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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 반대에도 코레일이 ‘2층 KTX' 추진하는 이유는?

한국철도공사(이하 코레일)가 ‘2층 고속철도(KTX)’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코레일은 우선 두 칸짜리 2층 열차를 완성해 올 7~9월 시운전을 계획하고 있다고 7일 밝혔다. 일정대로 진행되면 2023년께 상용화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2층 고속철도는 현대로템(주),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 함께 개발하고 있다. 2층 고속철도는 우리나라에서 생소한 모습이지만, 프랑스와 일본에선 이미 운행 중이다. 단층 고속철도(931석)보다 50% 이상 많은 1404개 좌석eh 확보할 수 있다. 코레일은 “고속철도 이용 고객은 늘어나는데 선로용량이 포화 상태여서 열차 추가 투입이 힘든 상황”이라며 “좌석수를 늘리는 2층 대용량 열차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2층 고속철도가 성공한다면 철도 역사의 획기적인 분기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철도정책을 담당하는 국토교통부는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2층이라 타고 내리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전력 등 운영비용이 대폭 상승하기 때문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 2층 고속철도를 검토했다가 2015년 중단했고, 일본도 점차 줄이는 추세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코레일은 충분히 보완책을 만들 수 있다는 입장이다. 코레일은 “출입문을 크게 만들면 승·하차 시간을 줄일 수 있고, 프랑스에선 2층 고속철도가 활발하게 운영 중”이라고 밝혔다. 2층 고속철도 시행 여부는 앞으로 뜨거운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2층 고속철도 논란에서 흥미로운 점은 코레일의 태도다. 힘의 역학관계상 우위에 있는 주무부처가 부정적인데도 강행한다는 것은 공공기관 특성상 쉽지 않다. 속내를 들여다보니, 훨씬 복잡한 문제가 얽혀있다. 코레일은 사실상 ‘생존 투쟁’을 하고 있다. 지금의 철도운영 구조는 공공철도로 대표되는 코레일이 살아남기 어렵게 돼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경부·호남고속철도가 모두 지나가는 알짜 노선인 ‘경기 평택~충북 오송’ 구간 고속철도 추가 건설과 운영을 민간에 맡기려고 하고 있다. 그동안 민자 사업은 수도권 광역철도에 집중됐는데, 고속철도 등 전국 철도망으로 확대되는 것은 처음이다. 이미 대형 건설사인 현대산업개발이 뛰어들었고, 지난해 6월부터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민자 사업으로 적합한지 평가를 하고 있다.

정부는 평택~오송 구간은 현재 복선 철도가 깔려 있는데, 수요가 계속 늘고 있어 추가 철도 건설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지난해 12월 수서고속철도에 이어 2023년엔 인천·수원발 고속철도가 개통될 예정이다. 정부는 재정이 부족하다며 이 구간을 민자 사업으로 하겠다고 발표했다. 평택~오송을 시작으로 14개 신규 노선도 민간에 넘길 방침이다.

민자 적격성 평가를 하는 한국개발연구원은 국토부와 관계기관의 의견을 요구했다. 코레일과 정부는 서로 상반된 내용을 제출했다. 코레일은 “추가 건설이 필요 없다”고 밝히는 대신, 몇 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안호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국토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코레일은 2층 고속철도를 만들어 좌석수를 늘리고, 열차를 두 개 붙이는 ‘중련편성’(KTX산천) 열차를 현재 70%에서 100%로 올리면 충분히 수요를 감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선로를 새로 깔기보다 열차의 구조를 변경하는데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코레일 대안에 대해 국토부는 조목조목 반박하는 내용을 케이디아이에 냈다. 2층 열차는 개발이나 상용화까지 시간이 걸리는데다 성공하더라도 운행지연·운영비 상승 등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중련 열차도 100%로 했을 경우 수요가 많지 않은 시간엔 낭비가 되는 만큼, 효율성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코레일은 왜 정부에 맞서고 있는 것일까? 고속철도 민자 사업은 코레일에겐 치명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레일 살림살이에서 고속철도는 ‘복덩이’다. 고속철도를 민간에 떼어줄 경우 코레일은 뿌리부터 흔들리게 된다. 경부·호남 고속철도 흑자로 일반 철도의 적자를 메우고 있는 것이 코레일 경영의 중심 줄기다.

안호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코레일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최근 5년(2011~2015년) 동안 고속철도는 2조7537억원의 흑자를 냈다. 반면 노인·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와 서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일반철도(새마을·무궁화호, 광역전철)는 요금이 저렴해 매년 적자다. 최근 5년(2011~2015년) 동안 일반철도는 2조1292억원의 적자를 냈다.

하지만 일반철도는 코레일이 포기할 수 없는 ‘아픈 손가락’이다. 전국 구석구석에 고속철도를 모두 건설할 수 없으니, 지역의 균형 발전과 주민들의 이동권을 위해서는 일반 철도가 필요하다. 1년에 7천만명이 넘는 사람이 일반 철도를 타고 있다. 고속철도에서 나오는 수익은 일반철도에 다시 투자되면서 공공철도망을 유지하는 ‘산소호흡기’ 같은 구실을 하고 있는 셈이다.

수서고속철도(SRT) 분리 운영은 철도의 공공성 강화를 막는 ‘대못’ 같은 존재다. 정부는 철도 경쟁체제를 만들겠다며 수서고속철도의 운영을 에스알(SR)에 맡겼다. 철도노조의 민영화 저지 파업으로 에스알은 코레일이 41%로 가장 많은 지분을 갖게 됐고, 나머지는 사학연금, IBK기업은행, KDB산업은행 등이 출자했다.

코레일이 전국 600여 개의 역을 관리하고, 적자를 보는 일반 철도와 화물 수송을 맡고 있는데 반해 에스알은 이미 수익이 검증된 고속철도 노선만 운행한다. 수서고속철도를 코레일이 운영했다면 경영악화로 일반철도를 줄이는 악순환을 막을 수 있게 된다.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유일한 흑자 노선인 고속철도의 상당 부분을 에스알에 떼어주면서 코레일은 만성적 적자 구조를 벗어날 길이 막혀버렸다”며 “에스알은 고속철도 수익을 일반철도에 투자할 수 없는 구조다. 수서고속철도의 분리 운영은 한국 철도의 균형발전을 가로막는 대못”이라고 말했다.

영업이익을 내고 있던 인천공항철도를 2015년 민간에 매각한 것도 코레일 입장에선 뼈아픈 지점이다. 정부는 만성 적자에 ‘세금 먹는 하마’였던 인천공항철도를 가뜩이나 부채가 많아 허덕이는 코레일이 사도록 팔을 비틀었다.

2009년 코레일이 인수하면서 최소운영수입보장을 90%에서 58%로 조정해 정부 보조금을 연간 2천억원 이상 줄였다. 서울역까지 노선이 연장되고, 지하철 4·5·6호선 환승 시스템이 구축되면서 공항철도의 승객이 급속히 늘어 2012년엔 1508억원의 영업이익을 내기도 했다. 겨우 알짜 기업을 만들어 놓으니, 다시 민간에 팔도록 한 것이다.

정부는 코레일의 숨통을 더욱 옥죄고 있다. 적자가 많이 발생하는 벽지노선마저 정부가 예산을 대폭 줄였다. 정부가 코레일에 보전해주는 노인·장애인·국가유공자 운임 감면, 벽지노선 유지 등의 공익서비스(PSO) 예산은 올해 2962억원으로 지난해(3509억원)보다 16%(547억) 삭감했다. 특히 벽지노선 손실보상이 2111억원에서 1461억원으로 650억원, 31%나 크게 감소했다. 돈이 안 된다는 이유다.

코레일은 태백선을 비롯해 7개 벽지노선의 운행횟수를 108회에서 56회로 절반가량 줄이고, 16개 역은 근무자를 없애는 ‘무인화’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코레일이 너무 많이 줄인 탓인지 국토부는 주민 피해 등이 우려된다며 다시 검토하라고 권고한 상태다.

코레일 쪼개기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 철도국의 올해 업무계획을 보면, 철도의 안전과 직결되는 시설 유지보수·관제·차량 정비·물류를 코레일에서 떼어내 철도시설공단에 넘기거나 자회사로 분리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안호영 의원은 “흑자 고속철도를 민간으로 넘기는 정부 정책이 계속되면 코레일은 적자가 나는 일반 철도를 줄이거나 안전과 직결되는 업무라도 외주화시킬 가능성이 높다”며 “철도정책의 물줄기가 바뀌지 않으면 공공철도는 계속 약화되고, 서민들 피해는 커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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