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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하향선택결혼'하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여성의 교육수준과 소득수준이 상승함에 따라 하향선택결혼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관습 또는 규범을 바꿀 수 있는 문화적 콘텐츠 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 최근 논란이 되어 역풍을 맞은 보건사회연구원의 인구포럼에서 제출된 저출산 대책의 한 대목이다. 이 대목 전에 언급한 비혼 여성의 고스펙이 저출산의 원인이니 스펙 쌓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논리는 저급해서 관심도 가지 않았다. 그러나 '하향선택결혼'이라는 대안에는 웃음이 터지긴 했지만 눈길은 갔다. 약간 반갑기까지 했다.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이 바로 많은 여성들이 쉽게 '하향선택결혼'을 할 수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 권인숙
  • 입력 2017.03.08 05:35
  • 수정 2018.03.09 14:12
ⓒChristian Wrangsten / EyeEm via Getty Images

"여성의 교육수준과 소득수준이 상승함에 따라 하향선택결혼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관습 또는 규범을 바꿀 수 있는 문화적 콘텐츠 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

최근 논란이 되어 역풍을 맞은 보건사회연구원의 인구포럼에서 제출된 저출산 대책의 한 대목이다. 이 대목 전에 언급한 비혼 여성의 고스펙이 저출산의 원인이니 스펙 쌓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논리는 저급해서 관심도 가지 않았다. 그러나 '하향선택결혼'이라는 대안에는 웃음이 터지긴 했지만 눈길은 갔다. 약간 반갑기까지 했다.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이 바로 많은 여성들이 쉽게 '하향선택결혼'을 할 수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하향선택결혼은 여성이 자신보다 스펙이 떨어지거나 수입이 낮은 혹은 직업안정성이 낮은 남성을 선택하는 것을 말한다. 한국에서 여성들의 하향결혼이 당장 확대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남녀 임금차가 가장 크게 벌어지는 나라가 한국이다. 정규직의 여성 비율은 38.5%이며 정규직인 여성도 남성의 60% 정도만 번다. 또한 남성 정규직 임금을 100으로 쳤을 때 여성이 다수인 비정규직은 38 정도밖에 받지 못한다. 비슷한 스펙을 가져도 남성이 정규직일 가능성도 높고, 소득도 월등히 높고, 출세 가능성도 높기에 대부분의 여성에게 하향선택지가 열리지 않는다.

남성들이 상향결혼을 하려 하는가도 따져보아야 한다. 결혼중매시장을 보면 남성의 순위는 고임금, 고스펙 순서대로 결정되지만 여성은 부모님의 재산이 많거나 집안 배경이 훌륭하거나 외모가 뛰어날수록 우선순위를 차지한다. 고임금 여성을 별로 쳐주지 않는 것은 남성 중심의 내조가 힘들 것에 대한 우려도 있겠지만 직업적 안정성도 현저히 낮기 때문이다.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이 52%이다. 낮은 이유가 대부분 출산·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 때문이다. 그리고 이 경력 단절은 고학력 여성에게 더 두드러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 여성 관련 통계 중 한국과 관련해 가장 눈에 띄는 것이 고학력 여성의 유독 낮은 경제활동 참가율이다. 저학력 여성은 출산·육아 이후 경제활동을 다시 하는 비율이 높지만 고학력 여성은 아니다. 아이 교육에서 엄마의 역할이 강조되고, 재취업의 질이 너무 떨어지기 때문이다.

분명 문화적 이슈도 있다. 여성이 사회적 지위나 임금이 높을 때 가정이 원만하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이 있다. 가정폭력의 원인 중 '상처받은 남성성을 보상받기 위해서'라는 항목은 여전히 비중이 높다. 남성의 가사나 육아노동 참여가 낮은 나라에서 여성이 돈도 더 벌고 가사육아노동도 다 책임지는 독박을 쓰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드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남녀간 연애의 감정적 맥락도 중요한 요소이다. 대학교 수준에서는 여성이 자신보다 랭킹이 떨어지는 대학에 다니는 남성을 만나거나, 고졸 이하 학력의 남성을 만나는 것이 하향선택결혼과 관계가 높을 것이다. 매 학기 수업에서 자신보다 더 똑똑한(한국에서는 흔히 대학 랭킹이 더 높은 사람을 의미함) 이성이 연애 상대로서 매력적인가라는 질문을 한다. 여성은 그렇다가 다수이고 남성은 반대의 경우가 많다.

물론 최근에는 달라지고 있다. 꽤 많은 수의 여·남학생이 자신은 다르다고 하고, 대학생 수준의 하향선택적 연애를 하고 있는 사례도 많다. 하향적 연애가 상관없다는 여학생들은 대체로 독립적이고 주관이 있는 친구들로 보였다. 그들이 나중에 소득수준이 높을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들은 사회관습적 이유 때문에 상향결혼을 할 것 같지는 않다. 페미니즘이 강세를 이루는 요즘의 경향을 반영하면 하향결혼이 이루어질 감정적 가능성은 점점 넓혀지고 있는 듯하다.

결혼은 가장 이기적인 선택이고 거래일 수 있다. 가장 구체적인 일상의 현실을 감당해야 하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면서 미래를 계산해야 하는 선택이다. 감정적 가능성이 넓혀지고 사회규범이 바뀐다고 해도 여성이 쉽게 하향결혼을 선택하는 세상은 오지 않을 것이다. 여성의 노동시장에서의 지위, 직업적 안정성, 가사노동의 성별화, 아이들 교육에서의 엄마의 역할 등이 사실 혁명적으로 변해야 하향결혼은 자연스러운 경향으로 나타날 것이다.

하향선택결혼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연구원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이는 단순히 홍보가 아닌 대중에게 무해한 음모 수준으로 은밀히 진행될 필요가 있다"라고. 나는 간곡히 부탁하고 싶다. 음모 수준이 아니라 좀 더 전향적으로 공개적으로 대대적으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대로' 진행해 보라고.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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