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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열풍은 '게임'과 유사했다

스타 작가들은 아이돌급이다. 팬덤을 몰고 다닌다. 그들이 하는 행동 하나하나, 말 하나하나에 큰 의미가 부여된다. 일본에는 이런 작가가 여럿 있다. 일본 경제가 발전하고 난 후 큰 거품이 끼기 시작한 1980년대 후반에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등장했다. 우리나라에도 팬이 만만치 않게 많은 작가다. 특히 1988년 연간 베스트셀러 1위 ‘노르웨이의 숲’, 3위 ‘댄스 댄스 댄스’가 하루키 작품이었는데, ‘노르웨이의 숲’은 무려 1년 간 350만 부가 팔렸다. 최근에는 하루키의 새로운 작품 ‘기사단장 죽이기’가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다. 우리나라에도 이 작품에 대한 선인세 20억 원 등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하루키는 왜 ‘하루키 현상’까지 만들어낸 것일까? 왜 잘 팔렸고, 왜 잘 논해졌던 것인지를 밝힌 책이 있다. 그 이유를 책 ‘문단 아이돌론’(사이토 미나코 저)의 접근대로 정리해 보았다.

1. 하루키 현상은 게임을 연상시켰다.

“하루키를 둘러싼 ‘고행과 논쟁으로 가득 찬 여행’은 당시 어린이들(어른들도 포함)을 매료시킨 하위문화의 최전선, 즉 컴퓨터 게임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습니다. 주인공의 지력, 체력, 무력을 레벨업시키면서 주인공을 기다리는 새로운 몬스터와 끊임없이 싸움을 벌여나가는 롤플레잉 게임(RPG)을 떠올리게 합니다. …. 어른 문학 마니아가 얼마나 ‘하루키 퀘스트’에 열중해 있었는지 그 발자취를 잠시 따라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책 ‘문단 아이돌론’, 사이토 미나코 저)

2. 레벨1: 우선 분위기 비평부터

“무라카미 하루키론(혹은 하루키 퀘스트) 중에서 가장 심플하고 소박한 종류의 글은 ‘나는 이 문체가 좋아, 이 세계관이 좋아’라며 어린아이처럼 신이 나서 써 내려간 것입니다. …. 낙서장은 다방이라는 장소를 매개로 한 커뮤니케이션 도구(그런 의도)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이름 그대로 시시한 낙서만이 가득했지요. …. 나만 아는 골목길 단골 다방. 문학가 선생님이 아니더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들러 무언가 논할 수 있는 평화로운 살롱. 그것이 초기 무라카미 작품=하루키 랜드의 이미지였고, 그렇기 때문에 낙서장에 펠트펜으로 휘갈려 쓴 듯한 느낌의 비평이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책 ‘문단 아이돌론’, 사이토 미나코 저)

3. 레벨2: 퍼즐을 풀어보자

“그런데 낙서장은 금방 싫증이 나게 마련입니다. 특히 개점 때부터 단골이었던 손님은 다방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낙서장에는 눈길도 주지 않게 됩니다. 1982년, 개점 3년째를 맞이한 하루키랜드는 ‘양을 둘러싼 모험’으로 그 규모를 확대해 신장개업을 합니다. 이야기적인 요소가 풍부해진 것을 보고 단골손님들은 ‘비약적 발전’이라며 환영의 뜻을 표했습니다. …. 게임 다방으로 변한 하루키 랜드의 손님들은 여기서부터 두 갈래로 나뉘게 됩니다. 게임 해설에 목숨을 건 소수의 마니와와 다방 분위기를 즐기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대다수의 손님으로. …. 게임 해독 열풍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발전해버립니다. 게임의 소문을 듣고 몰려온 손님들은 냅킨 한 장부터 테이블 다리에 이르기까지 하루키 랜드에 있는 거의 모든 기기에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책 ‘문단 아이돌론’, 사이토 미나코 저)

4. 레벨3: ‘게임 도사’가 되어보자

“하루키 랜드는 오락실. 무라카미 문학을 다소 비판적으로 바라보던 베이비 붐 세대의 윗세대 비평가들은 일찍이 그 특성을 간파하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 수수께끼 풀이에 열중했던 비평가들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텍스트를 무대로 성배 탐험에 빠져 있었던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 무라카미 문학은 사실 게임 소프트웨어 그 자체였습니다. 무라카미 문학은 술래잡기이다, 두 세계=평행 세계가 설정되어 있다, 라는 식의 무라카미 하루키론의 상투적 문구에 대해서도 ‘당연하지. RPG니까’라고 해버리면 그만입니다. …. 플레이어 진영의 주축이 베이비 붐 세대 비평가들이었다면, 게이머 진영의 주축은 베이비 붐 세대가 경멸과 공포의 염을 담아 불렀던 ‘신인류’ 이후의 세대입니다. 신인류 게이머 대표 선수들은 베이비 붐 세대 비평가 플레이어들의 고뇌에 찬 해독 게임을 공공연하게 조소했습니다.” (책 ‘문단 아이돌론’, 사이토 미나코 저)

5. 레벨4: 나도 공략본을 써보자

“아!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아직 하루키 랜드가 다방에서 오락실로 변한 것을 모르는 고상한 손님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태엽 감는 새’는 그런 손님들을 당혹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평가는 둘로 갈라졌습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대단하다’고 무책임하게 칭찬하는 사람들과 ‘이런 엉망진창인 다방에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테다’라며 격분한 사람들로.” (책 ‘문단 아이돌론’, 사이토 미나코 저)

6. 게임기의 스위치를 끈 후

“자, 지금까지 무라카미 하루키론(또는 하루키 퀘스트)의 흐름을 살펴보았습니다. 골목 다방에서 게임 다방으로, 그리고 오락실로. 이러한 흐름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짧게 정리하자면, 무라카미 작품은 독자의 참여를 부추기는 인터랙티브 텍스트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뭔가 말하고 싶은 기분을 불러일으키고, 혹은 퍼즐이나 게임을 풀고 싶은 욕망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무라카미 문학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뒤집어 말하면 수수께끼 푸는 솜씨를 자랑하고 싶어 안달난 젊은 비평가들에게 하루키는 최상의 재료를 제공해주었던 것입니다.”(책 ‘문단 아이돌론’, 사이토 미나코 저)

하루키 문학 그리고 비평에 대한 저자의 글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저자 역시 자신의 해석이 남자아이들의 세계에 해당되고 여자아이들의 세계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하루키의 소설을 잘 짜진 게임, 그것도 풀어야 할 퍼즐과 수수께끼가 잔뜩 들어있는 것으로 설명함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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