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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걸은 어떻게 반찬값을 벌러 나온 아줌마가 되었나

이럴 거면 대학을 왜 나왔나, 대기업에 왜 들어갔을까 되묻기도 하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다.

  • 구현모
  • 입력 2017.03.09 11:20
  • 수정 2018.03.10 14:12
ⓒsdominick via Getty Images

여기 여자가 한 명 있다. 60년대 후반에 태어난 이 여성은 그럭저럭 대학을 나왔고 90년대 초반에 빠르게 입사했다. 회사에 들어간 그녀는 회사에서 좋으나 싫으나, 미우나 고우나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사랑할 남자를 만난다.

회사 동료와 선후배들의 저주(..)와 축복을 동시에 받은 그들은 신혼여행을 마치고 회사에 돌아온다. 회사에 돌아오니 그들을 맞이한 것은 IMF라는 놈이었다.

여자는 고민한다. "사내 커플로서 일을 하는데 왠지 둘 중 하나는 나가야겠다"는 묘한 압박이 부부를 향해 온다. 여자는 고민한다. 고민하고, 고민한다. 결론은 어차피 정해져있는데, 고민은 계속 된다. 그냥 회사를 때려 치우는 건 그림이 영 좋지 않고, 본인 성에도 차지 않는다. 무언가 명분이 필요하다.

아, 하필 그녀는 당시에 임신을 했다. 출산휴가가 3개월로 늘어난 게 2001년이니, 90년대 후반에 - IMF를 맞이한 그 시기에 - 출산휴가를 쓰는 건 말이 안됐고, 그녀는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만다. 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본인과 입사동기였던 여성회사원들도 어느 순간 회사에서 이미 다 없어진 상태였다고 하더라.

사회인에서 엄마로, 아내로 돌아온 그녀는 정신없이 아들을 돌보고, 남편의 뒷바라지를 한다. 대통령이 바뀌든, 월드컵에서 4강을 가든, 하다못해 미국이 테러를 당해도 본인의 일상은 바뀌지 않는다. 십 몇 년 뒤 대통령이 말하는 "여자로서의 사생활"따위 개한테 준 지 오래다.

회사를 그만 두고 전업주부로서 살아가는 삶은 사실 '사회인'이라 부르기엔 좀 민망하다. 남편의 회사 근처에 전세로 살아가는 전업주부에게 사회란 집, 자식의 학교, 학원 그리고 시어머니 집, 혹은 집근처 공원이 전부다. 본인의 고등학교, 대학교로 구성된 사회적 인맥은 죽은 지 오래고, 쓸 일도 없다.

어찌되었든 본인의 아들은 본인보다 좋은 학교를 보내기 위해, 본인처럼 살지 않았으면 한다는 열망 하에 학원에 보낸다. 아니 사실 "남들 다 하니까 안하면 떨어지는 듯해서" 보내는 게 더 크다. 그렇게 아들이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아이가 하나 더 생긴다. 축복 속에 태어난 아이지만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 4인 가족이 외벌이로 먹고 살기엔 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첫째는 좀 있으면 대학에 가고, 둘째도 곧 걸어다니는 "돈 먹는 기계"가 된다. "아이가 혼자 크냐?" 라고 물으면 "엄마와, 아빠와, 돈과 함께 큽니다"고 답할 준비가 됐다.

그래서, 직장을 찾아 나선다. 안타깝게도 약 10년 간 단절된 그녀의 경력으로 인해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식당 이모"거나 "미화 노동" 혹은 "마트 캐셔"에 그친다. 알파걸로 시작해 경단녀가 되고 반찬값 벌러 나왔다는 식당 아줌마가 된다. 이럴 거면 대학을 왜 나왔나, 대기업에 왜 들어갔을까 되묻기도 하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나온 건 어찌됐든 본인의 선택이니까. TV에서 경력단절녀를 위한 시간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하는데, 애초에 경력단절녀가 일을 구할 때는 '종일제'를 위한 거지 시간제 따위 바라지 않는다. "아이를 보는 와중에 일할 시간을 낼 수 있는 여성을 위한 일자리라는 게 애초에 소수만을 위한 일자리 아니냐"라는 푸념만 는다.

애가 대학에 갈 무렵, 부부는 노후를 준비한다. 그런데, 본인은 국민연금밖에 없는데 받는 월급이 적으니 연금도 적다. 왠지 모르겠는데, 이 사람과 미우나고우나 함께 살지 않으면 본인은 굶어 죽을 수밖에 없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야 고추 달리면 37만 원 더 번다매??

한국 남성이 100만 원을 벌 때 여성이 63만원 가량을 번다는 식의 기사는 사실 반만 맞고, 반만 틀린 이야기다. 많은 기사들이 언급하고 있는 성별 임금격차는 일주일에 40시간 일하는 남성과 여성이 받는 임금의 총량을 시간으로 나눈 값이다. 결국 임금의 총량에 관한 이야기며 사회적으로 임금이 여성에게 '덜' 분배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OECD 중 최악이고 만년 1위인데 이유는 '그냥'인 판국이다(..) 출처 : 구글 검색결과 캡쳐

일하는 여성 전체와 일하는 남성 전체를 대상으로 한 조사이기 때문에, 같은 일을 하는 남성이 여성보다 더 돈을 많이 받는다고 단언할 수 없다.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해석해야 한다. 여성과 남성의 임금격차는 단순히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어겨서 생긴 게 아니다. 그보다 더 큰 무언가가 있다.

펄-럭. 출처 : 통계청

남성과 여성의 임금격차 그래프를 보면 아주 재밌는데, 20대 사회초년생시기에 성별 임금 격차는 매우 적고 오히려 여성이 높게도 나타난다. 하지만 30대에 들어가는 순간 임금격차가 확 벌어지기 시작하며 54세까지 차이가 급격하게 커진다. 한국식 은퇴연령인 55세 이후로 격차는 줄어들며 줄어드는 추세는 이어진다.

진짜다. 진짜가 나타났다. 경력단절은 진짜다

저 고개는 미아리고개냐 아리랑 고개냐. 출처 : 한국고용정보원 고용동향 브리프 2014년 10월호

30대로 들어가는 순간 임금격차가 벌어지는데, 이 시기는 사회적으로 여성이 출산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시기와 매우 유사하다. 즉, 결혼과 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이 임금격차의 핵심이요 알파요 오메가다.

특히 소위 '짬밥'에 기반한, 그러니까 근속년수에 기반한 월급이 올라가는 체계가 대부분인 한국사회에서 경력단절은 곧 임금의 단절이며, 극복할 수 없는 차이로까지 이어진다. 어디서든 숙련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임금을 덜 받을 수밖에 없으며 이로 인해 집단적 임금 격차가 생긴다. 실제로 남성은 5년 이상, 10년 이상 일한 사람들 많아지는 반면, 여성은 저연차가 대부분이며 10년 이상 근무한 사람은 갈수록 줄어든다.

여성은 비교적 저연차에, 남성은 비교적 고연차에 모여있는 풍경이다. 출처 : 한국고용정보원 고용동향 브리프 2014년 10월호

"제조업에 여자가 없어서 그런 것 아니냐?"라는 물음도 있다. 이도 영향이 있긴 할텐데 첫 직장을 기준으로 두면 오히려 여자가 많이 받는 경우도 있어서 이는 틀린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필규형도 그렇게 말했다. 실제로 고용노동부의 자료를 토대로 조사한 보고서를 보니, 산업이 성별 임금격차를 설명하는 부분은 고작 0.2%이며 근속년수가 25.7%였다. 여성이라 임금을 덜 받는다는 여성손실분은 무려 임금 격차의 31% 가량을 설명하고 있었다.

꼬추야 쓸모는 없지만 가끔씩 고맙다. 출처 : 한국고용정보원 고용동향 브리프 2014년 10월호

아 경력단절 이 놈 진짜 강력하다. 스노우볼 엄청나다 이거예요

독박육아 등으로 인한 경력단절과 이로 인한 임금격차가 곧 연금의 격차, 그리고 빈곤까지 이어진다는 건 자명하다. 국민연금은 임금에 비례하기 때문에 청년기에 덜 버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국민연금을 덜 받을 수밖에 없으며, 여성들이 덜 받을 것이라는 사실 역시 필연적이다.

사실 돈만의 문제는 아니다. 가정폭력의 경우에 피해자들이 고발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도 경제적 자립 문제가 껴있었다. 일하지 않는 아내는 일하는 남편에게 전적으로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이 남자가 개새끼인 것과 별개로 그 사람을 고발하는 일은 곧 나 혼자 스스로 가정을 떠받쳐야 한다는 건데, 준비없이 일궈내기엔 쉽지 않다.

일하는 사람으로서 존재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존감이 생길 수가 없다. 일하지 못하는 사람을 무임승차자로 몰고 가는 이 사회에서 자존감을 어떻게 챙기랴. 물론, 가사노동 역시 노동이나 한국사회에서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또한 임금을 받는 노동은 사회에서 가시적으로 일어나는 노동이나 가사노동은 비가시적 노동이기 때문에 둘을 같은 노동이라는 선상에서 비교하긴 어렵다. 항상 일을 하고 있으나 일하고 있다고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결국 자존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극단적인 경우에 이는 파트너에 대한 의존으로 이어진다. "일하지 않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는 것이 하나의 격언으로 여겨지는 한국 사회에서 일하지 않는 사람은 곧 죽은 사람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하다.

결국,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채워주고,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해선 "여성을 끊임없이(...) 일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에 도달하게 된다(어째 노예생산 같긴 한데 그건 기분 탓이다).

나쁜가요? 나쁜가요? 그러면 조져야죠

현실적으로 여성의 근속을 막는 요소가 '독박육아' 혹은 '구시대적 조직문화'이기 때문에 모든 문제를 풀기 위해선 이부터 개선해야 한다. 전자 같은 경우 사회적 개입이 가능하고, 그래왔으며 후자 같은 경우 사회적 개입이 어떻게 가능할까 싶'었'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는 지금은 기억에 잊혀진 누리예산을 통해 간접적으로 육아 및 돌봄노동의 사회화를 추진했으나 시원하게 말아먹었다. 돈 쓸 일은 본인이 저지르고, 돈은 알아서 처리하라고 하는 기적의 행정을 보였다. 방안은 틀렸으나 방향은 맞았다. 돌봄 노동 혹은 가사 노동의 직/간접적 사회화는 선진국에선 기본이다. 스웨덴 같은 경우 여성이 야근을 하더라도 아이에 대한 걱정이 없게끔 24시간 어린이집 혹은 저녁 늦게까지 하는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의 기업조직문화가 "야근", 특근 같은 비공식적 노동행위와 회식과 같은 비선의 커뮤니케이션으로 구성되는 걸 보면, 이는 한국에도 당장 도입해야 할 제도가 아닐까.

후자 같은 경우 이웃나라 일본이 시행하고 있다. 아베 정부는 아베노믹스의 일환으로 조직 문화 개선을 손꼽았으며 이에 따라 지난 9월부터 야근 등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겠다는 원칙을 밝혔다. 결국, 조직문화를 바꾸지 않고선 저출산과 비혼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위와 같은 사회 문제가 결국 결혼이 득이 되지 않는 사회 풍토에 의한 것이며, 사회 풍토는 조직 문화를 바꾸지 않고선 바꾸지 못하기 때문에 기꺼이 조직문화를 바꾸기에 나섰다.

여기서 "가정에서의 타협"을 이야기하지 않는 이유는 그건 지네가 알아서 하는 문제니까(...)

신기한 점은 여성의 학력이 높을수록 임금차이가 덜 했다. 대학원을 졸업한 여성 같은 경우 80% 수준으로 차이가 가장 덜 났다. 교훈은 꼬우면 아까운 인적자원이 되라는 건가?

아마, 근속 년수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자리 - 약사라든지 - 즉, 근무의 자기 통제권이 높은 직업일수록 격차가 덜하기 때문에 고학력 여성 같은 경우 위에 기술한 문제를 '덜' 겪는 듯하다. 임금 격차에서도 격차는 있기 마련이다.

박근혜 정부의 시간제 일자리 같은 경우 원인은 해결하지 못했으나 어느 정도의 대증요법은 되지 않았을까 싶다. 현실적으로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를 만드는 건 힘들고, 없는 일자리라도 만들어서 나누는 게 어쨌거나 지금보단 앞으로 나아가는 것 아닌가. 물론 누리예산은 그말싫.

자괴감 든다

경력단절을 해결하는 것은 곧 불평등과 폭력을 해결하는 것이다. 가정폭력과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경제적 독립을 통한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 및 가정에서의 지위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 경제 좋아하는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는 건데 임금 격차를 해소해 GDP를 개선시키는 방안도 있다. 경력단절 문제 해결은 곧 여성의 노동 시장 참가율을 개선해 노동 시장을 활성화하고, 인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치해 국가 경제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을 이야기할 때, 많은 여성들은 분노했다. 많은 워킹맘들이 사생활도 없이 일을 하며, 많은 분들은 사생활 없이 일할 기회마저 없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임금에 차이가 생기는데, 그런 문제를 해결할 시도는 하지 않고 본인을 억압받는 피해자로 상정하는 건 대체 무슨 심보냐. 여성들의 삶을 옥죄어왔던 족쇄와 편견과 싸우고 있는 많은 여성들을 물먹이는 대통령이었다. 여성이라는 성별은 많은 사회인들에게 족쇄이자 단점이자 편견덩어리였다. 이는 항상 본인들이 싸워야 할 무언가였지, 본인의 잘못을 정당화하는 변명거리가 아니었다. 여성이라는 차별 근거를 변명거리로 쓴 대통령을 보면, 참 자괴감이 아니 들 수 없다.

*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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