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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 매니큐어한 남자 사람

나는 늘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는 이 남자 학생이, 자신의 열 손가락 손톱에 매니큐어를 하고 왔다는 사실보다도, 그것에 대한 다른 학생들 등 주변의 반응이 매우 흥미롭게 보였다. 그 누구도 이 매니큐어에 대하여 별다른 질문이나 관심을 전혀 보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열두 명이 둘러앉아 있는 세미나 형식의 수업이기 때문에, 그들의 '무반응'은 그 남자 학생의 매니큐어 한 손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의 '무반응'은 '다름에 대한 존중'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 강남순
  • 입력 2017.03.03 07:43
  • 수정 2018.03.04 14:12
ⓒsmartboy10 via Getty Images

1.

오늘 수업을 하는데, 나의 학생 중 한 명이 내 눈을 끌었다. 그는 석사과정을 하고 있고, 결혼하여 아이도 있는 학생이다. 그가 오늘 청색과 녹색을 합친 것 같은 아름다운 색깔의 매니큐어를 하고 강의실에 왔다. 이번 봄학기에 나는 수요일에 오전에는 〈데리다〉 오후에는 〈페미니즘〉, 이 두 과목을 하루에 가르치고 있다. 세 명의 학생이 나의 이 두 과목을 모두 택하여 듣고 있는데, 이들은 스스로 자신들을 "The Crazy Three"라고 부른다. 이 매니큐어의 남자 대학원생은 바로 이 "crazy three" 중 한 명이다.

2.

나는 늘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는 이 남자 학생이, 자신의 열 손가락 손톱에 매니큐어를 하고 왔다는 사실보다도, 그것에 대한 다른 학생들 등 주변의 반응이 매우 흥미롭게 보였다. 그 누구도 이 매니큐어에 대하여 별다른 질문이나 관심을 전혀 보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열두 명이 둘러앉아 있는 세미나 형식의 수업이기 때문에, 그들의 '무반응'은 그 남자 학생의 매니큐어 한 손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의 '무반응'은 '다름에 대한 존중'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3.

석사와 박사과정 학생만이 있는 이 신학 대학원에서,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다양한 모습과 다양한 자기 정체성을 지닌 학생들이 참으로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다. 몸 일부에 또는 곳곳에 문신을 한 여자/남자 학생들, 머리카락을 모두 자른 여자 학생, 긴 머리의 남자 학생, 귀만이 아니라 코에 또는 눈썹에 '귀걸이' 같은 장식을 한 학생들, 자신을 어느 특정한 종교에 소속하지 않는 '무신론자'로 또는 '휴머니스트'로 표현하는 학생들, 이성애자, 양성애자, 동성애자, 트랜스 젠더, 무성애자 등으로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는 학생들, 안수를 받고 목회자로 일하려는 학생들, 학자로서 삶을 살고자 하는 학생들, 병원, 군대, 등에서 채플린으로 일하고자 하는 학생들, 또는 바텐더, 변호사, 학교 선생, 간호사, 회계사, 오페라 싱어 등 참으로 다양한 일을 하면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함께' 평화롭게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가고 있다. 타자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삶의 방식을 참으로 철저하게 존중하는 것-내가 일하는 대학 강의실의 문화이다. 강의실은 한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것-내 학생들의 이 다양한 존재방식을 보면서 느끼게 된다.

4.

나는 오늘 이 매니큐어를 하고 온 남자 학생, 그리고 그에 대한 주변의 반응을 보면서, '다양한 존재의 방식의 존중'이 얼마나 한 개별인들의 의식 속에, 그리고 그 개별인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 '자유'를 확보해 주는 중요한 가치인가를 절감하게 되었다. 만약 이 열 손가락 손톱에 짙은 매니큐어를 한 남자가 한국의 학교 강의실에, 교회에, 버스에, 전철에, 또는 모임에 등장했을 때 가족, 친구, 주변사람들, 지나가던 사람들은 어떠한 반응을 보일까.

5.

각기 다른 사회는 각기 다른 방식의 '병'들이 있다. 한국사회가 지닌 심각한 '병'의 하나는 "획일화된 존재방식의 절대화"이다. 그 획일성의 틀에서 조금만 벗어나는 사람이 있으면, 갖가지 비난과 사회적 추방을 서슴지 않는 폭력이 '자연스럽게' 강력하게 작동된다. "획일성의 폭력성"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한, 개별인들의 다양한 존재 방식을 존중하는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의 실현은 불가능하다. '획일화의 폭력성'에 저항하는 다양한 존재방식을 한국사회 곳곳의 틈새공간들에서 볼 수 있을 때가 오는 것은 참으로 요원한 것인가.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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