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서양 아이들은 명사를, 동양 아이들은 동사를 빨리 익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동서양의 차이는 무궁무진하다. 대표적인 것이 동양인은 사물을 조직화할 때 범주보다는 관계성에 주목한다는 점이다. 반대로 서양인은 범주에 더 집중한다. 이것은 언어 습득 순서의 차이로 드러난다. 즉 특징적인 성질을 가진 것들을 결합시켜 범주를 구분 짓고 나면 사물을 가리키는 명사가 되며 서양 아이들에게 편하게 다가온다. 어떤 사물 사이에 발생하는, 즉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설명하는 동사는 동양 아이들에게 친숙하다. 범주와 관계는 각각 서양인과 동양인에게 익숙한 주제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서양 아이들은 명사를 빨리 익히고, 동양 아이들은 명사와 동사를 거의 같은 속도로 익히거나 오히려 동사를 빠른 속도로 익히기도 한다. 이런 차이가 일어나는 이유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았다.

1. 동사가 동양 언어에서 지각적으로 더 두드러진다.

“중국어나 일어, 한국어에서는 동사가 문장의 처음이나 맨 마지막에 오는 경향이 있는데 그 위치들은 상대적으로 눈에 띄는 곳들이다. 반면에 영어에서는 동사가 대개 문장의 중간에 등장하기 때문에 지각적으로 그리 주목받지 못한다.” (책 ‘생각의 지도’, 리처드 니스벳 저)

실제로 우리말과 영어를 비교해 보면, 동사의 위치가 서로 다름을 알 수 있다. 영어는 문장 속에 푹 파묻혀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 말은 동사가 맨 뒤에 온다. 당연히 맨 뒤에 오는 동사가 중간에 있는 것보다 더 두드러져 보인다.

2. 서양 부모들은 아이에게 사물 이름과 특성을 가르쳐주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발달심리학자인 앤 퍼널드(Anne Fernald)와 히로미 모리카와는 생후 6개월, 12개월, 19개월이 된 아이가 있는 미국의 가정과 일본의 가정을 각각 방문해서 아이의 어머니들에게 그들이 준비해 간 장난감(개, 돼지, 자동차, 트럭)을 건네주면서 아이와 놀아보게 했다. 미국 어머니들은 일본 어머니들에 비해 사물의 이름(‘돼지’, ‘멍멍이’)을 2배 정도 더 많이 언급한 반면에, 일본 어머니들은 미국 어머니들에 비해 사회적 관계에서 중요한 예절을 2배 더 언급했다.” (책 ‘생각의 지도’, 리처드 니스벳 저)

아이들이 노는 것을 지켜보며 부모들이 하는 말이 동서양 간에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도 위 사례 중 일본 엄마와 같아 보인다. 부모는 끊임없이 아이에게 관계에 대한 말을 들려준다. 자연스럽게 관계, 그리고 그것을 설명하는 동사에 익숙해진다.

3. 범주화하는 서양인의 습관은 명사를 배우기에 유리하다.

“공통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는 사물들을 하나의 이름으로 부르는 작업은 어린이에게 ‘그러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 사물들을 하나의 범주로 묶을 수 있는’ 범주화 능력을 배양해준다. …. 따라서 사물에 주의를 기울이고 범주화하는 서양인의 습관 때문에 그들의 아이는 명사를 쉽게 습득할 수 있는 것이다.” (책 ‘생각의 지도’, 리처드 니스벳 저)

서양인은 사물에 주의를 기울이고 끊임없이 범주화를 하기 때문에 명사에 익숙해진다. 각종 영화, 문학,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등의 콘텐츠도 동서양이 서로 인기를 끄는 것이 다를 수밖에 없어 보인다.

4. 범주 자체에 대한 이름이 서양 언어에선 확실히 구분된다.

“영어나 다른 유럽 언어에서 ‘속명(generic nouns, 어떤 범주 자체에 대한 이름)’은 문장 구조상 확연히 구분된다. 예를 들어 영어에서는 ‘a duck’, ‘the duck’, ‘the ducks’, ‘ducks’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데, 이 중 마지막 표현은 속명에 해당한다. 즉, 오리 일반을 지칭하는 말이다. 영어에서는 이처럼 ‘특정 오리 한 마리’, ‘특정 오리 집단’, ‘오리 일반’ 등을 분명히 구분지어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어를 비롯한 동양어의 경우는 이러한 구분이 쉽지 않으며, 오로지 맥락에 의해서만 가능하다.”(책 ‘생각의 지도’, 리처드 니스벳 저)

위의 내용을 읽어 봐도, 동양인인 우리 입장에선 확실히 이해가 가진 않는다. 특히 ‘ducks’가 오리 일반을 지칭한다는 말, 쉽게 이해가 가는가? 이런 언어는 동양인에게는 익숙하지 않다.

5. 동양 아이들은 서양에 비해 범주화하는 방법을 늦게 배운다.

“발달심리언어학자인 앨리슨 고프닉(Alison Gopnik)과 최순자는 각각 한국어, 불어, 영어를 사용하는 어린이들을 1살 중반부터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범주화를 하고, 사물의 이름을 대는 기술’이 불어나 영어권 아이들보다 한국어를 사용하는 어린이들에게서 늦게 발달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책 ‘생각의 지도’, 리처드 니스벳 저)

범주화를 늦게 배우면 명사에 그만큼 늦게 노출된다는 의미다. 대신 관계는 일찍 노출되기 때문에 동사에는 익숙해진다. 마침 이 책에는 한국 아이들이 피실험자로 나온다. 정확히 우리의 사례인 것이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