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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형 찾기, 뇌 찍고 호르몬 측정하면 된다?

'여기 사진이 하나 있습니다. 이 사진에 제목을 붙인다면 당신은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같은, 얼핏 평범한 심리 테스트처럼 보이는 질문들이 있다. 하지만 이건 그 사람의 테스토스테론, 옥시토신 분비 정도를 알아볼 수 있는 행동 설문조사를 담은 것으로, 되도록 첫 소개팅 자리에서 그들의 화학물질이 서로 반응하도록 도와주는 테스트라고 보면 된다. 이하모니의 중매 과학을 주도하는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심리학과 카이핑 펭 교수는 '중매의 성공은 가장 비슷한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 상호 보완이 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게 하는 것'이라는 이론으로 이 문제를 접근하고 있다.

  • 정재승
  • 입력 2017.03.13 11:33
  • 수정 2018.03.14 14:12
ⓒWestend61 via Getty Images

[정재승의 영혼공작소] 사랑의 과학

'과학은 통상 다른 학문과 어떻게 다릅니까? 과학의 유용함은 어디에 있나요?' 만일 누군가 이런 질문을 해온다면, 과학자들에게는 오랫동안 해오던 대답이 있다. "그것은 예측과 조종 능력에 있지요. 과학은 근본원리를 탐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가 원하는 대로 조종하거나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답이 적절한 대답은 아니다. 20세기 말, 비선형 동역학 연구자들은 작은 초기 조건이 큰 결과 차이를 만들어내는 '카오스 현상'을 발견하면서 근본원리를 안다고 해서 예측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세상은 온통 '나비효과'로 대변되는 예측 불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대신, 과학은 이제 얼마나 예측 가능한가를 정량화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유용할 수 있다는 새로운 시각을 배웠다. 내일 날씨를 예측하는 건 의미있지만, 올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지 2월에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예측과 조종'은 과학기술자들의 궁극적인 목표다. 이해했다고 주장하려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하고 원하는 방향대로 조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 분야가 여전히 많다. 최소한 예측과 조종이 가능하다면, 그것이 과학의 영역 안에 들어와 있음을 보여준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차별화 전략은 '중매의 과학'

그런 관점에서 인간관계에 있어 중요한 질문 하나를 던져 보자. 남녀의 애정관계는 예측 가능한가? 예를 들면, 두 사람이 만났을 때 케미가 통해 사랑에 빠지고 결국 결혼에 이를 수 있을지 예측할 수 있을까? 혹은 커플이 결혼했을 때 결혼생활을 행복하게 누리지 못하고 결국 이혼하게 될지 미리 알아맞힐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우리는 남녀의 사랑이 이루어지거나 실패할 거라는 걸 과학적으로 예측할 수 있느냔 말이다. 인간의 낭만적 사랑이 과학의 연구 범위 안에 들어올 수 있는지에 매우 중대한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부분 부정적인 대답을 가질 것이다. 남녀 간의 문제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정설 아닌가? 앞으로 겪을, 혹은 그동안 겪은 숱한 시간들이 만들어낸 복잡한 사건과 관계의 실타래가 어떤 결과를 이끌어낼지는 당사자도 모른다는 게 우리의 믿음이다.

만약 그것이 맞다면 인간의 복잡다단한 낭만적 사랑은 과학의 범위 안에 들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과학적인 방법론을 적용하는 과학자가 늘어나고 있고, 그들의 예측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면 어떤가? 인간의 낭만적 사랑도 과학의 범주 안에 들어올 수 있으며 과학적으로 문제 해결도 가능하다는 뜻인가? 사랑도 생물학적인 과정일 뿐인가?

결혼을 원하는 두 남녀에게 만남의 기회를 제공하는 결혼 비즈니스 회사가 엄청난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미국에만도 매치닷컴(Match.com), 이하모니(eHarmony) 등 싱글 남녀를 연결해주는 회사가 무려 1천개가 넘고, 이들의 연간 매출액은 1조원을 넘는다. 우리나라도 물론 예외는 아니다.

매치닷컴이나 이하모니 같은 글로벌 기업이 주목하고 있는 나라는 단연 중국과 인도다. 중국과 인도는 오래전부터 중매 문화가 발달해 있어 중간에 중매자가 만남을 주선하고 결혼에 다리를 놓아주는 문화가 뿌리 깊은 전통으로 자리하고 있다. '중매 한번 잘 서면 3년은 먹고살 수 있다'는 중국 속담이 있을 정도인데, 전통적인 중매 문화 덕분에 사업하기 좋은 환경이다.

중국은 현재 35살 이하 남녀 중 아직 싱글인 비율이 무려 50%가 넘어 이미 2만개도 넘는 중매회사가 활개를 치고 있다. 인도도 만만치 않다. 인도는 중매결혼이 90%에 달할 정도로 중매 문화가 보편화돼 있으며, 35살 이하 싱글이 1억명에 가깝다. 인도의 젊은 남녀들은 사랑의 성공으로 결혼을 생각하기보다는 '성공한 결혼'을 하고 싶다며 결혼을 신중하게 접근하는 남녀가 70%에 이른다.

중국과 인도가 결혼 비즈니스의 최대 공략처로 지목되면서 글로벌 기업들은 각 나라의 자체 중매회사와 차별화하기 위해 '중매의 과학'을 전면에 내세웠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딱히 과학이랄 것도 없지만, 수많은 지역 중매 알선 회사와는 달리, 자신들은 과학적으로 결혼에 성공할 확률이 높은 남녀를 서로 연결해준다는 것이다.

대부분 중매 알선 회사들은 비슷한 학력과 재산 정도, 원하는 외모 등 신청자가 원하는 조건들을 중심으로 소개팅을 알선해주지만, 글로벌 결혼비즈니스 회사들은 '사랑이 싹틀 수 있도록 서로에게 맞는 타입을 찾아주겠다'는 전략이다. 꽤 그럴듯하게 들리지 않는가?

사랑의 과학자 영입한 중매회사

매치닷컴 회사는 '사랑의 과학'으로 유명한 뉴저지주립대의 헬렌 피셔를 영입해 케미스트리닷컴(Chemistry.com)이란 걸 개발했다. 이 사이트에 들어가면 누구나 56개의 질문을 받게 되는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통해 사람들을 협상가형, 건축가형, 탐험가형, 연출가형 등 네 종류로 나누고 남녀를 주선할 때 서로 맞는 타입으로 소개해주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여기 사진이 하나 있습니다. 이 사진에 제목을 붙인다면 당신은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같은, 얼핏 평범한 심리 테스트처럼 보이는 질문들이 있다. 하지만 이건 그 사람의 테스토스테론, 옥시토신 분비 정도를 알아볼 수 있는 행동 설문조사를 담은 것으로, 되도록 첫 소개팅 자리에서 그들의 화학물질이 서로 반응하도록 도와주는 테스트라고 보면 된다.

이하모니의 중매 과학을 주도하는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심리학과 카이핑 펭 교수는 '중매의 성공은 가장 비슷한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 상호 보완이 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게 하는 것'이라는 이론으로 이 문제를 접근하고 있다.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사람을 원하지만, 정말 행복한 커플은 비슷한 구석이 많지만 서로 상호 보완이 되는 부분이 많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중매의 과학 전략 덕분에 신청자들의 만족도가 높고 결혼 성공률이 높아지면서 이 회사의 매출이 급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뇌를 찍고 호르몬을 측정하고 성격을 검사해 이상형을 뽑는 시대가 오는 것인가?

한눈에 본질을 파악하는 기법을 심리학에서는 '얇게 조각내기'(thin-slicing)라고 부르는데, 미국의 심리학자 존 고트먼 교수는 이를 바탕으로 '이혼 예측'을 한다. 존 고트먼 박사는 미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수학을 전공한 뒤 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회심리학자이다. 그의 연구 주제는 부부생활에서 흔히 나타날 수 있는 어려움과 위기를 상담해주고 화목한 가정생활으로 이끄는 조언을 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여느 부부 상담가와 다른 점은 수학의 엄격함과 정확성에 매료돼 매우 수학적인 방식으로 부부관계를 진단하고 이혼을 예측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한 시간 동안 남편과 아내가 나눈 대화만 분석해도 그 부부가 15년 뒤에 여전히 부부로 살지, 아니면 이혼을 하게 될지 여부를 95% 정확도로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15분만 관찰할 경우에도 성공 확률은 무려 90%나 된다.

그는 지난 20년간 자신이 분석한 부부관계를 정리해 '결혼의 수학'(The Mathematics of Marriage, 2002)이란 책을 써 세상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가 부부관계를 과학적으로 판단하는 방법은 간단하면서도 많은 노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고트먼 교수는 미 워싱턴대 캠퍼스 근처에 '애정연구소'를 설립해 오랫동안 부부 상담을 해왔다.

고트먼 교수를 찾아온 부부는 작지만 안락한 방으로 인도된다. 그 방 안엔 사무용 의자 두 개가 약간 떨어져 놓여 있으며, 부부는 그 의자에 앉게 된다. 연구원들은 아내와 남편의 손가락과 귀에 전극과 센서를 붙여 심장 박동, 땀 분비량, 피부 온도 등을 측정한다. 의자 밑에는 요동감지계(jiggle-o-meter)가 달려 있어 몸의 작은 떨림이나 움직임도 측정할 수 있다. 몰래 놓인 비디오카메라 두 대는 두 사람의 대화와 행동을 매 순간 기록한다.

고트먼 교수는 그들에게 어떤 주제라도 좋으니 결혼 뒤 다툼거리가 되었던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라고 말하며 슬며시 자리를 피해준다. 그들은 15분 동안 카메라 앞에서 돈이나 섹스, 육아 문제, 일, 고부 갈등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모든 대화와 행동은 샅샅이 기록된다.

가장 위험한 요소는 '경멸'

이와 같은 방식으로 존 고트먼은 1980년대 이후 3천쌍이 넘는 부부를 상담하면서 커플들의 대화를 비디오카메라로 기록하고 분석했다. 부부가 대화하는 동안 나누는 감정을 혐오감, 경멸, 화, 방어 자세, 푸념, 슬픔, 의도적 회피, 기쁨, 즐거움 등으로 나누어 비디오테이프를 보면서 매초마다 커플의 상호작용 때 나타나는 감정을 표현한다.

동시에 부부의 몸에 부착된 전극과 센서는 남편이나 아내의 심장이 언제 두근거렸는지, 체온은 언제 상승했는지, 언제 몸을 움직였는지를 기록하게 된다. 그리고 SPAFF(specific affect·명확한 감정) 결과와 합쳐 이 부부가 대화를 할 때 대화와 행동에서 나온 모든 데이터를 하나의 복잡한 '방정식'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고트먼은 자신의 결혼 방정식을 통해 어떤 부부관계의 비밀을 밝혀낸 것일까? 고트먼이 쓴 '결혼의 수학'에 따르면, 세상의 모든 부부는 대화를 하고 감정을 교류하는 과정에서 독특한 자신들만의 패턴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불행한 부부에게서 공통적인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우선 결혼생활을 오래 지속하는 부부를 관찰해보니, 서로 대화를 할 때 상대에 대한 긍정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의 비율이 최소 '5 대 1'은 되더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불행한 부부들은 부정적 감정의 비율이 40%가 넘었다.

게다가 불행한 부부들은 (이들 중 상당수는 15년 내에 이혼을 했다!) 방어적 자세, 의도적 회피, 냉소, 경멸 등이 대화에서 자주 발견됐다. 그중에서 가장 심각한 요소는 '경멸'이었다. 부부 중 어느 한쪽이(또는 둘 다) 상대방에게 경멸의 감정을 보일 경우 그들의 결혼은 심각한 적신호를 보인다고 판단해야 한다. 두 번 이상 눈알을 빠르게 굴린다거나, 어처구니없다는 식의 표정을 짓거나, 무시하는 말을 내뱉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배우자에게 상처를 주거나 항상 긴장하게 만드는 환경은 이혼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고트먼 박사는 지적한다.

이 연구에서 우리가 특별히 주목해야 할 대목은 부부 갈등이 심화되는 것은 부부간에 문제가 된 대화 내용 자체보다도 그런 대화를 나눌 때 부부가 보이는 태도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대화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는지가 부부 사이에선 매우 중요하며, 대화 태도는 그들의 내면적 관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숨길 수 없는 지표라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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