝 놀란 여성이 카메라에 잡히지 않으려 노력하며 재빨리 아이들을 끌어내는 모습은 정말 재미있었다.

영상 속의 남성은 국립 부산대학교의 정치학 교수 로버트 켈리라는 게 영상에 나온다. 그러나 여성이 누구인지는 나오지 않았다. 여성은 켈리의 아내 김정아 씨였다. 그러나 그녀가 유모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이 부부라는 게 밝혀졌고, 그녀가 누구인지에 대한 추측 언급들의 결과 #NotTheNanny (유모가 아니다)라는 해시태그가 생겼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나 역시 처음에는 그녀가 켈리의 아내일 거라 생각했다가 혹시 육아 도우미는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그 영상을 페이스북에 올리며 만약 그녀가 유모라면 직업을 잃지 않길 바란다고 썼다. 남녀를 불문하고 배우자라면 상대에게 일시적으로 불만을 품을 수 있겠지만, 고용주가 짜증이 많이 나면 육아 도우미(95% 이상이 여성)를 해고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트위터에서 나는 그녀가 아내일 수도 있고 육아 도우미일 수도 있다는 내용을 담은 트윗을 리트윗했고, 나중에 그녀가 아내였다는 트윗을 공유했다.

그 와중에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그녀는 아내가 아니라 육아 도우미라고 생각한 나를 여러 사람들이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불렀다. 나는 내 짐작을 뒷받침하는 팩트들이 있다고 느꼈지만, 내포된 편견이 있었음도 거의 확실했다.

영상 속의 여성이 유모일 가능성을 언급했을 때, 나는 편견을 고려하지 않았다. 편견은 바로 이런 식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나는 백인과 다른 인종간의 결혼 비율이 아주 낮음을 생각하느라 바빴다. 퓨 연구소에 의하면 2015년에 결혼한 백인 중 단 7%만이 다른 인종과 결혼했다. 흑인은 19%, 아시아인은 28%, 미국 원주민은 58%가 다른 인종과 결혼했다. 남성이 북유럽계로 보인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둘이 부부일 가능성은 낮다고 봐도 좋을 것 같았다.

이 모든 사실들이 편견이 작용하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내가 이와 똑같은 가정의 대상이 된다 해도 마찬가지다. 편견이란 무의식적이고, 자기 자신이 편견의 대상이라 할지라도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흑인 경찰들은 흑인 시민들에 대한 인종적 편견을 가지고 있다. 여성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성의 얼굴보다는 여성의 얼굴에서 고통을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내 아이들이 더 어렸을 때는 나는 성인과 아이들에게 유모로 오해받곤 했다. 딸의 6살짜리 친구가 우리 집에 처음 왔을 때 2시간 정도는 내 딸이 나를 '엄마'라고 부를 때 드러내 놓고 진심으로 당황하곤 했다. 그 아이는 방안을 둘러보고 다른 여성이 없자 혼란스러워 했다. 딸이 다시 나를 엄마라고 부르자, 아이가 내 존재를 인식하고 내 위치와 권위를 다시 평가하는 걸 볼 수 있었다. 내가 안고 있는 아이가 내 딸이라고 하자 한 여성이 내가 내 딸의 생모일 수 있다는 걸 이해하길 거부하고 입양했다 생각하고 "어디서 데려왔어요?"라고 물어본 적도 있었다. 9/11 이후에 내가 혼자서 아이들을 데리고 다닐 때면 누가 아이들을 빼앗아갈까봐 늘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까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화는 공원에서 어느 어머니가 내 고용주의 연락처를 내놓으라고 우겼던 일이다. 기어오르기를 아주 잘 하는 내 딸 하나가 정글짐에 아주 높이 올라갔다. 그 여성은 내게 이름과 전화 번호를 내놓으라고 했다. 내가 '아이의 안전'을 얼마나 무모하게 다루는지 알리겠다고 큰 소리로 말했다. 나는 내 이름과 전화 번호를 알려주었다. 이따가 집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전화를 받을 수 없을 거라고 했다. 그녀는 얼굴이 핼쑥해지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모든 이야기가 내게 비슷한 편견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이런 일들은 대부분 큰 해는 없었고 내게 많은 걸 가르쳐주었다. 나를 불편하게 했다. 백인이라는 것, 어머니라는 것, 다른 여성에 대한 여성의 둔감함과 잔인함, 육아 도우미들에게 주어지지 않는 존중과 보상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 자신의 편견, 내가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여성들이 다른 여성의 존엄, 인간성, 개인적 기분과 삶을 존중하지 않는 것을 자주 보았다.

'아내'와 '유모'의 차이는 지위의 차이이다. 남성과 여성의 관계와도 관련이 있다. 내 친척 아주머니는 아이티에서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올 때 어린 아이 셋을 두고 왔다. 그리고 세 아이의 유모가 되었다. 정치적 난민이었지만, 그녀와 같은 위치의 여성들 대부분은 경제적인 이유로 아이들과 떨어지게 된다. 아주머니는 말투가 부드럽고, 호기심이 많고, 재미있고, 다정하고, 두 가지 언어를 할 줄 알았고, 책을 많이 읽고 지적이었다. 대부분의 유모들이 그렇듯 그녀는 자기가 돈을 얼마나 받느냐에 따라 아이들에게 애정을 주지 않고, 자신의 책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맡은 아이들을 깊이 사랑했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고나서도 연락을 계속했다.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그녀는 자신이 돌본 아이들의 어머니와 복잡한 관계를 맺었다. (제시카 아우어바흐가 2007년에 낸 책 '어머니와 유모들이 말하는 일, 사랑, 돈, 서로에 대한 진실 And Nanny Makes Three: Mothers and Nannies Tell the Truth About Work, Love, Money, and Each Other'이 이런 관계를 잘 설명했다.)

내 아주머니가 유모가 되자 많은 지인들은 아주머니의 신분이 내려갔다고 생각했다. 본인은 그렇게 느끼지 않았고, 자신의 일을 늘 아주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무례한 말과 무시를 받는 일이 많았다.

이 영상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학교, 공원, 거리, 집에서 일어나는 수백만 건의 비슷한 사례들을 반영한다. 매일 반복되는 육아의 현실은 지금도 주로 여성들이 맡고 있다. 대부분의 가족들에서 육아를 담당하는 게 어머니고, 고용하는 도우미, 돕는 혈육도 주로 여성이다. 이 영상에 대한 반응에서 드러나는 인종, 민족, 젠더에 관한 상정은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임에도 불구하고 공개적으로 토론하지 않는 경제 및 사회적 현실을 반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테크놀로지와 생산이 세계화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이슈라고 말하겠지만, 이민, 세계화, 식민화, 젠더 변화의 위대한 실험이 일어나고 있는 곳은 사실상 육아와 노인 돌보기다. 여성들은 어머니로서, 그리고 돌봄 서비스 제공자로서, 우리의 가장 급박한 인종, 계급, 젠더, 권력 이동 문제를 가까이서 살피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남성들, 특히 미국 정부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자기 문제로 생각하지도 않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알리 호쉴드와 바버라 에렌라이히가 '세계적 여성: 신경제에서의 유모, 하녀, 성노동자 Global Woman: Nannies, Maids, and Sex Workers in the New Economy'에서 썼듯, 가사는 선진국의 주로 백인이지만 반드시 백인은 아닌 중상계급 여성들과 가난한 나라에서 야심을 품고 열심히 일하며 위험을 감수하는 여성들이 겹치는 부분이다. 미국 불법이민자 중 50% 이상, 이민을 원하는 사람들 중 75%가 여성과 그 자녀들이다. 이민 여성들 중 거의 60%는 가사와 돌봄 노동에 관여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근로 비자의 27%만이 여성들에게 주어진다. 그들은 일을 구할 수 있다 해도 전세계 어디에서든 가장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다.

현정권의 유해한 국경 통제, 노동, 이민, 건강, 경제, 사회 정책들은 여러 모로 어머니이자 돌보는 사람들인 여성들을 해칠 것이다. 미국 정부는 육아와 노인 돌보기의 수요가 앞으로 10년 동안 48%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사실을 기꺼이 무시하며, 여성들이 집에 남아 비용을 흡수하기를 기대한다. '육아 사막'이라 불리는 것은 그런 영향을 낳을 것이다. (그리고 곧 노인 의료 사막도 생겨날 것이다.) 이런 경향이 나타난지는 거의 10년이 되어가며, 점점 더 많은 미국 여성들이 경제 활동을 중단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민자 여성, 가난한 여성들은 가족을 부양하고 자녀를 교육할 수 있게 해주는 부의 에스컬레이터에 첫 걸음을 내디딜 기회가 점점 줄어들 것이다. (돈을 받는 유모의 노동은 돈을 받지 않는 아내와 어머니의 노동과는 달리 GDP에 포함된다.)

아내냐, 유모냐. 이 이슈 뒤에 숨은 편견은 정말로 강력하다. 즉 이토록 불평등한데도 여성들이 돈을 받지 않거나 적은 임금을 받고도 이 돌봄 노동을 계속할 거라는 상정이다. 이 상정이 우리 경제의 근본, 공화당의 사회 및 경제 정책의 근본이다.

이 영상의 남녀가 비슷한 인종으로 보였다면 그들이 결혼한 사이인지 의문을 품은 사람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 상정했지만 별로 언급되지는 않은 중요한 점들이 있다. #NotTheNanny 에서 논의된 민족과 인종에 대한 편견은 그보다 더 큰 젠더 편견 안에 존재한다.

첫째, 만약 영상 속 여성이 방송에 출연한 전문가고 남편이 아이를 데려간 사람이었다면, 우리는 이 대화를 애초에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인종과 무관하게, 남성이 남편이 아니라 육아 도우미일 거라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둘째, 만약 여성이 (켈리가 그랬듯) 아이를 밀었다면, 설령 미소를 짓고 부드럽게 밀었다 해도 세상 사람들은 그녀에게 분노를 쏟아냈을 것이다. "아이들이 BBC 뉴스 인터뷰를 방해하다"라든가 "아이들이 BBC 생방송 인터뷰에 끼어들었지만 교수는 침착했다" 같은 헤드라인이 '코미디'나 '유머' 섹션보다는 '육아'와 '일' 섹션에 들어갔을 것이다. "어머니가 TV 생방송에서 자녀의 얼굴을 밀다", "일하는 여성은 전문성의 기준을 끌어내리는가?" 같은 헤드라인이 달렸을 것이다.

록산 게이는 이번 주에 "당신들 중 일부는 왜 어머니가 유모라고 상정했는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라고 트위터에 썼다. 나는 우리가 이 아버지가 자신의 젠더 때문에 매체에서 얼마나 좋은 대접을 받는지도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고 덧붙이고 싶다.

이번 주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드러낸 것은 공공연한 인종 차별이 아니라, 잘 살펴보지 않으면 인종차별을 키우게 되는 편견이었다. 편견은 인종차별이나 성차별과는 다르고, 편견과 차별을 뭉뚱그리는 것은 생산적이지 못하다. 태미 윈프리 해리스의 구분이 내가 읽은 것 중 최고인데, 사람들은 '편견을 인간의 실패가 아니라 도덕적인 문제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는 말이었다.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은 이 차이를 이해하고, 우리의 편견과 그 편견의 제도화를 관찰하고 고심하지 못해서 생긴다.

나는 잘못된 방향으로 실수를 범했고, 그게 무슨 의미인지 고심해야 했다. 내가 실수한 것은 유감이지만, 편견의 문제가 더 자주, 더 깊이 공개적으로 거론된다는 것은 기쁘다.

*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 US에 게재된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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