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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보다 먼저 뇌의 비밀을 발견한 예술가 3명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일찍이 "예술가의 역할은 미래를 사유하는 것"이란 말을 남겼다. 어쩌면 이 말은 예술이 미래에 이뤄질 과학적 발견마저 먼저 갈파할 수 있다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인간 뇌에 대해선 아직도 놀라운 사실들이 계속 발견되고 있고, 미지의 영역이 많이 남아있지만, 천재적인 예술가들은 19-20세기 초에 벌써 현대 뇌 과학의 성취를 자신의 작품 속에 구현해 놓았다. 그 중 대표적인 세 명의 예술가를 책에서 골라보았다. 예술과 과학은 언어는 다르지만, 이렇듯 서로 영감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분야들이다.

1. 마르셀 프루스트

마르셀 프루스트는 20세기 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제목의, 정말 읽다가 잃어버린 내 시간을 찾아내고 싶을 정도로 두꺼운 소설책을 낸 바 있는 프랑스의 소설가이다. 그는 천재적인 예술가답게 자신의 유년시절에 대한 회상인 이 책에서 기억에 대한 현대 뇌 과학의 성취를 일부 예언하는 단계까지 밀고 나갔는데,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은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먹고 완전히 잊고 지냈던 유년 시절의 추억을 불현듯 떠올린다. 별 게 아닌 것 같지만, 장면을 보거나 소리를 듣는 게 아닌 '맛'을 통해서 기억을 떠올렸다는 점이 중요하다. 현대 신경과학의 발견에 의하면 장기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와 직접 연결되어 있는 감각은 오로지 '후각'과 '미각'뿐이기 때문이다. 또 프루스트는 소설 속에서 "기억을 다시 붙잡으려는 것은 헛수고..."라며 말하며 텍스트 안에서 자신의 연인 알베르틴에 대한 묘사를 끊임없이 바꾸면서도 이를 일관성 있게 고치려는 시도를 전혀 하지 않았다. '완벽한 기억'이란 존재하지 않고, 회상하면 할수록 기억은 왜곡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대 신경과학의 발견은 그의 심증을 뒷받침한다. 당시 과학자들은 기억이 뇌 속의 고정된 창고에 정보를 쌓아놓는 행위라고 생각했지만, 기억은 '회상'하는 과정 없이는 결코 존재하지 않으며, 회상할수록 뉴런 구조는 미묘하게 변화한다는 사실이 2000년 카림 네이더의 실험을 통해 밝혀졌다. 다시 말해, 무언가를 더 자주 기억할수록, 그 기억은 더 부정확해진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프루스트는 비록 '완벽한 기억'이 불가능하단 사실에 매달리며 괴로워했지만, 그 덕에 우린 기억에 대한 예술적 통찰을 누릴 수 있었던 셈이다.

"네이더 실험은 비록 간단해 보이지만...기억이란 고정된 정보의 창고가 아니라 부단한 과정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기억할 때마다 기억의 뉴런 구조는 미묘하게 변화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재고착'이라 불린다...그러므로 순전히 객관적인 기억, 마들렌의 본래 맛에 대한 진짜 기억에는 결코 도달할 수 없다. 과자 맛을 회상하는 순간은 그것이 진짜로 어떤 맛이었던가를 망각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프루스트는 기억 재고착이라는 현상이 과학적으로 발견되기 전에 이미 그것을 예견했다. 그에게...기억은 결코 고쳐쓰기를 그만둘 수 없는 문장과도 같았다...그가 쓴 어떤 것도 항구적이지 않았다. 그가 자비를 들여 인쇄를 중지시키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책 '프루스트는 신경과학자였다.', 조나 레러 저)

2. 폴 세잔

1910년 12월, 전시회에 걸린 폴 세잔의 그림을 칭찬하려는 사람들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인상파' 화가에게조차 후기 인상파 폴 세잔의 그림은 조롱의 대상이었다. 실제 그의 그림은 정확한 세부 묘사를 중시하는 아카데미즘의 화풍도, 빛이 만들어내는 대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인상파 화풍도 따르지 않았다. 경계선이나 윤곽선이 거의 없어 얼룩과 붓자국만으로 간신히 그 그림들이 무엇을 그렸는지 알 수 있는 추상화에 가까운 그림을 그렸다. 어떤 면으로도 세잔의 그림이 현실적이라고 판단할 근거는 없었다. 비평가들이 세잔을 두고 '제정신이 아니'라고 말했던 것도 그리 무리는 아니다.

그렇지만 이런 화풍은 현대 신경과학에 의해 대단히 '현실적'인 묘사임이 밝혀진다. 세잔의 그림이 인간이 사물을 인식하기 바로 전 단계의 인상을 나타냈음이 확인된 것이다. 우리는 사물을 보이는 즉시 인식하지 않는다. 시각 정보를 처리해 뇌에서 가공된 '해석'을 내릴 때에야 비로소 인식이 가능하다. 올리버 색스의 책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는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나온다. 'Dr.P'라는 남자는 피질에 병변이 생겨 뇌에서 어떤 정보도 받지 못한 채 오로지 눈만으로 세상을 바라 볼 수밖에 없는데, 그 결과는 놀랍게도 세잔이 그린 '추상화에 가까운' 세상이었다. 장미를 보며 길이가 15센티이며, 돌돌 말린 빨간 형태가 있고 그 밑에 녹색 부속물이 달려있다고 묘사할 순 있지만, 결코 이를 통해 '장미'라는 결론을 얻지 못하는 그런 세상 말이다. 우리는 이를 통해 세잔의 그림이 Dr.P의 눈과 우리 눈 사이의 미묘한 경계를 그려낸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초록색 삼각형'이란 시각 정보를 통해 '산'이란 결론을 얻기 바로 직전의 순간에 대한 묘사가 세잔의 그림인 것이다. 당시의 평가를 빌리면, 세잔은 오히려 '제정신이 아닐 정도로' 우리 뇌 속의 현실을 파고든 사람이었던 셈이다.

"세잔은 종종 몇 시간씩이나...그릴 대상을 바라보곤 했다. 대상이 자신의 응시 아래에서 녹아내릴 때까지, 세상의 형태들이 무형의 혼잡으로 빠져 들어갈 때까지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눈에 비치는 것을 해체함으로써 세잔은 시각의 첫 단계로 돌아가려고 했다. 스스로 "예민한 기록판"과도 같은 것이 되려 했다. 이 방법은 워낙 시간이 많이 걸렸으므로, 그는 단순한 세상에만 초점을 맞추어야 했다..."사과 한 알로 파리를 경악시키겠다."는 것이 세잔의 말이었다...인상파 화가들과는 달리, 세잔은 모든 것을 빛의 표면으로 만들어버리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인상파가 눈을 반영했다면, 세잔의 예술은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책 '프루스트는 신경과학자였다.', 조나 레러 저)

3. 거트루드 스타인

거트루드 스타인은 미국의 시인이다. 하지만 서정 시인의 범주에 넣기엔 많은 무리가 따르는데, 그 이유는 그녀가 당최 알아먹을 수 없는 말들로만 시를 쓰고 시집을 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믿을 수 없는 정의와 유사함이 그 덕분에 존재하는 보살핌. 이 모든 것은 웅장한 아스파라거스를 만든다." 같은 문장들 말이다. 그녀는 이런 식의 문장들로만 한 책을 빽빽이 채웠다. 한 출판인이 그녀가 영어를 못하는 줄 알고 원고를 손질해줄 편집인을 소개해주겠다고 제안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는 다분히 계산된 시도였는데, 그녀가 단어와 단어가 연결되어 드러내는 의미를 제거하고 오로지 '구조만을' 드러내는 문장을 쓰고자 했기 때문이다. 실제 그녀가 쓴 문장 중 문법적으로 틀린 문장은 없다. 형용사가 와야 할 곳엔 형용사가 오고, 주어엔 명사를 쓰는 등의 규칙을 지켰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알아먹을 수 있는 의미는 하나도 없다. 그녀는 이런 시도를 통해 언어엔 미리 정해진 나름의 구조가 있음을 드러내고자 했다. 언어를 현실을 묘사하는 도구로 쓰지 않고, 일부러 현실과 떨어뜨려 사람들이 그 구조 자체에 주목하도록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언어가 미리 정해진 나름의 '구조'에 따라 움직인다는 그녀의 통찰은 촘스키의 연구를 통해 입증된다. 우리가 현실을 받아들여 언어를 '창조'하는 게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뇌 속에 지니고 있는 '언어의 문법 구조'에 맞춰 말을 배우고 세상을 인식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촘스키는 이를 '보편 문법'이란 용어로 부른다. 세부적인 사항은 논란이 있지만, 언어를 이루는 문법이 창조물이 아닌 '선험적 본능'이라는 촘스키의 핵심 논지는 이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리고 촘스키 이전, 예술을 통해 그 '본능'을 선명히 드러내고자 했던 한 예술가가 있었다.

"촘스키 언어학의 몇몇 세부는 여전히 논란거리로 남아 있지만, 언어의 심층 구조가 선험적 본능이라는 것은 이제 명백하다. 보편 문법의 가장 좋은 증거는 니카라과의 농아들에 대한 연구에서 나왔다...아무도 그들에게 문법을 가르치지 않았지만, 그들은 배울 필요조차 없었다. 촘스키의 이론이 예견했듯이, 어린이들은 늘어나는 어휘에 자신의 선천적 앎을 부여했다. 동사들은 활용되었고, 형용사들은 명사들과 구분되었다...이 니카라과 어린이들은 언어를 배운 적이 없었지만, 자기들만의 언어를 발명했다. 그 문법은 다른 어떤 인간의 문법과도 비슷했다. 스타인이 옳았다. "단 하나의 언어가 있을 뿐이다."" (책 '프루스트는 신경과학자였다.', 조나 레러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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