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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31살, 태어나서 한 번도 생리가 없다'

  • 林亜季
  • 입력 2017.03.08 11:57
  • 수정 2024.03.27 16:40

난 태어나서 지금까지 생리가 없다. '원발성 무월경'으로 진단. 무슨 이유든 18세 이후에도 첫 생리가 없는 걸 말한다.

아직도 생리와는 인연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신문사에서 일하고 사실혼이지만 배우자도있다.

이상한 일이지만, 본래에 있어야 할 것이 없는데도 의식하지 않는 한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다. 친구들은 상태가 나빠 약을 먹거나 갑작스러운 생리에 당황해 편의점으로 뛰어가곤 한다. 힘들구나, 부디 몸조심하길.... 언제나 생각한다.

매월 정기적으로 몸이 안 좋아진다니, 너무하다. 배에 큰 바위를 얹고 있는 것 같은 통증이라고도 하고 사람에 따라서는 구토나 요통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 고통을 모르겠어요.

어머니와 초등학교 입학식에서.

초등학교 3학년 때 사이가 좋았던 여자애의 체조복 자락에서 뭔가 빨간 게 힐끗 보였다.

"생리 왔어??" 얼마 전에 알게 된 지식으로 과감하게 물어보았다.

그녀는 "우웅"(편집자 주 : 'ううん'으로 일본어에서는 '아니'라는 부정의 의미와 고통의 표현이 함께 있는 단어)이라고만 말할 뿐 몹시 당황하고 있었다.

그 무렵, 어머니가 "생리가 오면 팥밥을 짓자"고(편집자 주 : 팥밥은 경사스러운 날에 먹는 음식) 말한 걸 기억한다. 생리는 부끄럽지만, 경사스러운 일이라는 걸 알았다.

학교 화장실에서 쓰레기를 버리는 곳을 볼 때마다 내게도 이런 일이 생기겠지, 긴장됐다.

"걔 생리 시작했대"라는 말이 들려오기 시작했는데, 그건 누가 브래지어를 차기 시작했다든지,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더라는 부류의 소문에 불과했다.

중학교 무렵에는 생리가 오지 않는 게 걱정되기 시작했다. 엄마는 '힘든 일이니까, 늦는다면 늦는 편이 낫다'고 웃었지만, 사실은 꽤 걱정했던 것 같다.

한 살 아래 동생은 벌써 생리를 시작했지만, 내 생각을 하느라 팥밥을 지을 수 없었다. 여동생은 성장이 멈췄지만, 난 계속 키가 컸다. 지금은 168cm. 사춘기가 되면 골반이 벌어진다고 보건 체육 시간에 배웠는데 내 엉덩이는 그리 크지 않았다.

중학교 시절.

당시엔 나도 가족도 무월경 상태를 질병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병원에는 가지 않았다. 고교 시절 친구에게 "사실 아직 생리가 없어"라고 고백하면 "생리라는 건 옮기는 거지? 내가 옮겨 줄게!"라며 엉덩이를 비벼왔다. 뭐야 그게!

하지만 왠지 그 반응이 따뜻하고 기뻤다.

대학 수험에 실패한 나는 도쿄에서 혼자 재수 생활을 했다. 부모를 떠나고 부모의 고마움을 확인했다. 나도 언젠가 부모가 되는 날이 오는 걸까. 문득 걱정됐다.

내게는 생리가 없다. 나는 과연 아이를 가질 수 있을까?

가까운 병원 산부인과에 가서 원발성 무월경 진단을 받았다. 자궁 내부까지 검사하느라 꽤 힘들었을 남자 의사로부터 알 수 없는 이유로 호르몬의 분비가 적고 자궁의 성장이 중학생 수준의 크기에서 멈춰 있고, 배란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임신·출산을 바랄 수 없을 것이라고, 호르몬 저하로 인한 골다공증의 우려도 있다고.

충격적이었다. 나는 병에 걸렸던 것인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도 아이를 낳을 수 없는 것인가. 남자아이를 낳을지 여자아이를 낳을지 이름까지 생각한 적도 있는데, 나는 뭐하러 여자로 태어났나――.

원발성 무월경은 염색체 이상이나 선천성 질환일 경우도 있지만, 검사해본 결과 나는 그런 건 아니었다. 그럼 왜 여성 호르몬이 이상해져 버린 걸까? 대체 무엇을 대가로 나는 생리를 잃어버린 걸까? 의사와 얘기하던 중에 뭔가 떠오른 가설이 하나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난 밤샘을 좋아했다. 잠을 자야 할 시간에 자지 않았다. 한밤에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헤드폰으로 밤새 좋아하는 음악이나 라디오를 들었다. 지식과 경험의 인풋을 키워가면서 나 자신이 버전 업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나는 젊었고, 무리가 통하는 나이였다. 당시엔 하루가 30시간이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의학적 원인은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지금은 이렇게 생각한다. "지금 밤샘을 해가며 노력하는 학생. 빨리 가서 자자!"

그 후 호르몬 치료를 시작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몸에 맞지 않고 오히려 컨디션이 나빠진다는 이유로 그만뒀다. 지금은 잘 지내고 있다.

기자로 일하고 있는 모습.

그땐 정말 우울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체적 특징의 하나고, 내 정체성의 일부가 되었지만, 그것이 나의 전부는 아니니까.

없는 것은 없다고 한탄하기보다 작은 것일지라도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신문사에 들어간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생리가 없는 사람이니까 직장에서 생리 휴가, 출산 휴가, 육아 휴직은 불가능 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대신에 일을 많이 할 수 있겠지. 돈 얘기를 하자면, 생리용품을 살 필요가 없으니까 과자라도 사버릴까 생각할 때도 있다.

친구들은 지금 출산 폭주 중이다. 아이를 낳는다는 건 기적적이고 존귀한 일이다. 유모차에서 새근새근 자는 아이를 보면, 귀엽다!, 라는 생각과 함께 가슴 한 켠이 아리다. 하야시 군(본인을 지칭), 만족하는 법을 알아야지!

유일하게 걱정이 되는 건 내 파트너의 생각이다. 무월경으로 진단받은 후 교제를 하는 사람에겐 미리 말해왔다.

"전 태어나서 지금까지 생리가 없어요. 미래의 얘기지만, 아이는 힘들 것 같아요. 그래도 좋다면."

"생리가 없다는 건 콘돔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인가?"라는 친구인 남자의 말에 질려서 입을 닫은 적이 있다. 콘돔이 피임만 하는 건 아니다.

3년 전 나와 식을 올린 사람은 장남에 독자다. 아이를 좋아하니, 분명히 오랜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정말 고맙고 기특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결혼 전 남편의 양친에게 털어놨을 땐, "둘이서 결정할 일"이라며 깊이 이해해 주었다.

결혼식에서.

만약 언젠가 당신이 원한다면 어떤 치료든지 받을 생각이야. 인터넷을 보니 원발성 무월경이라도 치료를 거쳐서 아이를 안은 경우가 있는 것 같아. 그래도 무리라면 당신과 헤어져도 어쩔 수 없어.

이런 말을 남편에게 하자 남편은 "왜 그런 말을 해"라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즉 지금 우리 부부의 사이는 좋다.

이미 세상을 떠난 부모님은 모두 엄격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인간이라면"이라고 가르친 적은 있어도 "여자라면"이라고 말한 적은 없다. 무월경 진단을 받은 후에도 부모님께서 단순한 신체적 특징의 하나로 취급해준 덕에 지금까지 당당할 수 있었다. 주변에서 많은 복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부모님.

*본 기사는 허핑턴포스트 JP의 '女31歳。生まれてこのかた、一度も生理がない'을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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