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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들은 어떻게 사냐고 묻는다면

인터넷을 보다 보면 시각장애인을 대하는 방법이라는 여러 글이나 영상들이 떠돌아 다니곤 한다. 그런데 실제로 이들을 만났을 때는 별 도움이 안되는 경우가 많다. 장애에 대해 거리낌 없이 물어보라고 해서 그리 하다 보면 상처가 되거나 화를 내기도 하고 이성이라도 자연스럽게 팔을 내어주라고 배워서 내어준 것인데 엉뚱한 호감을 표현하는 상대를 만나기도 한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어렵다고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우리도 그들도 그냥 수십억 분의 일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 안승준
  • 입력 2017.03.03 08:52
  • 수정 2018.03.04 14:12
ⓒsqback via Getty Images

고기맛은 어떤 것이냐는 물음에 가장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굴까? 그건 당연히 고기를 처음 먹어본 사람일 것이다. 그의 주장이나 학설이 분명 틀릴 것이라는 확신도 못하는 것이긴 하겠지만 두 가지 이상의 고기만 먹어본 사람이라면 저런 물음이 가지는 의미부터 고민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내 친구 중에 연애박사를 자처하면서 연애방법론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녀석이 있는데 그 녀석은 늦은 나이 첫 연애로 운 좋게 결혼에 골인한 경우이다.

짐작하겠지만 학창시절 CC부터 숱한 연애경험을 가진 진짜 연애고수 녀석들은 '연애 모르는 거야!'라는 표정으로 슬쩍 미소만 짓고 있을 뿐이다.

최근 SNS에는 시각장애인 여성과의 이혼을 고민하는 한 남성의 글이 올라와서 여러 논쟁거리를 만들고 있는 듯하다.

그의 말을 그대로 빌린다면 그녀는 매우 이기적이어서 집안일은커녕 스스로의 신변정리조차도 남편의 의지 없이는 해결하지 않는 무개념 독불장군인 듯 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스스로 불만족스러운 상황이 생기기라도 하면 괴성과 폭언도 모자라 이런저런 집기를 집어던지기까지 하는 기행까지 일삼았다고 글은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마무리되는 그의 근본적 고민은 이혼하고 싶지만 장애인을 버리는 몹쓸 남자라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과 비난이 두렵다는 것이었다.

댓글 중에도 그의 바람과는 전혀 관계 없는 시각장애인 여성에 대한 동정글 그리고 무책임한 남편에 대한 비난들이 종종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댓글의 방향이 크게 두 갈래로 나눠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글의 논지와는 관련 없이 시각장애인은 원래 좀 그렇다는 쪽과 시각에 장애가 있어도 그 정도는 스스로 다 할 수 있는데 여자분이 이상한 것 같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었다.

그럼 어느 쪽이 맞는 것일까?

내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난 모르겠다이다.

난 하루에도 수백명의 시각장애인들을 만나는 맹학교 교사이다. 남성시각장애인도 만나고 여성시각장애인도 만난다. 아직 엄마품에서 안겨있는 아기부터 노후를 지내시는 어르신도 만나지만 시각장애인들은 어떻게 사냐고 물어보면 대답할 수가 없다.

시각장애인이 어떤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또한 알고 있는 시각장애인이 한두 명이거나 몇 번 만나보지 못한 사람일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장애복지나 특수교육과의 교수님들이라 하더라도 의학적 특징이나 학습방법 혹은 몇 가지 보조기기들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말할지 몰라도 본질적인 시각장애인 개개인을 모두 알 수 는 없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여성들은 어떤 사람이야라고 묻는 것을 생각한다면 비슷하지 않을까?

나의 어머니와 내 동생마저도 별 공통점이 없는데 그 어떤 전문가가 시원하게 대답할 수 있을까?

SNS에 글을 올린 그의 문제 역시 시각장애라는 특징이 일부 문제의 원인일 수도 있지만 상황전체를 시각장애인 여성과 정안인 남성의 이혼문제라는 타이틀로 묶는 순간 해결은 더욱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둘이 함께 겪어온 수많은 경험들과 장면들 중에 건강한 눈과 그렇지 않은 눈이 문제의 핵심이었다면 그들은 이미 결합조차 불가능했으리라고 생각한다.

인터넷을 보다 보면 시각장애인을 대하는 방법이라는 여러 글이나 영상들이 떠돌아 다니곤 한다.

그런데 실제로 이들을 만났을 때는 별 도움이 안되는 경우가 많다.

장애에 대해 거리낌 없이 물어보라고 해서 그리 하다 보면 상처가 되거나 화를 내기도 하고 이성이라도 자연스럽게 팔을 내어주라고 배워서 내어준 것인데 엉뚱한 호감을 표현하는 상대를 만나기도 한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어렵다고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우리도 그들도 그냥 수십억 분의 일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연애학개론서를 본다고 이성을 공략할 수 있었다면 거리를 가득 채운 굶주린 솔로들을 어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너무도 소수인 시각장애인들의 최소한의 특성을 알리기 위해, 너무도 어려운 첫 연애 방법을 알리기 위해 인식개선서도 연애학 개론도 서점에 꽂히긴 하지만 그건 그냥 최소한의 참고일 뿐이다.

시각장애인들은 어떤 사람일까?

그건 고기가 어떤 맛일까? 와 같은 물음인 것이다.

고기맛이 궁금하면 먹어보면 되는 것이고 사람이 궁금하면 서로 알아가면 되는 것이다.

궁금하면 겪어보자! 알고 싶으면 부딪혀보자! 엉터리 연애박사 내 친구 녀석처럼 한 주먹도 안되는 경험과 지식으로 잘난 체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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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준 #시각장애인 #사회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