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일제강점기 평안도와 평양 일대의 생활상을 찍은 사진들이 공개됐다(화보)

한없이 맑은 얼굴들이다. 희끗한 이빨을 드러내고 방긋 웃으면서 줄넘기를 하는 단발머리 여자아이. 평양 부근의 밭둑길을 걸으며 삼삼오오 소풍을 가는 소년 소녀들의 봄꽃 같은 미소. 그들은 그 뒤 어떤 삶을 겪었을까. 지금도 살아 있다면 남과 북 어디에 터전을 잡았을까.

70~80년 전 평양과 평안도 일대의 성당 부근에서 찍힌 그들의 사진은 시인 백석(1912~1996)이 평안도 사람과 풍속들에 대해 썼던 ‘여우난골족’ 같은 여러 향토시들의 정경 그 자체다. 해방 뒤 닥친 분단과 전쟁으로 더욱 희미해진 그 시절 북녘 공간에 대한 향수와 현지 사람들의 후일담에 대한 상상을 일으키는 이미지들이다.

1930~40년대 북녘 평안도 지역의 생활풍경, 아이들과 소녀의 일상, 결혼·장례·농사짓기 등의 정경을 담은 사진첩이 세상에 나왔다. 1922년부터 태평양전쟁 뒤 강제철수한 44년까지 평양과 진남포, 의주, 중강진 등 평남북 일대에서 전교와 주민봉사, 교육활동을 폈던 미국 메리놀외방선교회 소속 신부들이 찍은 사진 150여점을 모은 <우리 신부님은 사진가>(눈빛, 2만원)다.

책에 실린 사진들은 일제강점기 평안도 지역의 일상 풍경과 삶의 세세한 모습을 담고 있다. 한옥과 초가로 가득 들어찬 평양의 전통적인 시가지 모습과 서민들의 집 공간, 진남포·의주 등의 색다른 서양식 건축물과 한양 절충식 교회당, 의주의 들녘, 우리나라에서 가장 추운 곳 중강진의 너와집과 장례 풍경 등을 정교한 화질과 현장성이 돋보이는 구도 속에 살려냈다.

사진들을 보면, 어린아이들과 소년 소녀들을 주목해 포착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동생을 뒤로, 옆으로 업은 소녀들이 많이 등장하고 줄넘기, 십자가 놀이를 하거나, 심지어 소년이 곰방대를 문 모습도 보인다. 신의주에서 열린 성당 결혼식장에는 멋진 양장을 차려입은 선남선녀 부부 옆에 최고급 웨딩카가 등장해 눈길을 끈다. 평양 관후리 성당 언덕배기에서 찍은 옛 평양의 대동강과 대동문 풍경이나 꽁꽁 얼어붙은 압록강을 외국인 수녀 일행이 떼썰매를 타고 건너오는 모습도 흥미롭다.

수록된 사진들은 서울대교구의 최승룡 신부가 수집한 1000여점의 사진 중 일부다. 그가 서울대교구 고문서고 책임자로 일할 당시 미국 메리놀 본부 문서고를 직접 찾아가 옛 신부들의 사진집에 실린 자료들을 찾아내 복사하고 갈무리했다고 한다. 책을 엮은 장긍선 신부(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 소장)는 서문에서 “선교사 신부들은 전문 사진가 못지않은 자료들을 사진으로 남겼다. 당시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우리 현실이 잘 나타나 있지만, 해맑은 아이들의 모습은 우리를 절로 미소짓게 만들어준다”고 소개했다.

2017년은 일제강점기 평안도 일대를 관할했다가 분단 뒤 ‘침묵의 교회’가 된 천주교 평양교구가 지목구(정식 교구보다 작은 소단위 포교구역)로 설정된 지 90돌을 맞는 해다. 이번에 나온 사진집은 평양교구가 이를 기념해 내는 두 권의 사진집 중 하나로, 다른 한 권은 평양교구의 역사를 교회적 관점에서 정리한 사진들로 엮어 이달 중순 발간될 예정이다. 교구 설정 90돌 기념사진전도 14일까지 서울 명동성당 안 갤러리 1898에서 열리고 있다.

관련 화보: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북한 #예술 #문화 #평양 #평안도 #천주교 #천주교평양교구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