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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의 '두려움 없는 소녀상'이 헛소리인 이유

  • 김도훈
  • 입력 2017.03.10 11:34
  • 수정 2017.03.10 12:00

뉴욕 다운타운에 놓인 작은 소녀상을 볼 때 아무 느낌도 받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소녀상은 홍보된 대로 반항적이고 사납다. 작은 발을 단단히 땅에 디디고, 양손을 엉덩이에 얹고 고개를 들고 있다. 월 스트리트의 가장 남성적이고 강력한 상징인 황소상 앞에 용감하게 서 있다.

거대 금융사 스테이트 스트리트가 이번 주에 황소상 앞에 소녀상을 세우자 관중들이 몰려 들었다. 황소상은 1980년대의 주가 폭락 이후 월 스트리트가 되살아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하지만 이 소녀상을 보고 드는 감정에 속지 말라. 그 사랑스럽고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작은 소녀는 그저 굉장히 정교한 페미니스트 마케팅의 일부일 뿐이다. 우리를 기분 좋게 만들며, 실제로 이루는 일은 거의 없는 마케팅이다. ‘두려움 없는 소녀’라는 이름이 붙은 이 작품, 그리고 스테이트 스트리트가 함께 런칭한 젠더 의식 캠페인은 퇴직 적립금과도 비슷하다. 금융업계가 내놓은 소비재나 다름없다.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이것만으론 절대 부족하다.

스테이트 스트리트의 보도 자료에서는 소녀가 ‘미래’를 대표한다고 밝히고 있다. 소녀의 예쁜 얼굴은 평범한 사람들이 신경쓰지 않는, 산업계에서 가장 지루하지만 중요한 문제에 대한 대화를 유도하기 위한 정치적 예술이라고 스테이트 스트리트는 말한다. 그 문제는 바로 이사회다. 이사회는 기업의 권력, 고문, CEO 채용과 해임을 맡는 권력의 정점이다. 기업 전체의 분위기와 전략을 정하는 게 이사회다. 그리고 이사회는 거의 남성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우리는 기업들이 이사회의 젠더 다양성을 늘리라고 강하게 요구하고 있고, 어떻게 행동을 취하면 좋을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냈다.” 세계 여성의 날 하루 전에 낸 보도자료의 내용이다.

스테이트 스트리트는 자기 이사회와 고위층에 여성이 별로 많지 않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스테이트 스트리트의 이사 11명 중 여성은 3명, 즉 27%에 불과하다. 2년 전만 해도 여성 임원은 2명뿐이었다. 스테이트 스트리트의 EVP(executive vice-president) 중 여성은 23%이다. SVP(senior vice-president) 중 여성은 28%뿐이다.

젠더 평등을 목표로 삼았다면 스테이트 스트리트의 여성 관련 수치는 형편없다. 이 수치를 보면 소녀상과 행동 촉구가 공허한 유혹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방카 트럼프가 펼치는 위협적이지 않은 #WomenWhoWork 마케팅 캠페인, 남성이 지배하는 아우디와 같은 자동차 회사가 럭셔리 차량 광고에 여성의 경제적 불평등을 이용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그러나 스테이트 스트리트는 여성 채용과 승진에 있어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대변인이 목요일에 허핑턴 포스트에 말했다.

“3명, 27%는 0보다 낫다.” 이사회 구성에 관해 스테이트 스트리트 PR 담당 앤 맥낼리가 한 말이다.

이 수치는 평균보다 조금 높다. 포츈 선정 500개 기업의 이사회에서 여성은 21% 뿐이며, 주식 시장의 98%를 차지하는 러셀 3000 지수 기업 네 곳 중 한 곳은 여성 임원이 아예 없다고 맥낼리는 강조했다. 정말 충격적인 사실이다.

맥낼리는 산업계 전반의 진보가 느리다고 말했다. 맥낼리는 “변화가 느리다.”고 말하는 동시에 스테이트 스트리트는 언행일치를 이루고 있다고 주장했다.

스테이트 스트리트는 앞으로 1년 내에 공개 기업의 주주라는 힘을 이용해 이사회에 여성을 임명하지 않는 회사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계획이 있다고 이번 달에 발표한 바 있다.

스테이트 스트리트는 이사회에 여성을 임명하지 않았다면 노력은 했다는 증거를 요구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들은 강한 압력을 주지는 않으려 한다. “우리가 선호하는 개입 절차는 개입이다.”라는 맥낼리의 말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강경한 행동을 취하기보다는 이야기를 나누겠다는 뜻이다.

스테이트 스트리트는 다양성이 부족한 다른 여러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전사적 다양성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그러나 목표는 상당히 낮게 잡았다. 올해 말까지 여성 부사장의 비율을 6% 올리겠다는 식이다. 다른 몇몇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스테이트 스트리트는 다양성 목표를 관리자들의 퍼포먼스를 평가할 때 보는 수치로 삼고 있다. 이들 기업들의 의도 자체는 좋아 보인다.

이건 칭찬할 일이긴 하지만, 이들 기업의 채용을 보면 여성 비율은 너무나 낮다. 맥낼리의 말에 의하면 2016년 신규 채용 중 여성은 30%였다. 총 직원이 33,000명인 스테이트 스트리트의 젠더 비율이 어떻게 되는지, 어떤 부서에서 여성을 채용하는지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맥낼리가 공개하지는 않았다. 여러 금융 기업에서 여성들은 인사와 법무 등 수익과 관련이 없으며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여겨지는 부서들에 모여있는 경우가 많다.

스테이트 스트리트를 예로 들자면 운영 위원회의 두 여성은 인사 담당과 행정 담당이다.

예술 작품을 내놓고 큰 소리를 치고 프로그램을 도입하고는 있지만, 스테이트 스트리트는 다양성 부족을 핵심 문제로 다루고 있지 않다. 만약 이윤이 상당히 줄어든다면 즉시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이다. 과연 금융 위기 중 연방 정부로부터 긴급 구제 자금을 두 번 받고 나서는 빠르게 회생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우리 모두는 대규모 금융 기관들에 대해 심한 반감을 품었다. 그러나 저 소녀상을 보면 대규모 금융 기관에 대한 감정이 훨씬 부드러워진다. 금융 위기는 아직 10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던) 월 스트리트가 세계 경제를 파탄내고, 수백만 가정을 집에서 쫓아내고, 엄청난 수의 일자리를 날렸던 게 오래된 일이 아니다. 2008년 위기 이후 투자가들과 가장 부유한 미국인들은 그 이전보다 더욱 부유해진 반면, 보통 사람들은 거의 그러지 못했다.

스테이트 스트리트 같은 기업이 페미니즘을 마케팅에 성공적으로 써먹을 수 있다면 우리 모두는 이러한 사실들을 잊게 된다. 현재 시스템이 여성을(그리고 남성을) 착취하는 게 분명한데도 우리는 계속해서 빠져들게 된다. 그러면서도 ‘힘을 얻었다’고 착각한다.

저 귀여운 소녀상을 보라! 소녀다. 성인 여성이 아니다. 황소를 내려다 보는 강렬한 여성이라면 무서워 보여서 이런 마케팅 전략이 먹히질 않았겠지.

허핑턴포스트US의 Why The ‘Fearless Girl’ Statue Is Kinda Bull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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