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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의 합리적 선택 | 경제학자의 관점에서 본 탄핵 결정

박근혜의 탄핵을 인용하는 헌재의 결정문에서 이 비용-편익분석이 법리적 논리에서도 활용되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결정문 마지막 부분에서 박근혜의 파면이 불가피한 근거로서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합니다. "피청구인의 법 위배 행위가 헌법 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할 것이다." 헌재가 내린 파면 결정의 근거는 이론의 여지가 없이 명쾌했습니다. 명쾌함은 바로 이 비용-편익분석이라는 합리적 선택의 수단에 힘입은 바 컸다고 믿습니다.

  • 이준구
  • 입력 2017.03.13 07:32
  • 수정 2018.03.14 14:12
ⓒ뉴스1

여러분이 잘 아시듯, 경제학의 핵심 개념 중 하나가 바로 합리적 선택(rational choice)입니다.

물질에 대한 우리의 욕망은 무한한 데 비해 이를 충족시켜 주는 수단이 되는 경제적 자원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희소한 경제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합리적 선택이 중요해지는 것입니다.

합리적 선택이란 쉽게 말해 어떤 행동과 관련한 비용-편익분석(cost-benefit analysis)을 통해 그 행동을 할 것인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을 뜻합니다.

비용-편익분석의 첫 단계에서는 어떤 행동을 함으로써 얻는 이득 혹은 편익을 계산하고 이어서 그 행동을 할 때 드는 비용을 계산합니다.

그 다음 이 둘을 비교해 편익이 비용보다 더 크다고 판단되면 그 행동을 하기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비용-편익분석은 공공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을 평가할 때 가장 흔하게 활용됩니다.

예를 들어 댐을 건설하거나 철도를 건설하려 할 때 그것과 관련된 편익과 비용을 비교해 편익이 더 크면 그 사업에 경제적 타당성이 있다고 판단하게 됩니다.

이 비용-편익분석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정부가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는 결과를 막을 수 있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여담입니다만 내 인생에서 본 가장 황당무계한 비용-편익분석은 MB정부의 "한반도대운하계획"과 관련된 분석입니다.

그 분석 결과를 보면 운하를 만들었을 때의 편익이 비용의 무려 2.3배나 된다는 거였는데, 봉이 김선달이 현대에 다시 태어나도 그런 어마어마한 사기는 감히 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하루에 배 몇 척 다니는 걸 보기도 힘든 소위 '아라뱃길'이라는 괴물도 MB정부의 잘못된 비용-편익분석이 빚은 비극이고요.

이 비용-편익분석은 단지 공공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을 평가하는 일뿐 아니라 광범한 선택의 상황에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개인적인 선택의 상황에서도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이 비용-편익분석을 수행하고 그 결과에 기초해 행동을 결정하는 사례가 아주 많습니다.

박근혜의 탄핵을 인용하는 헌재의 결정문에서 이 비용-편익분석이 법리적 논리에서도 활용되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결정문 마지막 부분에서 박근혜의 파면이 불가피한 근거로서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합니다.

피청구인의 법 위배 행위가 헌법 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할 것이다.

이정미 재판관이 이 구절을 읽어나갈 때 나는 무릎을 쳤습니다.

"아, 이분들도 지금 비용-편익분석을 하고 계시구나."

즉 비용-편익분석의 결과에 기초해 박근혜를 탄핵해야 마땅하다는 결론을 이끌어내고 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헌재는 박근혜의 파면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을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파면함으로써 얻는 이득이 훨씬 더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단연코 "파면"이란 레드카드를 들어올린 것입니다.

그로 인한 헌정질서 문란의 비용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그를 파면함으로써 '압도적으로 더 큰' 헌법 수호의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 것입니다.

이와 같은 논리적 근거는 경제학에서 비용-편익분석을 할 때와 전혀 다르지 않다는 점이 흥미롭지 않습니까?

헌재가 내린 파면 결정의 근거는 이론의 여지가 없이 명쾌했습니다.

그 명쾌함은 바로 이 비용-편익분석이라는 합리적 선택의 수단에 힘입은 바 컸다고 믿습니다.

솔직히 말해 헌법재판관들이 결정문을 쓸 때 자신들이 경제학의 핵심 개념을 활용하고 있음을 명확하게 인식했을 가능성은 매주 작습니다.

그러나 무심코 활용한 경제학의 논리가 헌재 결정의 설득력을 획기적으로 높여주는 역할을 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이번 결정을 통해 헌재는 우리의 민주헌정질서를 다시 세우는 역사적인 과업을 성취했습니다.

경제학자인 나로서는 합리적 선택의 수단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그런 역사적인 과업을 성취한 헌재의 재판관님들께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 이 글은 필자의 홈페이지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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